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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법·규정 무시' KF-X 레이더 사업, 어디로 가나

[취재파일] '법·규정 무시' KF-X 레이더 사업, 어디로 가나
18조 원을 들여 미들급 국산 전투기 120대를 생산하는, 공군의 미래 한국형 전투기 KF-X 사업의 핵심 중 핵심 이슈는 능동 위상 배열 AESA 레이더의 독자 개발입니다. 작년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미국의 4대 핵심기술 이전 거부’ 논란의 중심이었습니다. 당시 군은 국민과 국회, 대통령에게 AESA 레이더 독자 개발을 약속하며 정면 돌파했습니다.

AESA 레이더 독자 개발, 잘 되고 있을까요? 파행 또 파행입니다. 사업 명칭에는 법과 규정을 엉터리로 갖다 붙였고, 사업은 바로 쓸 수 있는 예산도 없이 착수했습니다. AESA 레이더의 국내 기술 수준을 넘어서는 연구 개발 단계를 진행해 연구 개발 절차도 어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AESA 레이더 개발을 주관하는 국방과학연구소와 이를 감독하는 방위사업청에게 AESA 레이더를 독자 개발할 의지나 실력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AESA 레이더 플랜 B, 즉 군이 AESA 레이더를 해외 구매해서 ‘껍데기만 국산’인 KF-X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 사업에 착수했는데 예산은 어디에?
국방과학연구소는 지난 2월 AESA 레이더 사업을 공고했습니다. 공고문 첫 문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방위사업법 및 방위사업관리규정에 의거한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연구용역으로 AESA 레이더 시제품 개발업체를 선정한다.”

하지만 방위사업법과 방위사업관리규정에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연구용역'이란 사업 형태는 없습니다. 법과 규정에도 없는 사업 방식을 떡하니 내걸고 사업자를 선정했습니다. 이번 사업은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연구 용역'이 아니라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연구 개발'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라 '260 항목 업무 용역비'에서 예산을 받기 때문에 연구 용역이란 명칭을 사용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연구 용역 관련 예산으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사업 명칭도 그렇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엉터리입니다. 정부 예산 중 '260 항목'인 업무 용역비는 국방과학연구소 같은 국책 연구소 주관 사업이 아니라 업체 주관 사업에 투입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KF-X 사업의 경우, KF-X 전체 개발을 주관하는 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에게만 '260 항목'의 예산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연구개발 사업이라면 '360 항목 연구 개발 출연금'을 받아 써야 합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당장 쓸 수 있는 예산도 없는 상태에서 가짜 사업 명칭을 걸고 AESA 레이더 사업자를 선정한 것입니다. 방위사업청 핵심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에 AESA 레이더 독자 개발이 결정되면서 미처 예산 항목을 정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예산도 없는 상황에서 사업자부터 선정한 것이 연구 개발 사업 절차에 맞는지 따져볼 일입니다. 방위사업청은 “AESA 레이더 사업에 돈을 쓸 수 있도록 이미 확보한 예산 중 일부의 항목을 360 항목으로 변경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군이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AESA 레이더를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이 작년 12월인데, 5개월 동안 무엇을 하다가 이제 와서 예산 항목을 변경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는 어떤 이유에선지 지금까지 알면서도 안 고쳤습니다.

● 기술 수준은 여기에, 개발 단계는 저기에
국방과학연구소는 작년 10월 군사 전문가, 국회의원, 기자들을 불러 모아 KF-X 핵심기술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그 때 우리나라의 AESA 레이더 기술 성숙도(TRLㆍTechnology Readiness Level)는 5라고 밝혔습니다. TRL은 1에서 9로 발전하는 방식입니다.

방위사업청의 기술 성숙도 평가 업무 지침 15조에 따르면 TRL 5는 탐색 개발을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탐색 개발은 다음 단계인 체계 개발로 전환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연구 개발의 시작입니다. AESA 레이더의 TRL이 5이면 기술성숙도 평가 업무 지침에 따라 탐색 개발이 마땅한데, 국방과학연구소는 규정을 무시하고 시제품을 제작하는 체계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KF-X 사업이 체계 개발이기 때문에 AESA 레이더도 체계 개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KF-X의 AESA 레이더 개발은 대통령이 방위사업청장과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청와대로 불러 직접 챙긴 사안입니다. 한미 정상회담에도 부담을 줬던 초민감, 초관심 사업입니다.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는 돌다리도 두드리며 사업을 추진해도 성공을 확신 못합니다. 그런데 이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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