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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갭 이어(gap year)를 누리는 미국 대학생

[칼럼] 갭 이어(gap year)를 누리는 미국 대학생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은 이번 주가 단기 방학이다. 몇 년 전부터 학교장에게 수업 일수 내에서 학사 일정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했고, 5월 연휴 기간에 가족들과 여행을 통해 내수를 살려보자는 정부의 독려(?) 덕분에 학교마다 5월 단기 방학을 실시하는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워킹맘 입장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방학이다. 급식이 없어지니 졸지에 ‘결식 청소년’이 되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고 3은 아니지만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의 고등학생이 단기 방학에 가족들과 놀러가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답답하다.

이미 한 달 쯤 전부터 단기 방학 특수를 노리는 학원가의 마케팅은 치열해져 방학 특강 문자가 하루에 십 여 통씩 폭탄처럼 쏟아진다. 그걸 보면 엄마 입장에서는 불안해질 수밖에. 단기 방학을 이용한 한국어 시험 특강,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특강, 자소서 특강, 대학 학점 선 이수 과정인 AP시험 대비 특강 등등 각종 스펙을 위한 강의부터 국어, 영어, 수학을 비롯한 주요 과목 기말고사 선행 학습까지. 결국 다른 아이들 다하니 혼자 집에서 놀릴 수 없어 특강을 세 과목이나 신청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해 주면 좋으련만 이미 학원 수업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그걸 바라는 것은 무리일 뿐 아니라, 교과 과정에도 없는 스펙 쌓기용 시험 대비나 수학 선행 학습 등은 혼자서 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결국 아이들은 방학 때도 학원에 간다. 거기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같이 밥도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학원에 안 가면 친구 얼굴 볼 기회도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 대학에 가면 달라질까? 불행히도 아니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 준비에 뛰어들면서 4년 안에 졸업하는 대학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인턴이니 자격증 시험이니 하면서 각종 스펙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졸업하고 나서 취직 준비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자칫 무능력자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악착같이 학교에 적을 둔 채 취직 준비를 하느라 졸업을 안 한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등록금 때문에 한 학기 벌어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느라 졸업이 늦어지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오바마와 딸 말리아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큰 딸 말리아가 대학 입학 전 ‘갭 이어’(gap year)를 선택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갭 이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이나 대학원을 가기 전, 아니면 직장 생활 직전에 여행 등으로 사회 경험을 쌓는 기간을 뜻한다고 한다.

미국 언론들은 말리아가 갭 이어를 보내기로 했다면서 갭 이어가 미국 사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고 전했다. CBS 방송은 지난해에만 고교 졸업자 3만 3천 명이 갭 이어를 택했다면서 이는 2011년보다 2배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말리아가 입학하기로 한 명문 하버드대는 홈페이지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들이 등록을 1년 미루고 여행이나 특별한 활동을 하거나 다른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길 권장한다.”면서 해마다 80-110명의 학생들이 입학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나아가 대입과 취업을 위한 준비가 이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면서 학생들이 큰 압박을 받고 있다며 1년에 걸친 휴식 기간에 “한발  물러나 돌아보면서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대한 시각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프린스턴대나 노스캐롤라이나, 터프츠대 등은 입학을 앞두고 대학에서 본격적 학문을 하기에 앞서 국내나 해외에서 1년을 보낼 수 있는 독자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 갭 이어 기간에 해외 여행을 했다는 학생도 77%나 됐다.

갭 이어가 학업 성취도 향상에 기여했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미들버리칼리지 입학허가처 조사에 따르면 갭 이어를 사용한 학생들의 평균 학점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지속적으로 높았다. 물론 미국 학생들도 모두 갭 이어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못 가고 휴학하는 학생은 대부분 재정적으로 어려운 소수계 인종이거나 저소득층 자녀라고 한다.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 제도를 항상 칭찬한다고 하지만(한국 학부모 입장에서 공감이 잘  안되지만) 우리 대학생들이 취직 준비 때문에 학교를 오래 다녀야 하는 현실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목표를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갭 이어를 누리는 미국 교육은 우리보다 앞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꿈꿀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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