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황금 주파수'는 왜 통신사에게 버림받았을까?

[취재파일] '황금 주파수'는 왜 통신사에게 버림받았을까?
700 MHz(메가 헤르츠) 대역 주파수. 방송국에 근무하는 저도 잘 모르는 주파수 얘기지만 700 MHz는 일반인들도 왠지 친숙하다는 느낌이 들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대역의 주파수를 놓고 지난해 방송사와 통신사들이 일대 전쟁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서로 자신들이 꼭 사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한동안 신문과 방송을 통해 반복해서 700 MHz를 듣다보니 귀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700 MHz 주파수 대역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것이 발단입니다. 당시 미래창조과학부는 이 주파수를 이동통신 용도로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동통신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일어날 모바일 대란을 막기 위해 여유 주파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게다가 700 MHz는 저주파 대역으로 다른 대역에 비해 전파가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어 기지국 숫자를 기존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만큼 통신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이 대역의 주파수를 ‘차세대 방송’인 UHD(초고화질) 방송에 써야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주파수 배분 권한이 있는 미래부는 통신사들의 입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 방송사는 경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급기야 국회가 나섰습니다. 차세대 방송인 UHD 방송의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위해 700 MHz는 방송에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논쟁으로까지 비화된 이 전쟁은 결국 교묘한 ‘타협’으로 끝났습니다. 재난?구조 통신 대역을 제외한 나머지를 통신과 방송에게 반반씩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통신은 2개사 가운데 1개사만이 700 MHz를 대역을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방송은 전국 동시 UHD 도입이 불가능해졌고, 지역별로 단계를 밟아 서비스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타협이라지만 양측 모두 뒷맛이 씁쓸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통신과 방송 양측의 구애를 받은 700 MHz 대역은 국민적 인지도를 갖게 되면서 ‘황금 주파수’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황금 주파수’ 700 MHz가 시장에 나왔는데 사겠다고 나선 통신사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5개 블록(주파수 대역)에 대해 경매를 벌였는데 유일하게 700 MHz 대역만 유찰된 것입니다.

거칠게 비유하면 이런 것이죠. 1 상자만 남은 특정 제품의 과자를 놓고 A, B 두 상점이 서로 달라고 싸웠습니다. 싸움이 커지자 판매상은 상자를 열고 과자를 둘로 나눠 반은 A 상점에 주고 나머지 반은 B 상점에 다른 종류의 과자들과 함께 상품으로 내놨습니다. 그런데 B 상점은 문제의 과자를 제외한 나머지만 사갔습니다. 속된 말로 '헐!'이죠.

이런 황당한 상황에 대한 미래부의 설명입니다.

우선 A 블록, 즉 700 MHz 주파수 대역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쌌습니다. 실제 나머지 대역 가격이 3천억에서 6천억 원인데 비해 A 블록만 7천6백20억 원에 달했습니다. 저주파대일수록 최저가격이 올라가는 산식에 따른 결과라고 합니다. 최저가격이 더 낮아지면 응찰자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700 MHz 대역을 통으로 통신에 쓸 수 없는 점도 걸림돌이었다고 합니다.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재난망, 지상파, 통신사가 나눠 쓰게 됐고 게다가 무선 마이크가 쓰는 전파 대역과도 겹칩니다. 간섭의 우려가 크다는 겁니다. 결국 이 대역의 인기가 저하된 데에는 지상파의 탓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다양한 대역의 주파수가 경매에 나온 점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기왕에 고주파 중심으로 주파수를 확보하고 있는 통신사가 저주파 대역에 뛰어들기를 주저했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주파수 대역의 근처 대역을 확보해야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 없이 호환과 확장을 하기 편하죠. 투자의 우선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일견 그럴 듯한 설명이지만 여전히 이상합니다.

700 MHz 대역을 확보하지 않으면 당장 이동통신이 중단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통신사들이 정작 시장에 나오니까 거들떠보지도 않다니 말입니다. 가격이 좀 비싸다고 아예 구매를 포기할 정도면 그만큼 불요불급 하다는 뜻 아닌가요?

게다가 SK텔레콤의 경우 E 블록을 3천2백77억 원에 사들였습니다. 이 대역은 LG유플러스가 광대역 서비스를 하는 2.6 GHz에 이어져 있어 SK텔레콤으로서는 그다지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따라서 SK텔레콤이 LG유플러스의 서비스 영역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용도로 사들였다고 추정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이런 데 쓸 돈은 있으면서 ‘황금 주파수’를 사는 데 들일 돈이 없다니요.

이에 대해 주파수 전문가들의 설명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700 MHz 주파수는 더 넓은 지역을 커버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신사의 입장에서 이 장점은 거꾸로 단점일 수도 있습니다. 기지국 하나가 넓은 지역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은 뒤집어서 보면 해당 주파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와이파이를 쓸 때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답답한 것과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통신 품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통신사들은 오히려 기지국의 도달 범위가 좁은 고주파 쪽으로 계속 영역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기지국 당 이용자 수가 적으니 더 많은 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죠. 갈수록 개인당 처리하는 데이터 용량이 커지는 현재의 통신 추세를 고려할 때 통신사에게 저주파 대역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고주파 대역에 대한 수요가 커집니다.

궁극적으로 5G 통신으로 발전하면 주파수도 5 GHz 대역으로 올라갈 전망입니다. 심지어 개인별 기지국이 생긴다는 예상도 나옵니다.

멀리까지 도달해 다중이 이용할 수 있는 주파수 특성은 현재의 통신보다는 방송에 적합합니다. 그래서 700 MHz를 방송이 사용해왔던 것이고요."

"700 MHz를 통신에 줘야 한다는 논리 가운데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거론됐었죠. 다른 나라들은 모두 통신이 이용하고 있어 통신에서의 국제적 협력이나 세계 통신 시장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추세는 정 반대입니다. 700 MHz를 우리 방식으로 통신에 이용하는 나라는 호주 단 한 곳뿐입니다. 미국, 중국 얘기하는데 아예 주파수 배분 방식이 달라 논외의 상황입니다.

호주라는 시장은 통신 업계에서 보면 대단히 마이너 합니다. 그러니 단말기 업체든, 설비 업체든 700 MHz를 위한 기기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대량 생산이 되지 않으니 기기의 대당 가격은 비싸고 따라서 통신에 있어 700 MHz의 경제적 가치는 그만큼 떨어집니다.

반면 현재 세계적인 통신의 주요 주파수 대역은 2.1 GHz나 2.6 GHz입니다. 이 대역에서 하드웨어 업체들은 앞 다퉈 단말기와 설비 등을 개발, 생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성능도 우수하고 값도 싸죠. 통신업계가 어느 대역에 더 관심을 갖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신업계와 미래창조과학부가 통신 기술의 발달 추세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주파수 배분을 하려 했던 것 아닌가? 또 그런 일종의 실수를 수정하기 보다는 기존 결정을 번복하기 싫어서 억지 논리를 개발했던 것 아닐까?
그리고 결국 그 누구보다도 돈의 논리에 민감한 시장의 선택에서 억지스러움이 탄로 난 것 아닌가?

이제라도 기존의 논리들을 다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제대로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황금 주파수'를 어떻게 사용할 때 진정한 황금이 될 수 있는지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