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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건축의 본질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무너지지 않는 것"…김종성 건축가 인터뷰 ②

인생의 ‘터닝 포인트’ 남산 ‘힐튼 호텔’ 설계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종성 건축가는 서울 힐튼 호텔을 시작으로 육군사관학교 도서관, 부산 파라다이스비치호텔,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현 우리금융 아트홀), 서울역사박물관, 종로 SK그룹 빌딩,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 등을 지었습니다. 도심을 걷다 보면 쉽게 만나게 되는 익숙한 건물들이지만, 건물 모두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많은 작품 중에 어떤 건물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 역시, 남산에 있는 ‘힐튼 호텔’이죠.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가 한국에 돌아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건물이기도 하죠. 그때가 1978년이었는데,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경험이 있는 젊은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고 싶다.’라고 해서 대우에서 저한테 연락했어요.
 
처음엔 교수직을 휴직하고 잠시 들어왔는데, 건축 허가가 늦어지면서 계속 못 돌아가게 됐어요. 그래서 결국, 안 돌아가고 대학에 사표를 냈어요. 건축가로 살다 보면 ‘자신의 삶'과 '일생의 작품'을 두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저한테는 그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죠. 저는 저 자신을 교수이기 전에 '건축가'라고 생각했기에 미련 없이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자랑을 좀 하자면, 힐튼 호텔은 다른 호텔과 다르게 대지의 높은 쪽에서 호텔에 들어서게 됩니다. 쉽게 말해, 입구가 건물 내부보다 더 높은 거죠. 그래서 로비에서 아래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조인데, 아파트 6층 높이의 공간을 트이게 설계해서 들어서면 눈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최근에 다시 가봤는데, 몇십 년이 지금 봐도 뿌듯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요. 더욱이 모국에 돌아와 처음 지은 건물이라는 더 애착이 많이 갑니다.
서울 남산 힐튼 호텔
서울 남산 힐튼 호텔 내부
- 또 다른 작품 중에는 어떤 게 애착이 가시나요.

= 참 많은데, 경주에 지은 선재박물관(현 우양미술관)도 기억에 남네요. 박물관이란 특수한 공간이라 공을 많이 들였어요. 그 건물에는 제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 화려하지 않지만 질리지 않는 그런 저의 철학이 잘 녹아들어 갔습니다. 종로에 있는 SK 본사 사옥도 사무실 빌딩으로서는 기능적 효율이 높습니다. 버리는 공간 없이 건물 내부를 매우 잘 활용했지요.
 
- 다른 건축가 건물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은 어떤 게 있나요?

=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도 인상적이고요.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이지만, 여의도에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 건물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건축문화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목동 SBS 사옥도 회사 이미지를 잘 드러내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설계할 때 ‘리처드 로저스’를 설계자로 위촉했단 걸 알고, 나도 아주 잘했다며 박수를 참 많이 쳤어요. 방송사 사옥은 임대용 건물과 다르게 비례나 공간 활용보단 상징성을 나타내는 게 매우 중요하거든요. SBS의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밖으로 잘 드러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그런 건 잘 실천한 건물이 매우 드물어요. 그런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SBS 목동 사옥
- ‘건축 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건축’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 건축은요,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에요. 이건 일본인 쓰는 ‘토건’이라는 단어와는 또 다른 거예요. 좀 더 설명하면, 길을 닦고 도로를 내는 토목과 건물을 설계라는 건축은 다른 개념이죠. 건축에는 ‘예술’이란 개념이 더 강하게 포함돼 있습니다.

예술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 시대의 기술을 활용할 때 나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명동성당을 지을 때 기술과 지금 GBC를 설계할 때 쓰는 기술이 다르거든요. 그때는 105층짜리 건물을 짓겠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은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고 그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건축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건축 환경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후배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해주실 말씀이 있으세요?

= 제가 한국에서 활동한 지난 28년 중 지금이 제일 어려운 거 같습니다. 70년대 석유파동 때도 고생했지만, 3~4년 정도 반짝 힘들고 금방 벗어났거든요. 근데 지금은 매우 긴 침체에 빠져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게 ‘공부’라고 생각해요.

교수들은 후배 양성에 매진하고, 기성 건축가들은 꾸준히 공부하면서 새로운 도약기를 준비합니다. 나도 학부 때 처음 읽고, 대학원 때 두 번째로 읽고, 그리고 그 이후로는 보지 않는 책들이 있는데, 그걸 다시 꺼내서 보니까 새로운 영감이 오더라고요.

내가 가진 건축에 대한 생각과 철학 그런 것들이 좀 더 정리되는 거 같았습니다. 유행이 지난 여성복 같은 거로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맡고 계신 현대차그룹 글로벌비즈니스센터가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길 바라나요?

= 건축이란 긴 시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고, 말하자면 본연의 어떤 목표 그것을 간직하는 게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로서는 한 25년, 50년 지난 후에 이 GBC프로젝트가 “아 그때에 정말 자동차그룹이 좋은 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한국 건축문화 창달에 말하자면 한 획을 그었다.” 그런 평을 들으면 참 좋겠어요.

그리고 시민이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됐다.”라고 생각해준다면, 후대에 그렇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이 좋겠죠. (웃음)
 
인터뷰하며 김종성 건축가가 가장 많이 꺼낸 단어는 ‘본질’이었습니다. “건축의 본질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분야든 본질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배우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중심을 잡고 있지 않으면 자칫 화려한 것에 현혹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화려하고 멋있는 외국 건축을 보면서 감탄하기보단 건축의 본질, 비바람을 막고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부터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본질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 필요한 게 비단 건축만은 아닐 것입니다. “본질에 충실하라.”라는 그의 ‘죽비소리’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길 기대합니다. 

▶ [취재파일] "건축의 본질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무너지지 않는 것"…김종성 건축가 인터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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