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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렌즈에 담긴 여수-순천사건…"갈라선 나라"



"이 사건을 다루는 일은 힘도 들뿐더러 두려움이 앞섰다. 기사를 쓰는 순간에도 소총과 자동화기 소리가 들려 전쟁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다."

데이비드 던컨과 함께 20세기 최고 종군사진기자이자 포토 에세이의 개척자로 꼽히는 미국 사진기자 고 칼 마이던스.

그가 남긴 1948년 여수-순천사건의 기록물들은 비교적 알려진 편입니다.

재미사학자 유광언씨가 지난 27일 마이던스 사진들을 당사자의 직접 설명과 함께 다시 소개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유씨가 주목한 건 작품의 제목입니다.

당시 '라이프'지의 작가였던 마이던스는 여수-순천 사건의 기록물들에 '갈라선 나라(House Divide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는 성경 마르코복음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가 2004년 타계해 정확한 인용 연유를 알 길은 없지만 여수-순천사건 후 대한민국 분단의 골이 더 깊어지고 나아가 영구 분단 상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것으로 유씨는 추정했습니다.

실제로 라이프지도 여수-순천사건을 두고 "앞으로 다가올 한국전의 잔혹한 서곡"이라고 예견했습니다.

1947년 라이프지의 일본지국장이 된 마이던스는 한국을 오가며 보도 활동을 하던 중 1948년 10월 여수-순천사건이 발발하자 현장 취재에 나섰습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됐을 때도 제일 먼저 달려와 1952년까지 전선을 따라다녔습니다.

그의 주제는 항상 최전방에서 싸우는 사병과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피난민, 학살당한 민간인과 군 포로들이었습니다.

1948년 10월19일 반란 후 여수를 탈환한 진압군이 공산당원을 솎아내 재판에 회부하려 이동시키는 장면, 순천 반군에 의해 처형된 인사의 시체 앞에서 오열하는 가족들과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미국 고문관의 침통한 표정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반란군에 의해 처형된 시신들을 지키는 부녀자들, 순천의 한 학교 운동장 옆에 총탄 자국이 선명한 반군의 시신들, 먼 곳에서 집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는 주민, 군용트럭에 묶인 반군들의 모습도 가감 없이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반군 동조자로 의심받은 어린 학생들이 구금된 모습, 진압군에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양손을 들어 보여주는 주민들을 찍은 사진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합니다.

마이던스는 "밤이 되자 반군은 가가호호 수색해 우익성향의 인사를 즉결 처분하든지 집결지로 끌고 가 집단으로 총살했는데 2∼3일내 500명 이상을 학살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또 "순천을 탈환한 진압군도 잔인하긴 매한가지였다. 아기를 등에 업은 부녀자들이 보는 가운데 그들의 남편이나 아들을 몽둥이, 소총 개머리판, 심지어는 철모로 구타했고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고 적었습니다. 

(연합뉴스 / 사진 제공 : 유광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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