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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대통령 선거개입 ② : '노무현-이명박-박근혜' 권력자의 욕망

‘청와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해도 되나’
‘TK 방문한 박 대통령, '진박 마케팅’ 역풍 두렵지 않나‘

진보 진영, 야당에서 나온 평가가 아니다. 보수 언론의 사설 제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개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보수 진영까지 나서 비판을 했을까.

박 대통령은 총선 34일을 앞 둔 지난 10일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지역 소위 진박(眞朴/박 대통령을 진실 되게 따르는 세력) 후보들의 여론조사 경선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구 동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시작으로 북구에서 열린 국제섬유박람회, 수성구에서 열린 스포츠 문화 산업 비전 보고대회, 경북 안동에서 열린 도청 개청식까지 한 시간 단위로 4개 일정을 소화했다. 무리할 정도로 꽉 짜인 행보였다. 특히, 국제섬유박람회는 10여 년 이상 진행되어 왔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경상북도 신청사 개청식 참석
대통령의 역동적인 행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두고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 개입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경북도청 개청식에서 총선 예비후보 중에서 진박으로 분류되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하고만 악수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악수를 한 사람이 장관 시절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총선 승리”를 외쳤던 정종섭 후보였기에 선거 개입이란 지적이 보수 진영에서까지 나온 것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경제 행보’라며 선을 그었지만, 야당은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찾은 곳은 모두 진박 후보가 고전하거나 야당 후보가 강세를 보이는 지역구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방문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공정선거를 엄정 관리해야할 대통령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지원하듯 직접 지역을 찾고 있으니 경악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선거 개입이라는 의혹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16일에는 부산을 방문했다. 청와대는 “창조경제 현장점검의 일환으로 부산센터 개소 1년에 맞춰 부산 방문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왔다. 박 대통령이 찾은  부산 해운대구, 서구, 사하구는 ‘공교롭게도’ 진박 후보가 경선 중이거나 그 인접지역, 그리고 야당세가 강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 “배신의 정치를 심판…진실한 사람 선택”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개입 
대통령의 선거개입 의혹이 문제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마치 드라마처럼 각본대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을 두고 갈등을 빚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포문을 열었다.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선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는 발언이 나왔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 또는 청와대 수석을 역임한 대통령의 참모들은 줄줄이 대구·경북 지역 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은 대통령과 사진을 찍었다. 대통령은 함께 사진을 찍은 후보들이 출마한 곳을 직접 방문하거나 직접 손을 맞잡았다.
결국 사진은 ‘진실한 사람’의 표식, 이른바 ‘진박 인증샷’이 됐고, 이들을 지칭해 ‘진실한 사람’이라는 걸로 통하게 됐다. 게다가 공천 과정에서는 대통령의 메신저로 통하는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만났다는 의혹까지 터져 나왔다. 여당 내 비박계와 야당은 “도를 넘었다”며 “지나친 선거개입을 중단하라”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의 선거개입에 대해 야당은 비판하고, 여당은 대통령을 옹호하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된 문제였다. 차이가 있다면 공격과 수비의 주체가 바뀐 정도. 대통령을 비판하던 세력도 대권을 쥐면, 자신이 비판한 대상의 행동을 답습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 ‘공수(攻守) 교대’된 대통령 선거개입

2003년 12월 19일, 故 노무현 대통령은 ‘리멤버 1219’라는 행사에 참석했다. 대통령 당선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 등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이 행사에서 노 대통령은 “여러분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노사모가 다시 한번 뛰어달라”고 당부했다. 이듬해인 2004년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탈당자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노 대통령이 불법 선거운동을 벌였다며 반발했다. 새천년민주당도 “대통령은 패거리의 대장이 아니다”며, “온 국민의 대통령이 되라”고 촉구했다. 열린우리당은 정치개혁 의지를 표현한 것일 뿐이라며 대통령을 감쌌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비판하는 야당이지만, 자신들이 집권당이었을 때는 비판 대상과 똑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야당의 비판에 개의치 않는 ‘마이 웨이’ 행보를 보인 것도 닮은꼴이다. 노 대통령은 총선 57일 전인 2004년 2월 18일 청와대에서 경인지역 언론사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야권에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또 한번 호소한 것이다.

●  “압도적 지지”…탄핵까지 당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개입

며칠 뒤인 2004년 2월 24일, 노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선거개입 발언을 쏟아냈다. 노 대통령은 총선 전망을 묻는 패널의 질문에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에게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을 노무현 뽑았으면 나머지 4년 일 잘하게 해 줄거냐, 아니면 흔들어서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할거냐는 선택을 우리 국민들이 해 주 실거다”고 덧붙였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대통령이 본분을 망각하고, 특정 정당을 위한 불법적 사전 선거 운동을 계속해 왔다”고 비판했고,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는 노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이 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은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탄핵 정국 속에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단독 과반 의석을 달성했고,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탄핵 사건이 남긴 건 뭘까? 선거개입을 통해 과반을 확보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선거개입을 하더라도 탄핵 사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바로 ‘노 전 대통령의 행위는 선거개입이었고, 앞으로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 된다’는 것이 헌재가 내린 결론이었다.

● '말'에서 '행동'으로 바뀐 선거개입

하지만,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 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하지 않았다. 헌재의 판결 이후에도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은 계속 불거졌다. 바뀐 게 있다면 노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칭해 탄핵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의식해서인지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서 ‘주어’와 ‘목적어’가 사라졌다. 논란이 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배신의 정치’의 당사자는 누구인지, ‘진실한 사람’이 누구인지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정종섭 행정자치부의 장관의 “총선 승리” 발언이 논란이 되자 새누리당은 “주어가 없다”며 정 장관을 엄호하기도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바뀐 점이다. 지지층에게 명확한 메시지는 전하면서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의도적 노림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의 대구와 부산 방문 이후 쏟아진 비판에 청와대가 경제행보라고 반박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대통령이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적 논란을 비껴나기 위해 해석의 여지를 둔 것인데, ‘말 보다 행동’ 방식의 선거개입 시작은 전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대 총선을 불과 4일 앞둔 2008년 4월 5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서울 은평 뉴타운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은평 뉴타운 건설 지역은 ‘MB정권 실세’로 불렸던 이재오 의원이 야당 의원과 접전을 벌이고 있던 지역이다. 당초 4월 5일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열리는 도라산 평화공원 식목행사만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는데, 은평 뉴타운 방문은 하루 전인 4월 4일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은 반발했다. 특히, 서울 은평을에서 접전을 펼치던 문국현 후보가 소속된 창조한국당은 이 대통령의 은평 뉴타운 건설 현장 방문에 대해 “자신의 최측근 이재오 후보를 구하기 위한 명백한 불법 선거 개입”이라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밀어붙이며 선거중립 의무 준수를 촉구한 한나라당이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행태는 어떻게 생각하냐”며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추진했던 은평 뉴타운 사업과 노숙인 자활 프로그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챙겨보자는 차원에서 방문했다”며 대통령을 엄호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4년 전 자신들이 비판했던 열린우리당에 내어놓았던 입장을 그대로 가져왔다.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이 개탄스럽다”면서 “야당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은 선거 기간 ‘올 스톱’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란 말이냐”며 대통령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 전국 광폭 행보…'행동'으로 보여준 이명박 대통령 선거개입

이명박 대통령의 특정 지역 방문 방식의 선거개입 논란은 취임 이전부터 준비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두 달 뒤에 총선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부처별 업무 보고 목적으로 전국을 순회했다. 역대 정부와는 다른 행태의 업무 보고였고, 방문지마다 문제적 발언을 작심한 듯 쏟아냈다.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보고에서 국무총리가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이번 내각은 강원도 내각”이라고 말했고, 전북 군산 새만금을 방문해서는 “군산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지역주의에 기대 표심을 자극한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경북 구미를 방문해서는 구미 공단의 확대와 관련한 선물을 주겠다고 했고, 대전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는 지역 숙원 사업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사업의 “조기 착공 검토”를 약속했다. 야당은 당연히 반발했다. 당시 야당인 통합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 너무 노골적이고 구체적이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국 순회 행보는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반복되었다.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자체단체를 돌며 열린 지자체 업무 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지역의 숙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야당인 민주당은 이 대통령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선거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의 선거개입은 반복돼 왔다. 공수만 바꿔가면서 누가 정권을 잡아도 같은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도 이유가 된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정치 중립을 규정한 연방공무원법 대상에 대통령이 제외돼 대통령의 선거 관여는 허용돼 있어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이 문제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선관위 해석에 따라 대통령의 선거 개입 유무가 1차적으로 결정돼 선관위의 결정 자체를 두고 다시 논란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대통령 스스로에게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곤 대통령의 통상 업무와 정치 행위가 모호해 질 수 있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반드시 필요한 업무가 아님에도 특정 지역을 방문하거나 특정한 정책을 추진해 의도적으로 정치적 논란으로 뛰어든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서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국회 내 안정적 의석과 우군을 확보해 국정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역대 대통령들은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런 영향력이 과할 때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역대 대통령이 그러했듯 이번에 또 다시 불거진 대통령의 선거개입. 박근혜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이번 총선에 순풍이 될까, 역풍이 될까.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 [마부작침] 대통령 선거개입 ① : 예외는 없었다
▶ [마부작침] 대통령 선거개입 ③ : "최대한 하지마" 법치 준법의 상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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