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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돌아온 '대한문 대통령'

[취재파일] 돌아온 '대한문 대통령'
치안정감 인사에서 시작한 경찰 간부 인사가 지난달 말 경정 인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늘 그렇듯 ‘될 사람이 됐다’는 반응 이면엔 ‘아니, 저 사람이 어떻게?’라는 뒷말도 남았다.

어느 조직에나 인사 불만은 있기에 이런 상반된 평가가 새삼스러울 건 없다. 다만, 인사란 '인사권자가 조직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걸 생각할 때, 충북 보은경찰서장 최성영 총경의 서울경찰청 1기동단장 발령은 주목할 만하다.

최 총경은 이른바 ‘집회·시위 관리(경비) 전문가’다. 한국 경찰에게 집회와 시위는 ‘보장’의 대상이기 보다 ‘관리’, 때로는 ‘진압’의 대상인데 그는 2008년 서울경찰청 제1기동단 부단장(경정)을 맡으며 이 분야 전문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사이 서울 도심권 집회를 취재한 기자라면 대부분 최 총경의 집회 대응에 낯설었던 경험이 있다. 우리사회가 수십 년에 걸쳐 애면글면 진전시켜온 ‘집회·시위의 자유’가 퇴보하는 걸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1월 서울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으로 부임해 ‘경찰의 꽃’ 총경 자리에 오르기까지 3년간 최 총경이 보여준 집회·시위 대응은 언제나 시민사회의 반발을 샀다.

2013년 4월, 서울 중구청이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 노동자 추모 분향소’를 강제 철거할 때다. 최성영 당시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 현장을 ‘관리’하기 위해 나왔다. 노동자 측과 구청 용역 사이 혹시 일어날지 모를 충돌을 막는 역할을 예상했지만 이후 벌어진 광경은 정반대였다.

최 과장은 용역의 철거와 이를 지켜보기만 한 경찰에게 항의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줄줄이 연행했다. 이를 기록하는 기자들의 취재도 가로막혔다. 그때 연행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법원은 이들에게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며 구청의 폭력적 철거와 경찰력 집행의 과잉을 지적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대한문 앞에서 ‘집회의 자유를 찾기 위한 시민 캠페인’을 주최했을 때다. 이번에도 ‘관리’를 위해 나타난 최 과장은 느닷없이 집회를 막았다. 참가자 일부가 ‘신고 장소 밖에서 현수막을 폈으니 불법’이란 거였다.
최 과장과 한참을 옥신각신하던 민변 측이 결국 ‘집회 방해’ 혐의로 최 과장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들의 팔에 붙들린 최 과장은 “당당히 검찰 조사를 받겠다”며, 남대문서 방향으로 수십 미터를 자진해 ‘연행’됐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시민사회는 그에게 ‘대한문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로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무시했다는 의미다. 혹자는 그가 윗선의 지시를 그대로 따른 실무자에 불과하다며, ‘남대문의 아돌프 아이히만(나치의 유대인 학살 실무 책임자)’이라고까지 불렀다.

시민사회의 이런 평가와는 달리, 2014년 최 과장의 총경 승진이 말해주듯 그의 집회 관리 역량은 경찰 내부에서 인정받았다. 당시 시민사회는 “박근혜 정권이 ‘헌법과 법률을 근거로 공권력을 집행하지 않고 오직 정권의 말만 잘 들으면 승진시킨다’는 방침을 선언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총경 인사를 놓고 시민사회가 비판 성명을 낸 건 이례적이다.

그런 그가 서울경찰청 제1기동단장이 돼 돌아왔다. 서울 각지에서 벌어지는 규모 큰 주요 집회와 시위에 투입될 1천 명의 기동대원들이 그의 휘하에 있다. 시민사회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우려에 대해 서울 경찰청의 한 고위 간부는 “큰 의미 없는 인사”라며 일축했다. 기동단장을 지낸 또 다른 간부 역시 “최 총경이 (집회 관리)임무에 적합하다는 게 평가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번 인사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작 최 총경과 직접 맞닥뜨려 본 쪽은 ‘대한문 대통령’의 귀환을 정권과 다른 생각과 목소리를 표출했다간 ‘가만 두지 않겠다’는 권력의 의지로 여기는 분위기다. 그를 체포하기도 했던 민변의 권영국 변호사는 “그동안 집회 현장에서 맞닥뜨린 기동단을 보면 집회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듯했다”며, 기동단 지휘관으로 최 총경이 임명된 것을 우려했다.

때맞춰 경찰 총수는 앞으로 폴리스라인을 넘는 집회참가자가 있으면 즉시 체포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이 땅에서 집회·결사의 자유가 뒷걸음치고 있다는 UN 특별보고관의 경고는 안중에도 없다.

최 총경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집회·시위에서의) 폭력행사는 이제 국민들이 용납 안 한다”며, “사소한 불법을 방치하면 한 없이 늘어나기 때문에 엄정히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시민사회와의 마찰에 대해선 “항상 법과 원칙대로 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법과 원칙이 어떤 얼굴로 시민들을 맞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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