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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롱받는 공권력에 환호하는 대한민국…"검사외전은 픽션이 아니다"

[취재파일] 조롱받는 공권력에 환호하는 대한민국…"검사외전은 픽션이 아니다"
지난 수요일(3일) 늦둥이 셋째 딸이 이날 개봉하는 영화 ‘검사외전’을 보러 가자고 했다. 집 근처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상영시간은 저녁 9시40분, 좀 이른 시간은 없냐고 하자 맨 앞자리 밖에 없단다. 9시 40분 타임도 16줄 가운데 앞에서 5번째 줄, 고개를 쳐들고 보게 생겼다.

배우 강동원에 끌려 영화를 보자고 하던 중2 막내는 선뜻 이해가 안가는 제목 ‘검사외전’이 못내 이상한지 “아빠, ‘쿵푸 팬더3‘으로 바꿀까?” 한다. 아내와 나는 “야, 이미 표 바꾸긴 늦었어”라고 핀잔을 주며 영화관으로 직진했다.

영화시작 5분 전 도착한 영화관은 예상과 달랐다. 평일 늦은 시간이었지만 3백여 명이 들어가는 메가박스 3관은 맨 앞좌석부터 관객들이 들어차 있었다. 

영화의 시작은 다소 실망, 실사도 아닌 만화 컷에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먼저 소개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토리가 재미를 더했다.

‘피의자를 조사하다 때려 죽였다는 누명을 쓴 검사가 옥중에서 사기꾼을 이용해 누명을 벗고, 재벌과 결탁하고 후배에게 누명을 씌우며 잘 나가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선배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 선거철인 지금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 ‘히말라야’와 ‘베테랑’ 등에서 이미 익숙해진 검사 황정민과 사기꾼 강동원이 검사와 판사를 농락하는데 대부분 관객들이 때로 웃으며 때로 진지하게 몰입 했다.

영화가 끝난 뒤 많은 사람들이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로 옆에서 영화를 본 젊은 커플 가운데 남자 녀석이 “이제 황정민에 질렸다. 만날 똑 같은 캐릭터야. 너무 뻔해”라고 하자, 함께 영화를 본 여자 친구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배우만 보고 스토리는 못보냐…’며 핀잔을 주는 듯….

이런 인기를 입증하듯 ‘검사외전’은 개봉 이틀 만에 관객 1백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하루 1백만을 돌파한 영화 '명량' 만큼은 못하지만 인기몰이를 했던 '암살'을 넘어선 기록이란다.

특이한 것은 최근 이렇게 인기 몰이를 하는 영화들 가운데 우리사회의 지도층, 특히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 법조계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
작년 11월 개봉한 이병헌 주연의 ‘내부자들’, 좀 결이 다르지만 8월 개봉한 황정민과 유아인 주연의 ‘베테랑’, 2013년 1월23일 개봉한 ‘7번 방의 선물’. 특히 ‘7번방의 선물’은 엄청난 공권력에 희생되는 딸 바보 이용구(배우 : 류승용)가 영화를 보던 남녀노소 많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했다.

이처럼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보는 힘 없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영화가 붐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아마 2012년1월 개봉한 안성기 주연 영화 ‘부러진 화살’이 나오면서 부터인 것 같다.

대입 수학시험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갖가지 누명을 쓰고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김명호 교수. 바로 9년 전인 2007년 1월14일 석궁을 메고 패소 판결을 내린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아파트 현관에서 “왜 패소 판결을 내렸나?”를 추궁하며, 박 판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석궁이 발사되고, 김 교수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동료 윤창현 기자와 함께 김명호 교수의 사건을 한 달 동안 추적해, 사건 발생 꼭 한 달 후인 2007년2월14일 SBS 탐사 프로그램 ‘뉴스추적’에서 방송했다. 뉴스추적 413회 ‘전직교수 김명호, 그는 왜 法을 쐈나’는 그해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바로보기] 2007년2월14일 SBS 뉴스추적 413회, ‘전직교수 김명호, 그는 왜 法을 쐈나’
“법 무시하는 판사들처럼 무서운 범죄자가 없어요. 그들의 판결문은 치명적인 흉기고, 나는 단지 그 치명적인 흉기에 당한 수십, 수백만 중에 한 명일 뿐이에요.”
(성균관대학교 김명호 前교수)

서울 성동구치소를 찾아간 취재진에게 외치던 김명호 교수의 육성이 지금도 귓전에 선하다. 김명호 교수는 처음보다 감형이 됐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4년 형을 확정 판결 받았고 2011년 만기 출소했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1992년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시동을 건 사법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정보공개를 확대해 투명성을 높이고, 재판과정에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사법개혁은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속도는 느리다.

9년 전 당시 김명호 교수의 구명을 추진하던 교수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모든 재판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재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판사 1인의 판단에 의존하는 재판은 공정성을 잃기 쉽고,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의’는 국민들이 최종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네편 아니면 내편 식의 각종 진영 논리에 휩싸여 있다. 젊은이들은 ‘금수저와 은수저, 흑수저’를 논하며 출신성분을 탓하고 있다. 사회 계층간 격차가 심해지고, 계층간 이동은 정체되면서 나타나는 갈등 양상이기도 하지만, 우리사회의 융합을 해치는 불만의 근원은 무엇보다 “우리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일 것이다.

정의사회 구현은 사법부에 달려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법부는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법원’을 외치고 있지만, 국민들의 대다수는 여기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고, 이런 국민들의 정서가 최근 법조인들을 조롱하는 영화가 히트를 치게 하는 요인인 것 같다.

최종심인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을 포함해 공무원들과 판사, 검사들이 퇴직한 뒤 기다렸다는 듯이 로펌에 합류하고, 대기업 등의 변호를 맡았던 로펌 변호사들이 다시 판사와 검사를 맡아 판결을 좌지우지 하는 한 정의를 세우는 일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공무원과 사법부, 금권이 결탁해 판결을 좌지우지 하는 한 정의사회 구현은 난망이다“라는 말도 나온다.

‘줄푸세’.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지만, 지금 국민들은 이 공약을 실감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국민들의 진정한 외침이 무엇인지에 귀 기울이고, 국민들의 바람을 통해 표를 얻고 우리사회가 다시 활기차게 융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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