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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성 DNA 찾기 힘든 대한빙상연맹

[취재파일] 삼성 DNA 찾기 힘든 대한빙상연맹
삼성그룹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입니다. 1938년 전화기 1대와 종업원 40여 명으로 대구의 <삼성상회>라는 자그마한 회사로 출발해 기적 같은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 배경에는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인재 제일주의>가 있었습니다. 이후 그의 세 번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는 말로 대표되는 끊임없는 혁신 정신을 내걸어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국가정보원보다 뛰어나다는 특유의 정보력도 한 몫을 했습니다. 능력주의와 신상필벌 원칙도 삼성 신화를 만든 원동력입니다. 학연, 지연, 혈연 보다는 능력 위주의 인사를 실시해  잘 하면 두둑한 급여와 파격적인 승진을, 실적이 좋지 않으면 가차 없이 책임을 물으면서 오늘의 삼성을 일궈냈습니다.

이런 삼성그룹의 DNA는 소속 스포츠구단에도 그대로 전파돼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프로배구 삼성화재를 최고 명문 구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마추어 종목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학창시절 레슬링을 했던 이건희 회장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오랫동안 맡으면서 숱한 올림픽 금메달을 만들어냈습니다.

1996년 7월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기간에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이건희 회장은 대망의 IOC 위원에 올랐습니다. 이듬해 그는 당시 삼성 스포츠단 부사장이던 박성인 씨에게 대한빙상경기연맹을 맡으라고 요청했습니다. 박성인 씨는 탁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삼성에서 잔뼈가 굵은 ‘삼성맨’이었습니다. 

박성인 씨는 1997년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에 취임한 뒤 2011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연맹을 이끌어왔습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현 김재열 회장입니다. 김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입니다. 현재 연맹 실세 부회장 2명은 삼성그룹 임원이고 사무국장도 삼성맨입니다. 그러니까 삼성그룹이 지금까지 거의 20년 째 빙상연맹을 관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빙상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종합 5위 신화가 말해주듯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삼성그룹 특유의 과감한 투자로 ‘피겨 여왕’ 김연아, ‘빙속 여제’ 이상화를 배출하는 등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성과와 달리 대한빙상연맹의 후진적 문화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파벌과 반목은 여전했고 폭행, 성추행, 음주, 승부 조작(짬짜미)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사고’를 많이 쳤습니다. 

물론 삼성그룹과 대한빙상연맹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릅니다. 삼성그룹은 아무리 큰 회사라 해도 결국 사기업인데 반해 빙상연맹은 대한체육회의 지원과 관리 감독을 받는 공공기관입니다. 삼성 사장이 삼성 직원 대하듯 빙상연맹 회장이 경기인 출신 인사들과 선수, 지도자들을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빙상연맹의 후진적 관행을 완전히 바꾸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정보력 부재입니다. 대한빙상연맹은 2012년 성추문을 일으킨 외국인 코치를 임명하려다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뒤늦게 취소했습니다. 2013년 2월 주니어 월드컵 파이널 대회에는 자격이 없는 출전 선수를 파견해 결국 외국에서 뛰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작 출전 자격이 있는 선수는 선발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는 성추행 의혹이 있는 A코치를 선임하려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뒤늦게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A코치의 전력을 알고도 뽑았다면 말도 안 되고 몰랐다면 정보가 어두웠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지난 8월에 공지한 통신문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매스스타트 세계 1위인 이승훈을 결국 올시즌 월드컵 1차 대회에서 기권하게 만들었습니다. ( 1월26일 취재파일 ‘빙속 스타 이승훈, 연맹 잘못으로 0점' 참조) 삼성그룹의 정보력과 비교하면 한마디로 완전히 낙제점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삼성의 그룹 정신과 동떨어진 것은 또 있습니다.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2012년과 2013년, 그리고 2014년의 각종 ‘헛발질’에서 어떤 임원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승훈 사태’와 관련해 지난 달 29일 대의원총회에 보고된 문서를 보면 ‘국가대표 경기복 관리 철저 요망’ 한 줄로 끝입니다. 삼성그룹 같아서는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대의원총회 보고서
사실 어떻게 보면 국민 세금의 지원을 받는 대한빙상연맹은 삼성그룹보다 더 크고 더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삼성 신화를 일군 DNA는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빙상연맹에 제대로 접목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국가대표팀 코치와 선수들, 그리고 빙상계 안팎에서는 대한빙상연맹의 무능과 무책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2년 앞둔 현 시점에서 대한빙상연맹 행정의 일대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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