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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재심 도맡은 박준영 변호사…그는 ‘돈키호테’일까

[취재파일] 재심 도맡은 박준영 변호사…그는 ‘돈키호테’일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다른 기사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사람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기자가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서 인터뷰이와 면대면으로 만난 시간은 길어 봐야 몇 시간 남짓. 팩트에 대한 것과는 별개로, '이 사람을 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시간이었음을 인정한다.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을 대리해 재심 청구 절차를 도맡고 있는 한 변호사를 만났다. 박준영 변호사다. 최근에는 무기수 김신혜의 재심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터라,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이 사건 뿐 아니라 그가 맡았거나, 맡고 있는 사건들에는 공통의 키워드가 있다. ‘약자’, ‘위법’이 그것이다. 언론에서도 다루기 좋은 요소를 갖췄다. 8시 뉴스에 그에 대한 소식을 담기로 했고, 박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 시간을 잡았다. 인터뷰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하기로 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대체로 어수선하다. 누군가의 손을 탄 지 다소 긴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였다. 책상 위에는 지난 여름 자주 썼을 것으로 보이는 휴대용 선크림 두어 통이 나뒹굴었다. 사무실에 직원은 없었다.

“청소를 하고 다녀야되는데, 안하고 다녀서”
“아이고, 뭐가 많네요. 청소하는 분은 안 계세요?”
“아! 네, 네."

박준영 변호사는 형사 사건의 재심 청구 절차를 대리하고 있다. 판결의 확정력을 깨고 다시 재판을 받도록 '범인'을 돕는 일이다. 재심 개시 결정을 이끌어 내는 것부터 워낙 어려운 일이다.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라고도 한다. 그는 이런 사건들만 골라 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맡은 사건들만 나열해 보자.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 슈퍼 3인조 강도 사건, 남파 여간첩 사건.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은 2007년 수원에서 노숙 소녀가 숨진 채 발견돼 청소년 5명과 노숙인 2명이 범인으로 지목된 사건을 말한다. 박 변호사는 국선 변호사로 청소년 5명을 변호했다. 2심에서 이들이 허위 자백했단 점을 법원이 인정하면서 5명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재심을 통해 나머지 노숙인 2명의 누명을 벗겨줬다.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 슈퍼 3인조 강도 사건은 재심 청구 절차가 진행 중인 사건들이다. SBS를 비롯해 언론에도 여러 차례 기사화됐다. 두 사건은 닮은 점이 많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이 범인으로 지목됐고, 형이 확정돼 복역까지 했다. 그런데 복역을 마친 지금까지도,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마지막으로, 두 사건 모두 진범으로 지목 된-한 때 자백까지 한-이들이 존재했다. 

박 변호사는 이 사건들의 공통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1) 먼저 억울한 누명을 썼던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거죠.
지적 장애인이거나 미성년자이거나 그리고 또 아주 열악한 환경의 사람이었다는 거.
2) 또 그런 약자들을 오히려 보호를 해줘야 하는데 (수사 기관이) 가혹한, 잔인한 수사를 했다는 거죠.
3) 재판 과정에서도, 그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해주는 게 아니라 침해하는
형식적인 변론과 형식적인 재판이 있었다는 거. 이게 공통점입니다.”

사무실 정리를 못 했다며 웃던 모습과 달리, 비판하는 어투는 단호하다. 정의를 찾는 것,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 좋다. 그런데 그것을 하는 이유에 대해선 물음표가 따라온다. 시쳇말로 돈 안 되고 힘든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한다고 봐야할까. 그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생각이다. 어찌 보면 법조계의 내부 고발자이기도 하다.

왜 굳이 어려운 길만 골라 가느냐 물었다. 그는 잠시 말을 고르다 ‘경험’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 번 경험을 해 보니까 ‘이런 사례들이 꽤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보이는 게 그런 부분이에요. TV를 보다가 억울한 사건이 나오면 한 번 다시 보게 되고, 또 그런 연락이 오고. 또 이제 생각도 그런 관점에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안 했을 거예요. 경험을 했기 때문에 하는 거고요."

“저도 이런 사건 하고 싶지 않죠. 왜냐하면 연수원 나오고 했을 때만 해도 로펌에도 지원하고 대기업에도 지원했거든요. 그런데 안 됐어요. 그게 안 되면서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와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건 수임에도 한계가 있고. 그래서 국선을 할 수밖에 없던 거고. 국선을 하면서 (수원 노숙소녀 살인 사건을 통해) 재심이라는 제도를 처음 접했던 것이죠."

그는 소위 '개천에서 난 용'이다. 

가난한 집의 5남매 중 맏이였다. 형편은 어려웠고, 청소년기엔 삐딱하게 지내기도 했다.(그의 담임은 생활기록부에, "그의 준법 의식이 부족하다”고 적었다. 법조인이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고3때는 취업반이어서 공사 현장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러 다녔다. 결석을 밥 먹듯 하다 어찌 대학은 진학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한 학기 밖에 못 다녔다. 군대를 갔다가 제대하자마자 자퇴했다.  형편 탓에 사법연수원도 1년 쉬었다고 할 정도니 확실히 평탄한 환경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렇게 어렵게 변호사가 됐는데, 지난해부터는 재심 사건에 몰두하겠다며 돈 벌이를 거의 포기했다. 쉽게 이해는 가지 않는다. 별난 선택이다. 혹시 별난 미래를 꿈꾸고 있지 않을까. 유명해지고 싶은지 물었다.

“물론 유명세를 타고 싶어서 했던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를 변변치 않게 나왔잖아요. 또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유명해져야 사건 수임도 하고 좀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지금은 많이 그걸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활동, 정치나 이런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물론 그런 생각을 안 해봤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안 하려고 하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숙 소녀 사건만 해도 7년 째 계속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또 김신혜 사건도 이제 재심 개시 결정... 1심 됐고, 앞으로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요. 또 맡고 있는 다른 재심 사건들, 또 손해배상 사건들 이런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단 말입니다.

제가 다른 방향으로 틀면 그런 사건들은 도중에 그만두고 가야 하는데... 그건, (잠시 생각)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어찌됐든 제가 맡은 사건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이 계속 해야 하는 것이고 또 먼 훗날 기회가 온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은 이걸 해가지고 뭘 해야겠다,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그로선 당장 하고 있는 사건들에 몰입하는 게 당면 과제다. 그래서 직원들을 떠나 보내기까지 했다.
그도 한때는 변호사 2명을 데리고 일하며, 한달 5-6천만 원씩 매출을 올렸던 적도 있었다.

“몰입을 하려면 사람은 비용, 지출을 줄여야 하는 거예요. 이것 저것 다 같이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리고 또 제가 이런 사건 하면서 직원들한테는 죽어라 일만 시켜고, ‘당신들은 밥 벌어 먹는 사건 열심히 해’ 하는 건 모순 이잖아요. 그러니까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고. 최대한 비용을 줄여야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그렇게 해 나가기 시작했던 거죠. "
"그런데 최근에는 사건을 다시 수임했어요. 한 건 시작한 거죠. 왜냐하면 너무 힘드니까.”

기자보다 취재를 더 열심히 할 때도 있다.

“김신혜 사건 재판 결과 설명하러 가야 하고요. 다시 돌아 와서는 또 증거 수집하러 가야죠. 진범 만나러 가고, 전화번호 받아 놨거든요. 누구 또 증거 수집하러 가고. 옛날에는 그런 걸 몰랐어요. ‘변호사가 무슨 사람 만나러 다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법원을 통해서 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변호사는 꼭 이래야 한다는 어떤 역할에 개념을 규정해 버리면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더라고요. 왜 직접 못 만나러 다녀, 우리가? 그리고 직접 자료 수집 하러 가고. 이렇게 할 필요성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하니까 실제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박 변호사는 재심 사건들을 맡으며 긍정주의가 됐다. 
"잘못은 반드시 밝혀진다. 잘못은 반드시 밝혀지고 반드시 밝혀지는 과정에서 그 잘못된 상황을 안 사람들의 적극적인 증언은 반드시 나오게 돼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정말 따뜻하다...정의로운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주고 이런 시스템 자체가 부족할 뿐이지 우리나라는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들이 많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증언들이 있었고, 그 증언들을 해 준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그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 사회가 ‘따뜻하다’고 표현했다. 참으로 낭만적인 말이다. 

박 변호사네 집에는 조만간 셋째 아이가 태어난다. 맞벌이도 아니고, 처가가 유복한 편도 아니다. 첫째와 둘째아이를 영어 유치원, 이런 곳에 보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에게 군 말 한 번 하지 않는단다. 이해심이 바다보다 넓은 가족들이다. 참으로 낭만적인 가족들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고, 구태의연한 질문을 했다. 

“계획이라고 하니까 숙연해지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계획이라기 보다는...지금 맡고 있는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서 한 번 끝까지 가보자! 한번, 가보자...
다만 끝까지 가는 과정에서 내 자신의 의지나 힘을 잃는 그런 상황만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죠."

그는 '정의'를 이야기했다. 

짧은 만남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문득 '돈키호테’가 떠오른 것은 왜 일까. 물론 한 길 사람 속보다 열 길 물 속 아는 게 더 쉽다고 하니, 그는 돈키호테 형 인간이 절대 아닐 수 있다. 기자의 판단이 틀렸다고 해도, 그가 다른 유형의 사람이더라도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박 변호사가 한 말 그대로, 그가 의지나 힘을 잃을 만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다. 그가 '정의'에 도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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