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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원류 논쟁…한국 종이접기 vs 일본 오리가미

작성 2015.11.27 16:31 수정 2015.11.27 16:42 조회 재생수153,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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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접기의 원류라고 알려진 고깔을 접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국내외 동포들이 힘을 모아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만들었듯이 잃어버린 종이접기 역사를 다시 찾고 새 한류 문화로 재창조해 세계화해야 합니다."

28일부터 3일간 일본 동경한국학교에서 '한반도 평화통일과 세계 평화 기원 종이접기 축제 한마당'을 개최하는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이 오늘(27일) 일본에 도착해 동행한 지부 원장과 강사들에게 당부한 말입니다.

종이문화재단은 태권도(Taekwondo)가 가라테(Karate)를 누르고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격투기 스포츠로 우뚝 선 것처럼 한국식 종이접기(Jongie Jupgi)도 일본의 '오리가미'(Origami)를 제치고 전 세계인의 문화로 뿌리내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종이접기연합의 각국 강사들은 태권도가 '차렷', '경례', '앞차기' 등의 우리말 구령과 명칭을 전 세계에 통용시킨 것을 본떠 외국인에게도 '삼각접기', '학접기' 등 한국식 용어로 지도하며 세계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이미 대부분 국가에서 종이접기를 '오리가미'로 부르고 있습니다.

프랑스나 스페인 등 자국의 문화적 전통에 자부심이 강한 일부 나라만 예외입니다.

영어로는 'Paper Folding', 독일어로는 'Papierfalten'이라고 하는데 미국종이접기협회 창시자인 릴리언 오펜하이머가 제안해 오리가미가 종이접기를 일컫는 국제용어로 통용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됐지만 세계적으로는 각각 '젠'(Zen), '진셍'(Ginseng), '도후'(Tofu)라는 일본어로 불리는 '선'(禪), '인삼'(人蔘), '두부'(豆腐)와 비슷한 처지입니다.

비단 명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종이접기의 기호도 일본의 종이접기 작가인 요시자와 아키라(1911∼2005)가 사용하던 도면 표기법이 국제적인 표준이 됐으며, 미국과 유럽 등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오리가미란 이름으로 일본식 종이접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종이학 1천 마리를 접어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것도 일본이 전 세계에 퍼뜨린 습속입니다.

일본은 2차대전 후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 등을 앞세워 기모노, 다도(茶道)와 함께 오리가미를 적극적으로 세계에 전파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맞서 종이접기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겠다고 나선 곳이 종이문화재단입니다.

노영혜 이사장은 1987년 한국 종이접기·종이문화 재창조 운동을 제창한 이래 한국종이접기협회, 종이나라박물관, 종이문화재단, 세계종이접기연합 등을 잇따라 설립하며 한국 전통 종이접기의 복원과 현대화와 보급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종이접기 원류는 과연 어느 나라에서 비롯됐을까? 역사학자들은 종이가 중국에서 발명돼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으므로 종이접기도 이 순서를 따라 발전되고 전파됐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본서기'에 "스이코 천황 18년(610년) 고구려왕(영양왕)이 보낸 승려 담징이 그림에 능했고 종이와 먹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이때 종이접기도 함께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삼국시대부터 무속 신앙에 쓰였던 '고깔'을 우리나라 종이접기의 원형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안동 봉정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통일신라 초기 문무왕 12년(672년) 의상 대사가 영주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리고 그것이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세워 봉정사라고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조선 초 재상 하륜(1347∼1416)이 만들었다는 승경도놀이도 우리나라의 오랜 종이접기 전통의 증거로 꼽힙니다.

막대나 주사위 모양의 윤목을 굴려 높은 벼슬을 차지하는 것을 겨루는 놀이인데, 관직 이름을 적어놓은 말판을 접는 방식이 고차원의 수학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오리가미의 원형도 고대 신앙 풍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에게 기도하며 죄나 부정을 씻는 '하라이'라는 의식에 종이로 인형을 접어 사용한 것이 시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례용 종이접기는 무로마치 시대(1336∼1573)에 발달해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에 앞서 헤이안 시대(794∼1185) 말기 문인이자 시인인 후지와라노 기요스케가 지은 '청보조신집'에 개구리 종이접기에 관한 설명이 있고, 에도 시대(1603∼1867)에는 학·배·개구리 등의 모양을 종이 한 장으로 접는 방법이 70가지나 성행했다고 합니다.

오리가미는 가위나 풀을 쓰지 않고 한 장의 정사각형 종이로만 접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이를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노영혜 이사장은 "종이접기를 체계화하고 세계화하는 데는 일본이 앞섰지만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가 먼저였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도 "우리나라가 일본과 종이접기 원조 경쟁을 펼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곤란하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몇 해 전 우리나라의 한 신문이 노 이사장의 말을 인용해 "종이접기의 종주국은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고 보도하자 이를 본 일본 관계자들이 노 이사장에게 "근거를 대라"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