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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수치'스러운 민주주의




태국 옆에 있는 이 나라. '미얀마' 

이 나라엔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버마'입니다. 1989년, 버마에서 '미얀마'로 나라 이름이 바뀌었지만, EU를 비롯한 국제사회선 여전히 버마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미얀마'라는 이름이 군부독재의 상징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50년 넘게 군사정부가 통치하고 있는 버마. 그러나 민주화를 염원하는 마음의 불길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길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입니다.

버마의 딸로 불리는 아웅산 수치 여사.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요?

아웅산 수치 여사를 설명하려면 먼저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고 버마를 독립의 길로 이끈 민족지도자입니다. 버마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 하지만, 그는 버마 독립 2년 만에 암살당했고, 딸 아웅산 수치는 외국으로 피신합니다.

그 후, 아웅산 수치 여사는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해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고, 영국인 마이클 에리어스와 결혼해 슬하에 자녀 두 명을 두었죠. 1988년,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던 그녀에게 급한 연락이 옵니다. 버마에 있는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버마로 돌아온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끔찍한 상황을 목격합니다. 군사정권에 대항해 버마 국민이 들고일어난 '8888항쟁'이 벌어진 겁니다. 군부는 항쟁을 잔혹하게 진압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아웅산 수치 여사는 그때부터 그녀는 민주화 투사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그녀를 집 안에 가둬버렸습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일부 시기를 제외하면 15년 동안 외부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도 출국이 허락되지 않았고, 1999년 남편이 암으로 사망했을 때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해 출국을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한 인간으로서의 평범한 권리를 포기하며 살아온 아웅산 수치 여사. 이제 그녀가 꿈꿔왔던 날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25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의 압승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어제(9일) 발표된 초반 개표 결과,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는 개표가 완료된 하원 48석 가운데 45석을 차지했습니다. NLD는 상·하원 선출직 의석 491석 가운데 70% 이상, 많으면 80%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습니다.

버마가 50년 넘는 군부독재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1990년 총선을 무효로 하고 수치 여사를 감금했던 군부조차도 이번엔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식민지배로부터 버마를 독립시킨 아웅산 장군의 딸이자,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 50년 넘는 버마의 군부독재와 그녀의 험난한 삶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이룩한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기획/구성: 임찬종, 김민영
그래픽: 이윤주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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