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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석가탑은 정말 1300년 전 '원형'을 되찾았나?

[취재파일] 석가탑은 정말 1300년 전 '원형'을 되찾았나?
지난 2012년 완전히 해체됐던 경주 불국사 석가탑이 제모습을 거의 되찾았습니다. 하부 기단에 발생한 균열을 수리하기 위해 전체를 다 해체해서 보수작업을 벌인 건데, 최근 최상층인 3층 지붕돌을 얹었습니다. 기단부터 본체까지는 옛 모습을 완전히 되찾았고, 이제 3층 지붕 위에 얹는 상륜부 장식만 추가하면 됩니다.

국보 21호인 석가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입니다. 1300년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해체하고 보수한 적은 있지만, 탑 전체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3층 지붕돌을 얹던 날, 현장에서 행사를 취재한 뒤 저녁 8뉴스를 통해 "석가탑이 1300년 전 원형 복원을 눈앞에 뒀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 복원 눈앞…1,300년 만에 제 모습 찾은 석가탑) 1300년 만에 처음으로 완전히 해체했던 탑을 다시 제모습으로 조립하는 것이니 크게 봐서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정확한 표현도 아닙니다. 아래 두 장의 사진에 이유가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1916년 사진을 보면 탑의 윗부분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석가탑보다 훨씬 짧습니다. "3층까지 조립을 마쳤고 이제 상륜부를 얹는 일만 남았다"고 보도된 바로 그 '상륜부'가 아주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조선 선조 20년이었던 1596년 우뢰 피해를 입어 떨어져 나간 탓입니다. 오른쪽 현재 사진에 보이는 상륜부는 1972년 복원해 얹은 것입니다.

당시 석가탑의 상륜부 복원은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원래의 상륜부 모습을 담은 기록이 있다면 그대로 만들었으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관련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당시 복원자들은 석가탑처럼 상륜부 장식이 있는 다른 탑을 참고로 복원 작업을 했습니다. 상륜부 장식이 완벽히 남아있는 탑들 가운데 가장 시기가 비슷한 남원 실상사탑이 모델이 됐습니다.

그 결과, 1972년 복원된 현재의 석가탑 상륜부는 엄밀히 말해서 1300년 전 '원형'이 아닙니다. 다른 탑을 본떠서 복원한 상륜부가 석가탑의 원래 상륜부와 똑같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모델이 된 실상사탑은 만든 시기가 석가탑보다 100년 정도 뒤입니다.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오는 문화재는 어떤 이유로든 크고 작은 훼손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문화재 보존과 관리에서 복원은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복원하느냐, 그 방법입니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추세는 '원형' 복원 중심이었습니다. 처음 만들었을 때의 원래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1972년 석가탑 상륜부 복원은 바람직한 복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복원 당시 차라리 상륜부가 훼손된 상태로 그냥 두자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탑의 모양을 본떠서라도 결국 '복원'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문화재의 '원형'이라는 것이 꼭 처음 만들어진 '그 순간'의 특정한 '형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더 힘을 얻은 탓입니다. 1900년대 후반 이후 달라진 문화재 복원의 세계적인 흐름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겁니다.

그 흐름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스페인의 타라고나 성벽입니다. 타라고나는 까딸루니아 북동쪽에 자리 잡은 도시입니다. 도시 전체가 이름난 로마 시대 유적지인데 특히 석축과 성벽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유적 가운데 성벽이 특히 유명한 건 성벽 한가운데 끼어 있는 콘크리트 벽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직선으로 위아래로 길게 늘어선 부분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타라고나 성벽 곳곳이 훼손됐습니다. 그때마다 조금씩 보수를 해 왔는데 2000년대 초반, 중세 시대에 보수한 성벽에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이참에 중세 시대 보수한 부분을 모두 허물고 로마 시대 성벽처럼 바꾸기로 했습니다. '원형'으로 복원하자는 결정입니다.

그런데 설계를 맡은 건축가 앙드레아 부루노가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부루노는 정부의 지침을 어기고 중세 시대 성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로마 성벽과 중세 성벽 사이에 '콘크리트' 벽을 세웠습니다. 전체를 로마 시대 모습으로 되돌리기는커녕 오른쪽 로마 시대, 왼쪽 중세 사이에 현대를 더해 넣은 겁니다.

부루노는, 역사적 건축의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는 양식이나 재료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 서 있으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 '장소성'이야말로 문화재가 가진 역사성의 핵심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순간´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담는 '연속성'을 역사성의 또 다른 요소로 강조했습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엔 우선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석가탑처럼 원형에 대한 자료가 아예 없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료가 있더라도 당시의 재료를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료는 있어도 구체적인 제작 기법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재료를 구해서 같은 기법으로 아무리 비슷하게 만든다고 해도 엄밀히 따지면, 결코 같은 작품은 만들 수 없습니다. 형태를 기준으로 하는 '원형' 복원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문화재의 '원형'을 단순히 형태적 개념이 아닌 더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는 거죠. '장소성', '연속성'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인 셈입니다.

이번 석가탑 보수 역시 장소성과 연속성을 포함한 확장된 '원형'의 개념이 적용됐습니다. 돌과 돌을 잇는 부속이 대표적입니다. 은장이라고 하는데 예전엔 철로 된 부속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티타늄으로 교체했습니다.
왼쪽 사진을 보면 철로 된 원래 은장 외곽선을 빙 둘러 주변 돌이 깨져 나간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철은 부식되면 팽창하는 성질이 있는데, 오랜 세월 속에 철이 팽창하면서 주변 돌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튼튼하라고 끼워 넣은 부속이 오히려 훼손의 빌미가 되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보수하면서 1300년 전엔 없었던 신소재로 은장을 바꿨습니다.

물론, 은장은 연결면 아래 감춰지기 때문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주의적 혹은 원리주의적으로 '원형'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번 보수는 1300년 전 원형을 오히려 훼손한 셈이 될 것입니다. 심지어 의도적, 고의적으로 말이죠.

이처럼 문화재 복원에는 시공을 초월해 변하지 않는 원칙이나 정답은 없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본다면, 3층 머릿돌을 얹으면서 "석가탑이 1300년 전 원형을 거의 되찾았다"는 보도는 흔히 말하는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에 가까운 '현실'이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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