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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한손 구두장이가 건네는 희망

수제 구두 전문점을 취재하러 가는 차 안. 아래를 내려다보니 닦지 않아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제 구두가 보입니다. 구두를 살 때는 디자인, 가격도 생각해가며 이것저것 신어보고 따져봤는데 늘 구매한 후에는 관리가 안 됩니다. 갈색인지 검은색인지 샀던 저조차도 헷갈리네요. 구두 가게 취재를 하는데 좀 신경 써서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안고서 문 앞에 도착합니다.

아침 10시에도 많은 분들이 가게에서 주문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쪽 벽에는 그동안 만든 구두가 진열장 위에 전시되어있습니다. 장애인용 수제 구두이기 때문에 외관도 발에 맞추어 독특한 모습일 줄 알았는데 일반 구두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기성품에 비해 더 예쁘고 매력적인 구두들이 한 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인장은 올해 75세인 남궁정부 씨입니다. 아직도 정정한 모습으로 매장과 제작실을 오갑니다. 능수능란한 모습에 그가 한쪽 팔을 잃었다는 사실은 쉽게 잊혀집니다. 가끔 입에 문 메모지나 물건을 드는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팔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장애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영상뉴스에서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영상 속 그의 움직임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한 팔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구두 장인의 아우라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왼팔을 쉴새 없이 움직이지만 말이죠.

남궁정부 씨는 누구보다 장애를 잘 이해하고 장애인을 위한 구두를 20년째 제작하고 있습니다. 12살 때부터 구두 만드는 일을 해오며 수제화 제작으로 일가를 이뤘습니다. 1995년에 지하철 사고로 오른팔을 잃고 낙심하던 중 장애인 구두를 만들어보라는 권유에 다시 구두를 손에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양 다리 사이에 구두를 고정시켜 놓고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면 본드가 온몸에 투성이가 되었죠. 또 양손이라면 손에 묻은 본드를 금방 닦겠지만 한 손이잖아요. 그 손에 묻은 본드를 어떻게 닦겠어요(웃음).”

영상뉴스의 모델이 되어주신 여성분은 이 구두 가게의 13년째 단골손님입니다. 매년 한 켤레씩 맞추신다는 이 손님을 운 좋게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하셔서 아직도 주변 사람들에게 본인의 다리 상태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누군가에게 동정 받고 싶지 않아 휠체어 대신 목발을 집고, 장인이 만들어 준 신발이 그녀가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사고로 두 발을 잃었어요. 수술이 끝나고 누워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는데 신발만 보였어요. 이제 저런 신발을 못 신겠구나 생각했죠. 근데 제가 이렇게 신발을 신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에요.”

영상에서는 구두장인의 손으로 손님에게 신발을 신겨주시는 모습을 꼭 찍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무례한 부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흔쾌히 두 분이 허락해주셔서 장면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실 어느 신발가게에서나 주인이 손님에게 직접 신발을 신겨주진 않죠.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모두 이렇게 연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누군가 나눠놓은 것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겠죠.

얼마큼 아파야 혹은 얼마큼 다쳐야 장애인일까요? 누구나 신체나 정신적으로 불편한 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정도의 차이겠지요. 서로가 연결될 때 비로소 그 불편은 눈 녹듯이 사라지겠죠. 그가 가진 한 손이 그녀의 발에 닿듯이 말이죠. 신경 쓰지 않던 제 낡은 구두를 다시 바라봅니다. 이 구두 하나에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취재 : 하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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