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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대졸 취업자 초봉 수준 "아버지 직업에 달렸다!"

[월드리포트] 대졸 취업자 초봉 수준 "아버지 직업에 달렸다!"
중국은 통계 자료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있을 법한 통계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지난해 오토바이 사고 사망자수 통계를 찾다가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하긴 14억 가까운 인구의 각종 사안과 관련해 정치한 통계를 생산한다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다만 중국에 안 좋은 인상을 줄만한 통계는 더 찾기 어렵다는 점은 제 막연한 느낌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조사한 매우 참신한 통계를 발견했습니다. 홍콩의 유력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보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조사한 곳은 중국 베이징대의 ‘시장과 매개연구소’, 그리고 간지망입니다. 베이징 대학이야 소개할 필요조차 없는 중국 최고의 명문 대학이죠. 간지망은 중국 최대 지역소식 사이트입니다. 쉽게 말해 인터넷의 벼룩시장 같은 곳입니다. 각종 중고품 매매와 함께 구인이나 구직 관련 정보에 있어 중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정받는 인터넷 매체입니다.

베이징대 연구소가 이 간지망의 빅데이터를 이용해 올해 90년생 대졸 취업자들의 월 초봉을 조사했습니다. 우선 올 대졸 취업자는 7백49만명으로 지난해 7백27만 명보다 22만 명 늘었습니다. 물론 사상 최대 인원입니다. 해마다 대학 입학 정원이 늘고 있는 만큼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받는 첫 월급, 월 초봉 역시 지난해보다 높아졌습니다. 전체 평균으로 우리 돈 약 50만원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아직 많이 낮죠. 다만 지난해보다 4만5천 원 정도, 거의 10% 가까이 올랐습니다. 중국 경제의 발전에 따라 첫 월급도 빠르게 인상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분야별로 첫 월급 수준은 상당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중국에서 월 초봉이 가장 센 부문은 호텔관리업계였습니다. 3천6백34 위안, 약 67만2천3백 원입니다. 다음으로 통신업 약 64만5천4백 원, 전자상거래 약 61만1천4백 원 등이 상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밖에도 법률, 환경과학, 판매업 등이 평균 이상의 월 초봉 수준을 보였습니다. 

직업을 구하는 기업의 형태(국유기업이냐 사기업이냐, 자영업이냐)나 지역(베이징, 상하이, 션전 등)과 관련해 흥미로운 정보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아버지의 직업별 월 초봉 차이였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이 부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기사 제목도 '대졸 취업자 초봉 수준, 부친 직업에 달려있어!'였습니다.

아버지가 공무원인 자녀의 평균 첫 월급 수준이 가장 높았습니다. 3천6백14 위안, 약 66만8천6백 원입니다. 국유 기업 등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둔 경우 2천9백83 위안, 약 55만1천8백 원입니다. 최하위는 아버지가 자가 농업을 하는 경우였습니다. 2천5백52 위안, 약 47만2천1백 원입니다. 최상위인 공무원 자녀와 비교하면 첫 월급에서 1천62위안, 무려 2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농민의 자녀 입장에서는 공무원 자녀의 월 초봉이 자신들보다 41%나 높은 셈입니다.

당연히 중국 네티즌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울분에 찬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역시 그랬어. 잘난 아버지를 만나야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었어"라는 한탄부터 "이게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민낯!"이라는 비아냥까지 다양했습니다. 대부분 사회 계급이 고착화되는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중국을 지배하는 공산당의 제 1 강령이 뭡니까? '평등'을 모토로 하는 '계급 타파'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직업에 따라 자녀의 초봉이 50% 가까이 높아진다는 것은 사회 계급이 세습되고 있다는 증거이니 만큼 중국 사회가 들끓을 만했습니다.


급기야 중국의 대표적인 관영매체 런민(인민)망까지 나섰습니다. 평론을 통해 해당 기사를 공박했습니다.

"제목과 단순한 통계 수치만 놓고 보면 중국의 공무원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더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수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연상됩니다.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 이런 뒷문을 이용할 수 있는 공무원이 어디 있습니까?

해당 통계와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는 아버지의 직업이 아니라 부모의 교육 정도, 교육열, 교육 지원 차이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만약 공무원 대신 교사나 의사의 아들을 따로 모아 그들의 초봉을 따져보면 농민 자녀와 그만한 차이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런민망의 지적은 정확하다 느껴집니다. 기사 제목과 통계 수치만 보면 '공무원이 권력을 이용해 자녀에게 좋은 직업을 마련해주는구나'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런민망이 짚었듯이 아버지의 직업이 가져다주는 각종 교육 환경의 차이가 더 정확한 원인일 것입니다. 따라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기사 제목은 단순화의 오류이자, 공통원인 무시의 오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사에 대해 중국인들이 느끼는 허탈감이나 분노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직업에 따라, 그로 인해 마련해줄 수 있는 교육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후대의 급여 수준에 차별이 생긴다는 점은 여전히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보다 평등해야 할 교육의 기회나 여건에서 계급적 차별이 엄존한다는 증거입니다.

공무원이 특별한 방법을 동원해서 자녀에게 좋은 직업을 마련해주지는 않지만 더욱 일반화된, 용인된 방법을 통해 구직에 있어 차별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뒷문'이 있다면 이를 제거하고 수정하면 되지만 공무원과 농민 계층의 일반화된 교육 환경 차이는 오히려 개선하기가 더 힘듭니다. 교육 제도 전체의 문제이니까요. 그래서 제 눈에는 런민망의 문제 제기는 거꾸로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계급의 고착화가 얼마나 풀기 어려운 문제인지를 역설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기사를 접하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통계가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제 검색 실력이 모자라서인지 아버지 직업별로 취업자 초봉의 차이를 따진 연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조사를 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요? 오히려 그 차별 수준이 더 심각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우리는 공산당 정권이 아니고 사회주의를 표방하지 않으니까'라며 넘길 일은 아닐 듯합니다. 교육의 평등이 없다는 것은 그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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