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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 아이 매일 먹는 키 성장 식품에 '해열제'

[취재파일] 내 아이 매일 먹는 키 성장 식품에 '해열제'

● 키 성장 제품 단골 재료 ‘속단’

먹으면 아이들 키를 크게 해준다는 키 성장 음식들이 요즘 참 많습니다. 십 수 가지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음료, 사탕, 젤리, 알약, 가루 등등 그 형태도 다양하고, 대기업, 중소기업 등 그 제조사도 다양합니다. 이 다양한 키 성장 음식 들, 가만히 살펴보면 공통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참 많은 제품들이 ‘속단’이라는 한약재를 쓴다는 것입니다.

속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을 속(續), 끊어질 단(斷)입니다. 즉, 끊어진 뼈를 이어준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처럼 예부터 속단은 근육과 뼈를 단단하게 해주는 효능과 몸을 보양해 주는 효능이 있어서 뼈를 다친 사람이나 유산기가 있는 임산부가 많이 먹었다는 약재입니다. 그래서 많은 키 성장 식품들이 이 속단을 재료로 쓰고 있습니다. 실제 광고나 홍보성 기사를 찾아보면 속단은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약재이기 때문에 키 성장을 돕는다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일반 소비자들이야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 십상입니다만, 한의학 전문가들이 바로 이 속단을 문제를 삼고 나섰습니다. 시중 판매되는 키 성장 제품에 들어가는 속단은 진짜 속단이 아닌 전혀 엉뚱한 약초라는 겁니다.

● 키 성장 제품에 들어가는 <한속단>은 “진짜가 아니다”

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속단이라는 한약재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사실은 세 종류지만, 가장 많이 유통되는 두 종류만 짚어봤습니다.) 첫 번째, 중국 사천 지방이 원산지인 천속단(川續斷)이 있습니다. 두 번째, 중국에서도 나고 한국에서도 나는 한속단(韓續斷)이 있습니다. 보통의 음식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신토불이 식물이 진짜인 경우가 많은데, 이 속단은 반대입니다. 앞서 설명한 ‘뼈를 이어주고 근골을 강화시켜주는데 쓰여왔다’는 일반적 의미의 속단은 바로 중국이 원산지인 천속단입니다. 식약처의 식품데이터베이스에도 ‘속단의 정품은 천속단의 뿌리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정품 속단인 천속단은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전량 중국 수입입니다. 참 드물게 중국산이 정품인 경우가 바로 한약재 속단입니다.

그렇다면 한속단은 어떤 약재일까요? 이름에는 똑같이 ‘속단’자가 들어가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식물입니다. 정품인 천속단이 산토끼풀(Dipscus)과라면, 한속단은 꿀풀(Phlomis Umbrosa Turcz.)과입니다. 늑대와 사자, 장미와 튤립처럼 전혀 다른 생물체입니다. 둘 다 뿌리를 약재로 쓰지만, 이처럼 전혀 다른 식물이다보니 당연히 생김새도 다르고, 가장 중요한 효능도 당연히 다릅니다. 정품 속단인 천속단은 뼈와 관계가 있는 효능을 보인다면, 한속단은 열을 내리고 염증을 낫게 해주는데 주로 쓰여 온 풀입니다. 그러니까 한속단은 감기가 걸렸을 때 열을 내리기 위해 주로 먹는, 한의학적으로 보면 해열제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는 이름도 전혀 달라서, ‘한속단’은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이름이고, 중국에서는 ‘조소’라고 불립니다. 이 한속단이 약재로 등재돼 쓰이고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 한속단, 즉 ‘조소’는 위품이라고 해서 쓰지 않고 있습니다.

● 한속단, 한의사들은 잘 쓰지 않는 ‘해열제’

한의학자들이 문제삼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현재 인터넷에 한속단을 검색해 보면 ‘성장 호르몬 분비를 도와준다’라거나, ‘뼈 성장을 돕는다’라는 정보가 아주 많이 올라옵니다. 아예 천속단, 그러니까 정품 속단의 효능인 ‘끊어진 뼈를 잇고 근골을 강화시켜주는 약재’라는 설명도 한속단 설명에 버젓이 달려 있습니다. 어디에도 ‘열을 내려주고 염증을 치료해주는 약재’라는 설명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전혀 다른 약재임에도 ‘한속단’이 ‘속단’으로 완벽하게 바뀌어 있는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의학자들은 한속단이 이렇게 ‘키크는 약재’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불과 4~5년 전부터 ‘한속단’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바로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한창 성장하던 때입니다. 이 무렵 각종 건강기능식품이 인기를 끌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약재들의 효능이 각종 매체에서 소개가 됐는데, 바로 한속단도 이때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키 크는데 도움을 주는 약재로 말이지요. 그와 비슷한 시기에 크고 작은 기업들이 이 한속단을 이용해 키 성장 제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특허를 받았다는 키 성장 물질이 등장하고, 급기야 키 크는 제품으로는 최초로 식약처에서 공식 인증을 받은 제품까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한의학자들은 과연 해열제로 쓰이던 한속단을 이용해 만든 키 성장 제품이 정말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우리나라 본초학의 대가이자, 천속단과 한속단의 차이점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한 우석대학교 한의학과의 주영승 교수는 진짜 속단이라면 몰라도 한속단은 결코 키를 크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해열 효능을 지닌 약재를 매일같이 장기간 복용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으니 주의해야한다고까지 경고합니다. 한속단은 약재로 등재는 돼 있었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한의사들이 쓰던 약재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연구가 시행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얼마 전까지 동국대학교 한의학과 학장을 지낸 박선동 교수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진짜 속단의 ‘뼈 건강 강화’ 효능을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다른 약재인 한속단에 덮어 씌우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고 이야기 합니다. 박 교수 역시 한속단을 먹어서 키가 큰다는 연구는 지금껏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대한한의사협회도 나섰습니다. 감기에 주로 먹던 한속단이 언젠가부터 뼈 건강에 좋은 진짜 속단처럼 혼용·오용되고 있다며 공식적으로 우려를 나타낸 겁니다. 한속단을 둘러싸고 한의학계와 키 성장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정면 충돌한 겁니다.
● 키 성장 제조사 “효능·안정성 철저히 검증한 제품”

반면 키 성장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반발합니다. 분명히 자신들 나름대로의 과학적 연구를 거쳐 그 효과를 입증한 뒤 판매하는 제품이라는 겁니다. 키 성장 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워낙 많아 해명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 큰 줄기를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한속단’에만 너무 집중해서 제품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한속단 하나만을 이용한 키 성장 제품은 없습니다. 각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속단에 이런 저런 여러 가지 한약재를 섞어서 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속단에 다른 약재를 섞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전혀 새로운 복합물질을 만들어 냈고, 이 복합물질은 실제로 키 성장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자신들이 입증했다는 것이지요. 한속단 하나만 봤을 땐 해열 작용에 주로 쓰이던 약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한속단에 다른 약재를 배합해 만든 새로운 물질은 분명 키를 크게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 배합의 방법이 바로 기술이고, 일부 업체는 그 기술에 특허까지 내기도 했습니다. 한 업체는 한속단을 쓴 이유가 “애시 당초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는 ‘진짜’ 속단의 효과를 바라고 쓴 것이 아니라, 한속단 그 자체로 훌륭한 조합 재료였기 때문에 쓴 것 뿐”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업체들은 또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자사의 제품은 모두 충분한 연구를 거쳐서 내놓은 제품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한의학 교수가 참여해 10년이 넘게 연구를 한 업체도 있고, 논문을 여러 편 써내며 연구 결과를 기록으로 남긴 업체도 있었습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을 진행한 업체도 있고, 일부 업체는 지금도 자사의 키 성장 제품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들 업체는 이런 장기간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키가 크는 효능을 확인함은 물론, 안정성 면에서도 매일같이 장기간 꾸준히 먹어도 인체에는 아무런 해가 없음을 충분히 검증한 뒤 판매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제품을 먹어도 키가 안큰다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변합니다.

● 한속단 든 키 성장 제품, 정말 키 클까?

그렇다면 식약처의 판단은 어떨까요? 업체들의 광고와는 다르게, 식약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키 성장 제품에 대한 효능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단속을 했습니다. ‘키가 큰다’, ‘1달에 10cm가 컸다’ 같은 표현을 쓴 광고를 하는 업체들을 허위 과장광고로 단속한 겁니다. 일부 키 성장 제조사들이 가지고 있다는 특허는 그 효능에 대한 특허가 아닌, 이런 저런 한약재에서 성분을 추출해 내고 배합을 하는 기술적 측면에 대한 특허입니다. 따라서 특허가 있다고 광고를 한다고 해서 그게 키가 크는 효과가 입증이 됐단 뜻은 결코 아닌 겁니다.

이처럼 키 성장 제품에 대해 유독 엄격하던 식약처가 그런데 지난해 8월, 건국 이래 최초로 키 성장 물질에 대한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합니다. (이 물질에도 한속단이 들어가 있습니다.) 즉, 그 효능에 대해 국가가 인증을 했단 겁니다. 이 물질을 이용한 키 성장 음료가 올 4월 건강기능식품 딱지를 붙이고 출시되면서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식약처가 인정을 하긴 했는데, 그 내용이 좀 이상합니다. 생리활성등급 2등급. 즉, “키가 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인즉슨 바꿔 말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식약처가 키가 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물질에 대해 인증을 해 준 겁니다. 식약처도 자신들이 건강기능식품 인증은 했지만, 이 제품을 먹는다고 반드시 키가 크는건 아니라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한 마디로, 식약처의 인증을 받은 제품이건 받지 못한 제품이건, ‘먹으면 키가 큰다’는 보장은 결코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제품 대부분에는 한속단이 들어가고요.

● “독이 약간 있다”면서 식품 인정…오락가락 식약처

그런데 식약처는 식품데이터베이스에서 한속단에 대해 “독성이 약간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복용량을 준수하고, 임신부는 복용을 금한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한속단을 약재와 식재료 모두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약품은 부작용을 감수하고 먹는 것이지만, 식품은 아무리 먹어도 부작용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식약처는 한 쪽에선 한속단에 독이 있다고 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한속단을 식품으로 허용을 한 것입니다. 마치 이엽우피소를 백수오로 둔갑시켜 논란이 된 이른바 ‘가짜 백수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이엽우피소에는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고 하다가, 사건 터지고 나니 이엽우피소를 먹어도 된다고 말을 바꾼 것과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키 성장 업체들이 굳이 정품 속단을 놔두고 한속단을 사용한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바로 한속단이 약재와 식재료 모두 등록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정품인 천속단의 경우 독성 보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약재로만 등록이 돼 있어서 식품으로 쓸 수가 없는데, 한속단은 약재 식재 모두 등록이 돼 있기 때문에 키 성장 ‘식품’으로 만들어 팔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정품인 천속단도 약재와 식재료 모두 허용이 돼있었더라면, 키 성장 제조사들이 천속단을 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결국 혼란은 소비자 몫

앞서 말했듯, 식약처는 지난해 8월 국내 최초로 한속단이 들어간 키 성장 물질에 대해 공식 인정을 했습니다. 인증을 해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식약처가 위임한 전문 심의위원들이 모여 회의를 해서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 키성장 제품을 인증을 할 당시의 회의록을 식약처는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심의 회의록은 대체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키 성장 물질에 대한 심의 회의록은 유독 공개가 안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당시 심의위원들이 누군지 조차 공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속단이 든 키 성장 물질을 심의하는데 한의학자는 끼어 있는지, 본초학 학자는 참석 했었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 한속단의 효능을 놓고 한의학계와 제조사들 사이에 한바탕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소비자는 오늘도 혼란스럽습니다.

* 지난 8월 30일 보도된 “성장 식품에 엉뚱한 약재 논란” 뉴스의 영상 말미에 보령라이프텍社에서 제조하는 ‘키움정’ 제품 일부가 화면에 나갔지만, 해당 제품에는 한속단이 쓰이지 않아 이번 보도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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