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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각장애인이 안내하는 미술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 대해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8월의 마지막 주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다시 찾았습니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와 관련해 주말에만 진행되는 색다른 도슨트 프로그램을 체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도슨트(docent)’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단어로,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곳에서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전시 내용을 설명해주는 전문 안내인을 말합니다. 해당 전시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측에서 소정의 교육을 받은 뒤 관람객들과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어서,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을 비롯해 미술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분들이 주로 참여합니다.
 
관람객은 도슨트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은 물론 작가의 사생활이나 시대적 배경 등 다양한 뒷이야기를 들으면서 보다 쉽고 흥미롭게 작품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는 분들 가운데는 도슨트의 설명 시간을 꼭 챙기시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저의 관람을 도와준 도슨트는 조금 특별합니다. 그분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미술 작품은 흔히 시각예술로도 불리는데,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의 안내를 받아 감상한다는 게 언뜻 의아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해당 작품의 제목은 ‘사각지대 찾기’(구체적인 작품 설명은 이전 취재파일 ‘올해의 작가상 2015를 소개합니다’ 참조). 올해의 작가상 후보 가운데 한명인 오인환 작가의 작품 일부분인데, 시각장애인 도슨트의 안내를 받아 작품을 감상하는 부분에는 ‘나의 사각지대- 도슨트’라는 작은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의 일부분인 퍼포먼스로 그 개념을 설명합니다.
 
본 작업은 시각중심적인 미술이 배제시킨 시각장애인들이 퍼포먼스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미술의 사각지대와 사회문화적인 사각지대를 교차시킨다. ‘나의 사각지대-도슨트’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이 아닌 관객들을 안내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부의 4전시실에서 멀티미디어 홀 옆 전시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작품설명을 진행한다. 이때 시각장애인 도슨트는 마이크가 내장된 흰 지팡이(케인)를 사용하고,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 도슨트들의 신체적인 활동(퍼포먼스)이 청각적으로 전환되어 전시장의 스피커를 통해 다른 관람객들에게 전달된다. 미술의 비-시각성을 활용하는 시각장애인 도슨트 퍼포먼스는 '능동'과 '수동' 그리고 '주체'와 '타자'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치시키고자 한다.

 
저를 안내해 준 도슨트는 명랑하고 사교적인 20대 대학생이었습니다. 그의 오른쪽 팔꿈치에 제 왼쪽 손을 갖다 댄 채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분들이 비장애인의 안내를 받아 이동을 할 때 보통 그런 식으로 팔꿈치를 잡는다고 하더군요. 몸을 잡으면 방향을 틀거나 속도를 전환할 때 서로 몸이 부딪힐 위험이 있고, 손을 잡으면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오른쪽 팔꿈치는 저에게 내어주고 그는 왼손으로 흰 지팡이(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지팡이를 보통 '흰 지팡이'라고 부른답니다. 때문에 도슨트 분이 이용하는 지팡이는 실제로는 빨간 색과 검은 색이 부분부분 칠해져 있었지만, 그것과 상관 없이 '흰 지팡이'로 불렸습니다.)를 좌우로 움직이며 이동합니다.
그가 흰 지팡이로 바닥을 칠 때마다 탕탕, 소리가 납니다. 그의 흰 지팡이가 스피커와 연결된, 특수 지팡이이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속도에 맞춰 지팡이가 내는 소리는 미술관의 흰 벽과 빈 공간들 사이로 빠르게 스며들어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그 소음은 주변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고, 따라서 지팡이와 함께 움직이는 동안 우리에게 사각지대(작가에 따르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사적인 공간')는 없었습니다.

미술관이 제공하는 예술적 경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각장애인이 관람객을 미술관의 깊숙한 곳으로 동시에 감상의 또다른 차원으로 안내합니다. 그의 안내로 인해 저의 관람은 시각 지배적인 틀에서 벗어나 청각과 촉각이 함께 사용되는, 한층 풍성한 경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 분들에게 도슨트의 경험이 특별하듯이, 감상자에게도 시각장애인 도슨트와 함께 하는 전시 관람은 특별한 경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각장애인이 안내하는 시각미술 체험은 우리가 그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는 현대미술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말에 해당 전시장에 들렀다 관람객을 기다리는 도슨트 분과 마주치게 된다면, 손을 내밀어 안내를 청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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