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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방 최대' 한국 육군…그래도 뚫린다

[취재파일] '서방 최대' 한국 육군…그래도 뚫린다
49만 5천 명. 대한민국 육군 병력입니다. 올 들어 서방 최대 규모 육군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미국이 재정난에 따른 예산 자동삭감 조치(시퀘스트)의 일환으로 병력을 감축하다 보니 미 육군의 병력이 올해 49만 명까지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터키 육군도 만만치 않은 규모이지만 우리 육군보다 수만 명 적습니다.

물론 120만 명의 북한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비서방권 국가의 육군은 우리보다 많지만 우리 육군의 규모가 서방 최대라는 사실은 요즘 분위기에 비춰보면 적잖이 멋쩍습니다. 군 당국 표현대로 ‘감시 공백’이 생겨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MDL을 몇 백 미터나 넘어와 비무장지대 DMZ에 목함 지뢰를 묻었고, 우리 육군 장병들이 밟아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서해부터 동해까지 10여개 사단이 일반 전초 GOP를 세운 채 손 잡고 늘어서 DMZ를 지키고 있는데 MDL이 허무하게 뚫렸습니다.
이리도 병력이 많은데 뚫렸으니 패전보다도 죄가 크다는 경계 실패라며 육군을 비난해야 할까요? 사실 ‘물 샐 틈 없는 방어’ ‘철통 경계’는 DMZ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MDL이 동서로 155마일, 그러니까 250km 길이입니다. 여기서 남쪽으로 2km까지가 우리 쪽 DMZ입니다. 면적이 무려 500㎢인 데다 정글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지난 2012년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MDL은 뚫으려고 마음먹은 자에게는 뚫릴 수밖에 없습니다. 감시에 실패했다고 군을 일방적으로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적의 DMZ 침투에 감시 공백을 피할 수 없는데, 사고도 많고 ‘철통 방어’도 안 되는 최전방 GOP를 지금처럼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요?

현재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GOP는 이미 그 기능을 상당부분 잃었습니다. 군 당국이 설명하는 GOP의 기능은 선형(Linear) 방어 체계 상에서 조기 경보와 북한군 남침시 1차 방어, 북한군 국지도발과 간첩 침투 대응입니다. 북한군의 이상 동향을 일찍 알아채는 조기 경보 기능은 목함 지뢰 도발 사건, 과거의 각종 귀순 사건을 통해 일찍이 무력화됐습니다. 또 한미의 정보 자산은 GOP보다 일찍 적의 동태를 알아챕니다.
두 번째 기능인 1차 방어선은 더욱 허약합니다. GOP는 북한군 동향을 살피기 위해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북한군 화력의 조준경이 항상 노리고 있는 데다 북한군은 우리 GOP 위치를 낱낱이 꿰고 있습니다. 북한 남침시 GOP의 1차 방어선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될 운명입니다.

북한군의 국지도발과 간첩침투 대응 기능 역시 마찬가지 처지입니다. 국지도발은 이번 지뢰 도발처럼 북한군이 교묘한 방식을 택하면 즉각 대응이 어렵습니다. 또 DMZ는 UN 군사정전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구역이라 우리 군이 마음대로 작전을 펼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요즘 간첩은 굳이 DMZ를 통해 내려올 이유가 없습니다. GOP는 가성비, 즉 투자가격 대비 성능 비율이 최악인 전술입니다.

육군이 개혁을 한다면 GOP 개혁이 먼저라는 말이 젊은 장교들 입에서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장기적으로 감시 관측 장비를 DMZ를 따라 대폭 확대 배치하고 병력은 좀 남쪽으로 이동시킨 뒤 화력과 기동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어차피 물 샐 틈 없는 경계가 불가능하니 현실에 맞게 병력과 장군 자리를 줄여 국방비의 태반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아끼고, 대신 그 돈으로 ‘펀치’와 기동력을 탑재하자는 주장입니다.

강화된 감시 관측 장비와 최소한의 인원으로 철책과 그 넘어 DMZ를 살피다 적이 도발하면 득달같이 화력을 동원하는 방식입니다. 서방 최대 규모의 육군이라는 어색한 기록도 버리면서 DMZ는 현실적으로 방어하고 장병들의 ‘GOP 피로’도 줄일 수 있는 방안입니다. 꼭 이런 방향이 아니더라도 지금이 GOP ‘진짜 개혁’을 하기에 딱 좋은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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