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혹독한 대가” “경계 공백”…지뢰 도발에 ‘말의 성찬’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5.08.11 07:17 수정 2015.08.19 19: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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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혹독한 대가” “경계 공백”…지뢰 도발에 ‘말의 성찬’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에 군 당국이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건 발표에 하루 앞서 언론에 비무장지대 DMZ 현장을 공개했고, 감시 장비가 촬영한 폭발 동영상도 즉각 내놨습니다. 지난해 병영폭력 사태와 3년 전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 때 진실을 숨겼다가 들통 나 된서리를 맞은 데서 배운 교훈입니다.

거기까지만 좋았습니다. 사건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군은 위험한 수위의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경고 성명을 통해 “북한은 도발에 응당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또 목함 지뢰가 군사분계선 MDL 남쪽에 매설된 것은 경계 공백이지 경계 실패는 아니라는 모호한 논리를 당당하게 폈습니다.● 혹독한 대가…북한이 부인하면?

합참이 몇 배의 복수를 하겠다고 경고 성명을 단호하게 발표했지만 북한이 이번 도발을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우기면 일이 꼬입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도 자신들과 관계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번에도 모르쇠의 적반하장 전술을 펼 것이 유력합니다. 그래도 우리 군은 성명대로 북한을 공격해야 합니다. 그것도 우리 피해의 최소 3배 이상을 북한에게 입혀야 합니다.

북한이 부인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공격하면 북한은 분명히 반격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또 재반격해야 합니다. 국지전, 여차하다가는 전면전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북한이 인정하다고 해도 치고 받는 무력 공방전은 피할 수 없습니다.

군은 혹독한 조치의 일환으로 11년 전 중단됐던 대북 심리전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북한이 심리전 방송을 대단히 꺼려한다고 하지만 군이 말한 혹독한 조치로는 부족합니다. 군은 “혹독한 조치의 내용과 실천 시기는 보안”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군이 고려하고 있는 공격 옵션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전 이후 생긴 “북이 도발하면 원점과 지원세력까지 응징한다”는 대응 공식이 처음으로 가동되는 분위기입니다. 말의 성찬으로만 끝났다가는 뒷감당이 쉽지 않게 됐습니다. 폭발 장소와 가까운 북한군 초소를 타격하자는 군 내부의 주장이 있었지만 채택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군 초소 타격이 과해서 기각한 것인지 너무 약소해서 기각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 경계 공백? 경계 실패?

군은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하는 동안 탐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경계 공백이라는 논리를 들이댔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철, 악천후, 야간이라는 점이 경계의 사각지역을 만들어 냈다는 뜻입니다. 돌려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고 단도직입적으로는 그저 경계 실패라고밖에 이해가 안 됩니다.

더욱이 최근까지 DMZ에서는 북한군의 이상 징후가 뚜렷했습니다.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의 훈련이 늘어났고 MDL을 따라 지뢰를 매설하는 징후도 최근까지 포착됐습니다. 군 내부에서는 “북한이 새롭게 도발하면 그 장소는 DMZ일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했었습니다.

그런데도 놓쳤습니다. MDL이 뚫린 겁니다. 뚫렸으니 경계 또는 감시에 실패한 것입니다. “못 잡았다”고 인정하고 사각지대를 없애면 그만인데 묘한 말로 당면한 위기를 모면하려는 듯한 낌새가 엿보입니다.

군인들이 행동보다 말이 앞서고 있습니다. 보복할 결심을 했다면 “두고 보자”는 엄포 없이 조용히 그렇지만 단호하게 응징하면 그만입니다. 말을 앞세우지 않았다면 응징하지 않았을 때의 후폭풍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경계 공백이란 조어(造語)는 비겁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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