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느닷없는 의원정수 논란…'의아한 제안'

[취재파일] 느닷없는 의원정수 논란…'의아한 제안'
한동안 국회의원 정수가 299명이었던 건 300명이라는 앞자리 숫자가 주는 부담때문이었다. 마트에서 10000원이 아닌 9900원에 상품 가격을 정하듯 17대 총선 전 의원정수를 299명으로 묶어 놓은 것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에 대한 정치권의 일종의 염치였다고 본다. 세종시 국회의원 증원으로 명분을 갖게 된 정치권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듯 300명으로 의원수를 한자리 늘렸다. 앞자리가 3이 됐으니 이젠 몇명 더 늘리자는 얘기도 쉽게 나올 수 있었던 건가?

느닷없는 의원정수 논란으로 시끄럽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현재 의원 수를 369명으로 늘리는 안을 제시했다. 현재의 정당구조는 지역기반 거대 양당 독과점 체제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선거제도는 민의를 근본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369명이라는 수는 현재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비율을 2대 1로 제시한 중앙선관위 안을 따랐다.

 그런데 그에 한 술 더떠 제1야당 원내대표인 이종걸 원내대표가 390명이라는 수를 들고 나오면서 얘기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지금도 가뜩이나 국회의원이 많다고 생각하는 상당수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더 늘려서 누구 밥그릇을 챙기겠다는 거냐고 냉소적인 반응이다. 당장 새누리당 내에서도 반개혁적 발상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사실 계파 갈등 해소를 위해 발족한 혁신위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사실이 의아한 측면이 있다. 그것도 바로 지금 시점에 말이다. 호남에서 신당이 출범할 수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볼 때 호남 신당을 준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의원 정수 증원은 호재다.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의원 정수 증원은 원내 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겐 환영할 만한 일이다. 

반면 당이 깨지면 안된다고 주장해 왔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당을 지키라고 만든 혁신위가 왜 탈당과 신당 창당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제안을 하느냐에 불만을 가질 만 하다. 그리고 야당 혁신위가 '정개특위 외부전문위원회'나 내놓을 법한 선거제도 개편과 의원정수 문제를 꺼내드는 것 자체가 뭔가 월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정치발전을 위해 그런 방안을 야당이 먼저 추진하자는 취지라면 백번 양보해 이해할 수도 있다. 의원 정수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국회라면 지금보다 조금 더 의원들이 늘어나 더 많은 국가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차원에서 혁신위원회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기자가 이전 취재파일에서도 쓴 바 있지만 지역 구도에 기반한 양당 구도로는 정치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도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 출현이나 여러 형태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현행 소선거구제가 바뀌어야 한다는데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번 논쟁의 방식은 시작이 잘못됐다. 혁신위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의원 정수 얘기는 꺼내지도 말았어야 했다. 현행 소선거구제도, 지역구도에 기댄 정치권은 때는 이때다라며 선거 제도 개편까지 싸잡아 비판할 태세다. 의원 정수는 선거제도 개편에 따른 부산물일 뿐이다.

선거제도를 개편해 지역구도를 타파하고 현재의 공고한 정치 기득권을 깨부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얘기부터 꺼내면서 그런 선거제도 개편의 진정성까지 싸잡아 비판당하게 된 셈이다. 거기에 야당 원내대표는 의원 정수를 더 얹어 언급하면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따라 붙는 얘기가 바로 세비 동결이다. 세비는 현행 수준으로 동결하고 의원 수만 늘리면 비용은 그대로기 때문에 괜찮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에 세비가 본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월급 더 주는 것 때문에 의원 정수 증원에 반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만 잘하면 돈 더 주면서 일하라고 할 국민이다. 정치권 불만의 본질은 제대로 일은 안하면서 각종 특권은 다 누리고 싸움은 싸움대로 한다는 인식이다.세비 동결이라는 조건만 달면 국민들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순박한 발상이다. 

논의의 방향이 의원정수 문제로 흐른 것도 문제지만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를 의원정수 문제로 치환해 아예 매도하려는 여당 내 일부의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의원정수를 늘리자는 얘기를 반개혁으로 모는 것은 그렇다쳐도 애시당초 문제제기하려던 정치 기득권 구조의 문제마저 거론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미 시뮬레이션까지 끝낸 것으로 알려진 여당은 지금의 소선거구제가 다수당을 차지하는데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지만 국민들의 불신이 커질대로 커진 현 상태로 과연 다수당을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여야를 막론하고 수도권 보다는 호남과 영남 의원들의 정서적 반대가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야말로 선거제도 개편이 지역구도를 깨는 좋은 방법이라는 반증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다. 

야당 혁신위가 본뜻과는 다르게 선거제도와 의원 정수에 대한 논점을 흐리게 만든 측면이 있다. 비록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와 관련한 진지한 논의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

선거 때마다 수백만 표가 사장되고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당 후보에 마지못해 손이 가야 하는 이런 선거가 지속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번 총선마저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국민정서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따위의 이유로 소선거구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의원정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