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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제2의 세모녀' 막겠다더니…이름만 바꿨다

'추정'하던 소득, 이제는 '확인'한다는데…

[취재파일] '제2의 세모녀' 막겠다더니…이름만 바꿨다
● "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

2014년 2월 26일 밤 세상을 등진 61세 박모씨와 35세 김모씨, 32세 김모씨. 이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에는 죄송하다는 내용이 거의 전부였다. 밀린 집세와 공과금을 처리하라며 70만원을 놔뒀다. 셋은 모녀 사이였다.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모녀 3명의 자살에 언론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송파 세 모녀, 혹은 세 모녀 사건은 2014년 대한민국 복지의 현실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 '송파 세모녀' 사건 리뷰…마술 같은 '추정소득'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면서 한달에 130만원 정도 벌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2년 전 사망한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두 딸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했었다. 딸 둘은 그래서 신용불량자였다. 큰 딸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어 일하지 못했고, 만화가 지망인 작은 딸은 비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고 했다. 세 모녀의 월 소득은 130만 원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런데 어머니는 사망 한달 전 팔을 다쳐 일을 하지 못했다. 별도의 저축이 없었다면 가진 돈은 한달 전 받은 마지막 월급 130만원이 전부였을 것이다.(저축할 상황은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근로능력'이 있었다. 어머니의 부상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근로능력 없음'에 해당 안 된다. 큰 딸은 당뇨와 고혈압이 있다지만 병원에 지속적으로 다니지 않았(못했)기에 역시 '근로능력 있음'이다. 작은 딸은 직장이 없지만 역시 근로능력자였다. 그래서 근로능력이 있으면 최소 최저임금 정도는 버는 것으로 추정한다. 2014년 최저임금 기준에 따라 하루 41,680원씩이다. 최소 15일은 일했다고 봐서 한달에 62만 5,200원, 3명이니 187만 5,600원이다. 송파 세 모녀는 실제 소득은 없었으나 187만원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없는 소득도 있는 것으로 추정해낸다. 이른바 '추정소득'의 마술이다.

애초에 이들이 기초생활보장 제도가 있는 걸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디 숨어사는 것도 아니고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면서 몰라서 신청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SBS 취재 결과, 어머니가 상담을 받았지만 30대 자녀 2명 때문에 신청해봤자 소용없다고 해 포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 "복지라는 게 뭔가요?"

50대 김모씨는 청소일을 하며 희귀병 앓는 남편을 돌보고 자녀들을 키운다. 다행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돼 120만원 정도를 지원받아 왔다. 그런데 이 지원금이 지금은 4분의 1 수준으로 삭감됐다. 자녀 1명이 한때 계약직으로 일했고 대학에 다니던 1명은 휴학했기 때문이었다.

자녀의 계약직 근무로 가계 소득이 일시 늘었던 건 사실이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그만두면서(잘리면서) 소득은 다시 원위치됐다. 하지만 줄었던 지원금은 회복되지 않았다.(이는 신청하면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있다.) 18세~64세까지는 근로능력이 있으면 일해야(자활근로) 급여를 지원받는다. 대학생은 이런 조건부 수급자에서 제외되지만 휴학하게 되면 곧바로 일해야 지원받는다. 일을 하지 않더라도 소득이 있는 걸로 추정한다. 휴학한 자녀는 2015년 최저임금 기준으로 하루 44,640원, 최소 15일을 일했다고 쳐서 66만 9600원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복지라는 게 뭔가요? 이렇게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게 복지 아닌가요? 갑자기 지원을 확 줄여버리면 어떻게 살라고요."


● 법에도 없던 '추정소득'

이렇게 곳곳에서 마술을 부리던 '추정소득'은, 사실 가짜다. 법에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6조의 3 (소득인정액의 산정)에는, 소득인정액을 다음의 소득을 합한 실제소득에서 여러 지출요인에 해당하는 금액을 감하여 산정한다고 나와 있다.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이전소득이 전부다. 추정소득 같은 건 없다. 법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마찬가지다. 다만 일선 지자체에 배포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안내>(지침)에 나와 있을 따름이다. 안내는 그저 안내서, 가이드라인 같은 거다. '추정소득'의 마술은 그동안 대한민국이 법치국가가 아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13년에야 행정소송이 제기됐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80대 노인이었다. 함께 사는 아들이 근로능력이 있는 조건부 수급자였는데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청에서 추정소득을 부과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생계급여를 삭감하자, 이 처분이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구청의 추정소득 부과처분은 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며 당연무효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판결 날짜는 2014년 2월 20일, '세 모녀'가 자살하기 엿새 전이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그동안은 왜 아무도 소송을 내지 않았을까. 추정컨대 지나치게 복잡한 제도 탓에다, 수급자들의 심리 상태는 늘 눈치보고 죄송하고 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여겨지는 데 위축돼 있고 그렇기에 '기초생활 보장'을 권리로 보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 새롭게 등장한 '확인소득'…또다른 마술인가.

'세 모녀 법'으로 불렸던 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수급자의 발굴 지원법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세 모녀'와 같은 복지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가 담긴 입법이었다. 개별 수급자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급여 도입,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수급자 적극 발굴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 개정에 따라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정비됐는데 '세 모녀법'의 개정 내용과는 좀 다른 내용이 추가됐다. '보장기관 확인소득' 혹은 '확인소득'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5조 (소득의 범위)에서 3항이 신설됐다.

③ 보장기관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개별가구의 생활실태 등을 조사하여 확인한 소득을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산정된 실제소득에 더할 수 있다. 이 경우 실제소득의 구체적인 확인 및 산정 기준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  <신설 2015.4.20.>
1. 수급자 또는 수급권자의 소득 관련 자료가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
2. 「최저임금법」 제5조에 따른 최저임금액 등을 고려할 때 소득 관련 자료의 신뢰성이 없다고 보장기관이 인정하는 경우


소득 관련 자료가 없거나 불명확할 때, 신뢰성이 없을 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한 기준에 따라 보장기관이 확인한 소득을 실제소득에 더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 기준은 어디 나와 있냐면 <2015 국민기초생활보장 사업안내>에 있다. 2014 사업 안내와 비교해보면 이때는 추정소득에 대해 설명해놨던 자리에서 추정소득이 빠지고 대신 그 자리에 보장기관 확인 소득이 들어갔다.

이 보장기관 확인소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출실태조사표 등에 의해 추가 소득이 있음을 확인한 자에게 산정한 소득, 또 하나는 근로능력이 있으나 제외사유에 해당되지 않아 조건부수급자로 지정된 자 중 조건불이행자에게 산정하는 소득이다. 전자는 수급자의 지출이 소득보다 많다고 의심될 때 지출 내역을 적게 해 이를 근거로 추가 소득을 부과하는 식이다. 수급자가 적어낸 지출 내역이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의아하지만 어쨌든 보장기관이 확인했다는 근거는 있는 소득이다. 

후자는 근로능력이 있으나 자활근로 참여 등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불이행자에게 소득이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송파 세모녀도 이렇게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돼 수급 대상이 될 수 없었고, 위에 예로 든 김모씨도 근로능력이 있는 자녀가 휴학했다는 이유로 지원금이 삭감됐다. 이 두 가지 내용 모두 '추정 소득'과 거의 같다. '추정 소득'에서 '확인 소득'으로 이름만 바뀐 것이다.

● '위법'하다니 시행령을 고친 복지부…"헌법 원칙에 위배"

2014년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근거 없는 추정소득에 의한 부과 처분이 위법하고 당연무효"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근거를 마련하면 되겠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법은 마음대로 고칠 수 없으니, 시행령을 고쳐 추정소득과 거의 같은 내용의 '확인소득'의 근거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안내>에는 "...보장기관이 지출실태조사표나 수급자와의 추가소득 유무에 대한 사실조사보고서 등 보장기관 확인소득을 산정한 근거를 확보하지 않고 동 소득을 산정하는 경우에는 향후 행정소송이나 이의신청 등 민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 유의"하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적어놓았다.


그러나 법원 판결 취지는 그렇지 않다. 판결문에는 "...위와 같은 추정소득 부과처분에 관하여 법령에 근거나 위임규정이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안내서의 추정소득 부과에 관한 부분은 헌법 제37조 제 2항의 법률유보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아무런 법규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할 것이어서 이를 근거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추정소득 부과처분을 할 수는 없다."라고 나와 있다.

헌법 37조 2항은 이렇다.
②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즉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하더라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는데 추정소득 부과는 이에 반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시행령에 끼워넣으면 괜찮다는 게 아니다.

● '제2의 세모녀'를 막을 수 있을까.

지원금을 삭감당한 김모씨는, 해당 지자체를 성토하다가 갑자기 톤을 바꿨다.

"…이것도 사실은 고마운 거예요. 안 줘도 할 수 없는 거죠. 뭐 어떡해요 안 주면 그만이죠." 

송파 세 모녀가 마지막 남긴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뭐가 고맙고 뭐가 죄송한 것이었을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1조는 법의 목적이다.
"이 법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헌법 34조는 아래와 같다.
①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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