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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개 망신에 왕따 전략까지…유승민은 제 발로 내려올까

[취재파일] 공개 망신에 왕따 전략까지…유승민은 제 발로 내려올까
● "회의 끝내" 난장판 된 최고위원회의

요즘 새누리당 출입 기자들은 19대 국회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회의가 연거푸 비공개로 열리는가 하면, 급기야 난장판이 벌어지는 ‘막장의 끝판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제(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리기 전, 기자들끼리 과연 오늘도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공격하는 발언을 할지가 관심사였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뒤, 회의 때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줄기차게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자신이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희생을 두고 개죽음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해명이었습니다. 막말이 아니고 병사들의 고귀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해명만 하고 그냥 넘어가나보다 하는 순간, 또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콩가루 집안이 잘되는 것 못 봤다"며 "당과 나라를 위해서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발끈했습니다. 원 정책위의장은 목소리 높이는 걸 좀처럼 볼 수 없는 의원입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서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의 이해당사자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자제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원 정책위의장이 원고에도 없는 즉석 발언을 하면서 김 최고위원의 발언을 반박했습니다. 그만두라고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그만두라고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원 정책위의장은 "해도 너무한다"며 불쾌감을 표시했습니다.

김 최고위원도 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마이크를 잡고 맞받아치려는 순간 김무성 대표가 "그만해"라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렸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회의 끝내겠다"며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습니다. 김 최고위원이 "대표님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며 항의하자 김 대표는 "마음대로 해"라며 회의장을 나가버렸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황망해졌습니다. 웅성거리면서 하나둘씩 자리를 떴습니다. 기자들도 의원들도 처음 보는 황당한 장면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습니다. 김학용 의원은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김 최고위원에게 육두문자를 썼다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자리 배치상 유승민 원내대표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됩니다. 붙어 앉아 회의 때마다 거칠게 사퇴를 압박하는 걸 보니 공개적으로 수모를 주겠다는 의도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 석연치 않은 원내대표의 당정협의 불참

정부부처와 여당이 주요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사전 조율하는 자리인 당정협의는 보통 정책위의장이 주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정책은 원내대표는 물론 당대표도 참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자들도 원내대표나 당대표가 당정협의에 참석한다고 고지되면 논의되는 의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감을 잡게 됩니다.

지난 달 30일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는 다음날(7월 1일) 추경예산 관련한 당정협의가 열린다고 고지했습니다. 유 원내대표는 "정부가 제출한 추경 예산안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 국회가 추경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야당의 협조를 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큰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새누리당이 계파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시점에서, 당정협의 상대가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경제부총리였기 때문입니다. 원내대표가 직접 당정협의를 주재하며 대척점에 있는 최경환 부총리의 추경 관련 설명을 듣는 장면 자체가 뉴스입니다. 계파 갈등은 갈등이지만 그래도 할일은 한다는 친박, 비박계의 일종의 휴전 선언이 아닐까 조심스러운 추측도 가능한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유승민 원내대표는 당정협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학 박사 출신의 유 원내대표가 자신의 전공분야인 추경 관련 당정협의에, 그것도 공개석상에서 스스로 고지한 일정에 불참한다는 건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정치권에는 유승민 원내대표와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면하기를 원하지 않는 최경환 부총리가 이런 의사를 전달했고, 어쩔 수 없이 원내대표가 빠지고 정책위의장이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최경환 부총리가 당정 거부 의사를 친박계 모 의원 혹은 기재부를 통해 원유철 정책위의장에게 전달했고,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가 설득됐다는 스토리입니다.

물론 기재부는 그런 의혹을 펄쩍 뛰면서 부인하고 있고, 중간에 이런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진 의원도 "팩트가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당 정책국 실무자들은 "원 의장이 어디로부터 부탁을 받고 원내대표가 참석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설득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당정협의를 원내대표가 참석하는 걸로 준비를 다 해놨다가 부랴부랴 바꾸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자신이 먼저 회의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건 아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오락가락 운영위 일정…국회의장실도 "말이 되느냐" 항의

청와대 결산을 위한 국회 운영위 일정이 잡힌 것도 이상합니다. 결산 국회는 피감기관 가운데 하나인 청와대도 당연히 해야 하는 법적 절차입니다. 이미 6월 달에 결산을 위한 운영위원회는 어제로(2일) 잡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가 "2일에 운영위를 열면 출석을 못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기자들에게 밝혔습니다. 물론 김무성 대표도 자신이 운영위를 연기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지만, 엄밀히 상임위 일정은 당 대표가 관여할 일은 아닙니다. 김 대표는 운영위 연기 이유에 대해서 웃으면서 "그걸 몰라서 묻느냐"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운영위원장을 겸하는 유승민 원내대표와 청와대 관계자들이 마주 앉는 것을 피해보자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운영위 일정은 하루 만에 다시 오늘(3일)로 잡혔습니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운영위 개최를 요구했고, 청와대도 국회가 의사일정에 합의한다면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청와대가 이렇게 입장이 바뀌는 과정에 국회 의장실이 개입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최형두 국회 대변인은 "정부 기관이 결산 심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것은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의 우려를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자신의 뜻을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을 통해 전달했다고 확인해주기도 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청와대의 행동에 국회가 직접 우려를 표시한 겁니다.
● 미동도 안하는 유승민, 초조한 친박

유승민 원내대표는 공개 망신이나 왕따 전략을 그대로 감내하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거취 문제를 물으면 "할 말 없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원내 현안과 관련해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공개석상에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적인 원내대표의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친박 의원들이 고지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시한은 본회의가 열리는 6일입니다. 친박 진영에서는 그때까지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지 않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끌어내겠다"는 말까지 들립니다. 앞으로는 은근한 방법 대신 아주 노골적인 방법으로 사퇴를 종용하겠다는 뜻이 됩니다. 정부부처도 대통령의 진노를 알기 때문에 원내대표에 협조를 안 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여당 원내지도부에 속하는 의원들은 원내대표가 사퇴의 명분을 찾지 못했다는 말을 합니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만 두라고 하는 거냐는 항변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6일 이후에는 청와대와 정부가 한편이 돼 여당과 더욱 큰 파열음을 내며 충돌할 가능성이 큽니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의 힘겨루기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국민들의 인내심이 점점 바닥나고 있습니다. 당청이 머리를 맞대고 일을 해도 될까 말까한 어려운 국정 과제가 수두룩한데, 이런 식의 기 싸움이 누구를 위한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망신주기, 왕따 시키기라는 수준 이하의 일을 매일 보도해야하는 기자들의 심정도 괴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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