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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는 대한민국의 국새 지기다"

[취재파일] "나는 대한민국의 국새 지기다"
'국새'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보면 느꼈던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영화는 조선 건국 초기 국새가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국새를 삼킨 고래'를 찾기 위한 소동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과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에서 국새를 받던 시절, 국새의 의미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겠구나 싶어 당시 국새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해 했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시대가 바뀐 지금 국새는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당시 가졌던 호기심이 국새를 취재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현재 국새를 관리하는 곳은 행정자치부입니다. 행자부 내 국가 의전과 국가 상징물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종합적인 관리와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보관되어 있는 곳은 정부 서울청사 19층 국무회의실 옆에 있는 국새실이라는 곳입니다. 3평 남짓한 자그만 방입니다. 그러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어 일부 담당 공무원만이 드나들 수 있습니다. 저희도 취재 허락을 받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엄중한 관리대상인 만큼 6중의 잠금장치가 되어있고, 화재에 대비한 소방시설과 도난에 대비한 안전장치도 갖춰져 있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촬영 도중에도 금고의 모양을 노출해주지 말 것을 요구하는 등 무척 보안에 예민한 모습이었습니다.
취재파일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국새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습니다. 가로 세로 10.4cm의 정사각형 모양에 무게는 3.38kg정도 된다고 합니다. 보통 신생아의 몸무게를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전 국새보다 0.3cm씩 커졌고, 무게도 1.23kg 늘어 역대 최대라는 설명입니다. 봉황 두 마리의 등에 무궁화 한 송이가 피어있는 모습에, 손잡이를 뒤집으면 훈민정음 해례본 글씨체로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금이 2.6kg 사용됐고, 전체 제작비도 2억 원 넘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특히 균열이 가지 않도록 기존의 금과 은, 구리, 아연 외에 이리듐이라는 희귀금속을 첨가해, 내구력이 항공기 기체 수준만큼 높아졌다는 것이 행자부의 설명입니다.

국새는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국새는 말 그대로 '국가의 도장'인 만큼, 각종 훈 포장과 임명장, 외교문서 등 국가의 중요 문서에만 쓰입니다. 연간 1만 2천장 정도의 문서에 국새가 찍힌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40번 정도 쓰이는 셈이죠. 저희가 취재할 때도 임명장의 국새 직인 요청이 있어, 실재 사용되는 문서에 국새가 찍혔습니다. 교장 선생님들의 임명장이었는데, 교육 공무원의 경우 교장부터 국새를 찍는다고 합니다. 국새 직인은 임명장 훈 포장의 화룡점정이고, 국새 직인이 없으면 국가 문서로서의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국새는 아무나 찍지 못합니다. 전담하는 공무원이 2명 있습니다. 현재는 곽상혁 행정자치부 주무관과 김동훈 인사혁신처 주무관이 맡고 있습니다. 두 분 다 전담 경력이 6년 안팎인 '국새 찍기의 달인'들입니다. 김 주무관이 임명장을 맡고, 곽 주무관이 각종 국가 문서를 맡는 식으로 분담하고 있습니다. 과거 안정행정부 시절에는 같은 부처였는데, 지난해 11월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로 나눠지면서 부처가 갈린 것이죠.

옆에서 지켜본 이들의 국새 찍기 실력은 정말 '달인'급이더군요. 줄을 대거나 인쇄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찍습니다. 국새는 규정상 본문 가장 중앙에 찍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울어지면 생각보다 표시가 많이 난다고 합니다. 찍는 도중에 잠깐 다른 생각을 하면 잘못 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에, 굉장히 집중해서 찍는다고 했습니다. 많을 때는 하루에 몇 시간씩 4백장 넘게 찍을 때도 있다고 하는데, 다 찍고 나면 진이 빠진다고 합니다. 옆에서 국새를 찍는 진지한 표정을 보니, 그럴만하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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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습니다. 국새를 많이 찍다보면 물집이 생길 경우가 있는데, 물집이 잡혀도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어 생긴 것이죠. 국새 윗부분 무궁화 꽃잎 문양에 손바닥이 계속 눌리면서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6년이라는 시간을 반영하듯 무척 단단하고 깊어 보였습니다. 인터뷰를 한 김 주무관은 "제가 국새를 찍는 한 굳은살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국새가 저에게 주는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국새에 대해 남다른 마음가짐이 있을 것 같아 물어봤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 주무관의 추서 임명장에 관한 말이었습니다. 공무원이 공무 중에 순직을 하면 한 계급 특진을 해서 그 분에게 추서를 하는 임명장을 제작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어느 임명장보다 더 집중을 한다고 하더군요. 추서 임명장은 보통 장례식장 영정 옆에 모시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보게 되는데, 순직하신 공무원과 유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더 숙연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국새를 찍는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는다고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저도 짠하게 느껴졌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는 모두 다섯 번 국새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반영하듯 국새도 파란만장한 변천사를 겪었습니다. 1대 국새는 1949년 제작됐습니다. 한자로 쓴 유일한 국새인데, 분실돼는 바람에 어떤 모양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분실했다는 사실 자체도 2005년 처음 알려졌는데,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조차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제2대 국새는 1963년부터 1999년까지 36년간 쓰이면서 국새 최장수 사용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제3대와 4대 국새는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문화적 독창성과 국가위상이 담긴 국새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반영해 제작된 제3대 국새는 1999년부터 쓰였는데 2008년에 사용된 지 10년도 못 돼 폐기됐습니다. 손잡이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인데, 부실하게 제작된 이를테면 '불량 국새'였던 셈입니다. 고도성장이 끝나가고 그 후유증이 나타나던 당시 시대상과 닮아있다는 지적을 듣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4대 국새의 '스캔들'과 비교하면 제 3대 국새의 부실 논란은 오히려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국새 제작자가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어야 한다는 계약조건을 어기고 제작에 쓸 금을 빼돌리는 등 희대의 사기사건에 휘말렸습니다. 결국 이 일이 들통 나면서 제4대 국새는 제작 1년 9개월 만에 폐기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당시 저희 SBS 후배들이 이 기사를 취재해 특종 보도했습니다. 이 추문은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 [단독] 600년 전통이었다더니…'엉터리 국새'

국새는 태극기와 같은 국가 상징물입니다.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나라의 얼굴'로도 불립니다. 도장 자체가 가지는 구식의 느낌은 있지만, 우리의 역사가 담겨있는 귀중한 전통 문화의 상징으로써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현대사처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광복 70년을 맞은 올해, 정부 수립과 함께 66년의 역사를 함께 해온 국새가 영광의 역사를 기록하기를 기대합니다. 

▶ 나라의 얼굴 '국새'…"우리가 바로 국새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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