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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TV 광고가 늘어난다? 광고총량제로 변하는 것은…

[취재파일] TV 광고가 늘어난다? 광고총량제로 변하는 것은…
TV 광고를 '테레비 선전'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올해 마흔 살인 제가 어릴 적 저희 아버지가 꼭 그런 분이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권투 중계나 드라마를 기다리실 때 '테레비 선전' 몇 개가 연달아 화면을 흘러 가면 '하여튼 저놈의 선전은....'하며 혀를 끌끌 차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옆에서 같이 TV를 보던 저는 짧고 시끌시끌하며 인상적으로 강렬한데다 뭐가 '유행'인지 짐작할 수 있는 그 '테레비 선전'이 그리 싫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다지 여유롭지 못한 집안을 이끌어야 하는, 다시 말해 가족 모두가 쓸 돈을 벌어야 하는 아버지와, 아무 생각없이 그 돈을 쓰면서 자라가던 아들의 인식 차이 때문이었겠죠. 

저희 집 거실에서 '테레비 선전'이 'TV 광고'로 인식의 변화, 다시 말해 업그레이드를 겪은 것은 거실 TV가 채널을 바꿀 때 회전 손잡이를 드르륵 돌리는 옛날 '수상기'에서 전자식 '리모콘'이 달린 TV로 바뀌고 난 뒤였습니다. '테레비 선전'이 시작되면 누구나 간단하게 손을 까딱 움직여서 다른 채널로 잠깐 눈을 돌렸다가, 광고가 끝날 때쯤을 어림 짐작해서 다시 보던 채널로 돌아오면 됐거든요. 적지 않은 돈을 새 TV를 사는 데 쓴 아버지는 '리모콘'이라는 혁명적인 도구에 상당히 만족하셨습니다. 물론 리모콘 버튼을 눌러서 옮겨 간 채널에서도 광고를 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는 않았지만 그 때마다 회전 손잡이를 돌리러 무릎걸음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우리 가족의 광고 몰입도는 아마 그때쯤부터 비약적으로 증가했던 것 같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어제(24일) 지상파 방송에도 광고총량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테레비 선전' 시절인 1973년에 만들어진 광고 규제가 이제서야 바뀔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겠지만, 1973년에 만들어진 광고 규제는 TV 광고를 프로그램광고, 토막광고, 자막광고, 시보광고로 유형별로 촘촘하게 구분하고 각각의 시간과 횟수, 방법에 제한을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볼 거라고는 안테나 연결한 지상파 TV밖에 없었던 시절에, 저희 아버지처럼 상업 광고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규제입니다. 굉장히 경직되어 있어 그 안에서 운영의 '묘'를 살릴 방법이 좀처럼 없었습니다. 90년대 들어 생긴 유료 유선방송(케이블)과 몇 년 전 생긴 종합편성채널은 시작부터 시대의 추세를 반영한 광고 제도의 적용을 받았지만 유독 지상파 TV에는 예의 '테레비 선전' 시절의 규제가 들이밀어졌습니다. 그게 무려 42년인 겁니다. 

광고총량제는 앞서 말씀드린 프로그램광고, 토막광고, 자막광고, 시보광고 같은 종류별 광고의 시간과 횟수, 방법 등을 칸막이식으로 정해놓는 대신 전체 방송광고 시간의 총량 한도만을 정해놓는 제도입니다. 그 틀 안에서 방송사가 광고의 종류와 횟수 등을 자유롭게 편성하는 거죠. 이미 돈 내고 보는 케이블과 IPTV는 광고총량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유료방송은 사실 '60초 뒤에 돌아옵니다!'로 대표되는 중간광고도 허용돼 있죠.) 아무튼 이번 광고제도 개선으로 지상파 방송사는 그동안의 '족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습니다. 

"광고총량제로 TV 광고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건 아닌가요?"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하실 분들 많으실 것 같습니다. MBC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들면서 지상파에 광고총량제가 시행되면 95분짜리 해당 프로그램의 경우 광고가 38개(9분 30초, 15초 기준)에서 57개(14분 15초)로 늘어난다고 주장하는 일부 인쇄매체도 있습니다. '광고 많이 봐야 하는데 좋을까?'하며 시청자를 떠 보는 얘기들입니다. 일부 인쇄매체의 '지상파 흔들기'는 광고총량제 논의에서 특히 심하게 전개됐는데요, 어제(24일) 한 일간신문의 정정보도만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전략) 사설 '지상파 편드는 광고총량제' 중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상파 광고총량제가 도입될 경우 광고주의 81.7%가 타 매체 광고비를 줄여 지상파 광고비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는 대목은 조사 자료를 잘못 인용한 것이므로 바로잡습니다. 총량제 도입 시 지상파 광고비 지출 규모를 늘리겠다는 답변은 응답자의 19%였으며, 지상파 광고비 증액 의사를 밝힌 응답자의 81.7%가 타 매체 광고비를 줄이겠다고 응답했습니다.

①전체 광고주의 81.7%와, ②전체 광고주 가운데 지상파 증액 의사를 밝힌 19%의 81.7%는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전체 광고주가 1000명이라고 보면 ①817명과 ②155명입니다. 무려 662명의 차이를 단순히 '잘못 인용했다'고 변명하고 넘어가는 것을 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답답한 헐뜯기는 이루 다 열거하기도 힘들지만, 다시 광고 시간 논의로 돌아가겠습니다. 일단 광고 시간이 늘어날 거라는 가정이 이론상으로는 완전히 틀린 얘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될까요? 만약에 광고가 저만큼 늘어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광고가 모두 '팔려야' 한다는 대전제가 일단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이 제작하는 수많은 프로그램 가운데 광고주들의 서로 들어오려고 하는 프로그램은 극소수입니다.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이야 물론 대표 인기 프로그램이니 광고 유치에 대한 걱정은 상대적으로 덜하겠지만,  보도나 교양,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들은 광고주들이 프로그램의 인기와 영향력을 감안해 굉장히 신중하고 선별적으로 광고 시간을 구매합니다. 예산을 집행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죠. 아무튼 전체적으로 보면 현재 지상파 방송의 광고 판매율은 전체 시간 대비 50%가 채 안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 광고는 얼마까지 늘어날 수 있을까요? 42년 묵은 규제에서 1시간당 내보낼 수 있는 광고 총량은 최대 10분이었습니다. 이게 광고총량제가 시행되면 늘어나 봐야 최대 10분 48초가 됩니다. 15초 광고 세 개 정도의 길이가 추가되는 정도죠. '무한도전' 같은 주력 예능의 경우는 프로그램 편성 시간이 한 시간 이상이라 광고 시간이 많아 보이지만, 아직 상당수의 지상파 프로그램은 1시간 단위입니다.

오히려 보도 프로그램과 일부 연속 드라마 같은 경우는 1시간이 채 안되는 경우도 많아서 광고 시간의 길이는 종전과 큰 변화가 없는데다, 이번 제도에서는 지상파 방송에만 프로그램 광고를 최대 9분으로 제한해 방송사가 다른 유형의 광고를 들여오지 못하면 오히려 전보다 광고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상파 방송사가 다소 숨통이 트였다는 것은 정해진 시간 내에서 광고 길이를 조정하거나 유형을 배분하는 '설계'의 자유가 생겼다는 뜻이지, 광고 시간이 시청자들의 불편을 초래할 정도로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정리하면, 광고총량제가 시행돼도 최대 한도로 보면 광고 시간의 변화는 미미합니다. 게다가 한도까지 다 채워서 광고를 방송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극히 일부로 한정돼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도 시청자가 언제든 '리모콘'으로 휙휙 채널을 바꿀 수 있는 이상, 칸막이 규제 시절처럼 15초짜리 광고를 틀에 박힌 패턴으로 '지루하게' 10여 개씩 이어서 방송하는 것보다는 광고의 완급을 조절하고 형식으로 재미를 주는 '혁신'을 고민해야 합니다. 방송사는 '채널 이동'을 막기 위해 지루하지 않은 광고 편성 전략을 짤 것이고, 광고주들도 시청자들의 눈에 들기 위한 다채로운 기법을 고민할 겁니다. 어쩌면 TV 광고는 이제서야 진짜로 '테레비 선전'의 오래된 악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요.

▶ '광고총량제' 도입됐지만…"차별적 규제 폐지"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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