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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각장애인 유도대표 이정민 "안 보여도 업어치기 잘해요"

[취재파일] 시각장애인 유도대표 이정민 "안 보여도 업어치기 잘해요"
장애인 스포츠를 담당하고 있는 기자는 최근 그쪽 체육회 홍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취재 할 만한 선수나 이야깃 거리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시각 장애인 유도 선수가 한 명 있는데 과거에 왕기춘을 꺾었다고 하던 데요, 관심 있으세요?"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왕기춘이 누굽니까.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유도 은메달리스트인데다 국내 남자 유도 최강자 중 한 명인데, 그를 제압한 선수가 장애인 대표팀에 있다니...  무언가 좀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그 선수가 사고로 눈을 다쳤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이름은 이정민이고, 하여튼 실업대회서 왕기춘을 꺾은 적이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취재파일] 시각장
인터넷을 뒤져보니 사실이었습니다. 지난해 실업최강전에서 왕기춘을 꺾고 우승을 했더군요. 어떻게 이런 선수가 장애인 팀에서 뛰게 됐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다음날 곧바로 경기도 이천에 있는 장애인 체육훈련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유도 훈련장에서 본 이정민 선수의 첫 인상은 그냥 비장애인처럼 보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지팡이도 없었고 훈련장도 지리를 잘 아는 듯 별 어려움 없이 돌아 다녔습니다.'저 사람이 시각 장애인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알고 보니 이정민 선수는 하나도 안 보이는 전맹(全盲)은 아니고 눈으로 사물의 형체만 희미하게 인식하는 '시각장애 2급'이었습니다. 왼쪽 눈은 시력이 없고 오른쪽이 1m 거리의 물체를 희미하게 볼 정도라고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래도 이런 시력으로 지난해까지 실업팀에서 비장애인선수들과 경기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 선수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선천적으로 눈이 나빠 유치원 시절부터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썼습니다. 주위 애들한테 놀림 받는 게 싫어 초등학교때 유도를 시작하게 됐고, 십 년 넘게 하다 보니 감각이 발달해 계속 하게 됐습니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안 보여도 보이는 척 하며 지금까지 견뎌 왔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왕기춘 선수를 꺾었냐" 고 물었더니 "한때 왕기춘 선수의 훈련 파트너를 한 적이 있어 그 선수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데다 큰 운(?)이 따랐다"며 겸손하게 답변했습니다.

왕기춘을 잡기도 했지만 이정민 선수는 지난해 말 고민 끝에 결국 시각장애인 유도로 전향했습니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감각으로만 경기를 한다는 게 그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눈이 안 좋은 탓에 상대 선수의 도복을 놓치면 불리하기 때문에 한번 잡으면 절대 안 놓으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또 경기중에 시계를 봐도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볼 수가 없어 완급 조절이 어려웠고, 심판 신호도 잘 안보여 경기를 진 적도 많았습니다."
[취재파일] 시각장
시각 장애인 유도는 그동안 비장애인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온 이정민 선수에게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비장애인 유도는 눈이 잘 안 보이는 선수들이 편안하게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심판들이 선수들을 직접 손으로 끌고 입장하고 경기도 도복을 잡고 시작합니다.

또 심판 구령도 선수들이 잘 알아듣기 쉽게 큰 목소리로 구령을 하거나 손뼉으로 대신합니다. 이정민 선수는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시각장애인유도를 평정했습니다.
[취재파일] 시각장
지난해 11월 장애인유도로 전향하자마자 곧바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올해 2월 헝가리 시각장애인 유도 오픈대회 남자 81kg급에서는 상대선수들을 잇달아 한판으로 제압하며 당당히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정민 선수가 그동안 비장애인선수들과 경쟁하느라 마음 고생도 심했지만 그런 어려움들이 오히려 장애인 유도쪽 에서는 강한 경쟁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정민 선수는 내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패럴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지난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최광근에 이어 시각 장애인 유도에서 새로운 올림픽 챔피언의 탄생을 기대해봅니다.

▶ '왕기춘 꺾은' 시각 장애 유도 선수의 '금빛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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