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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취재파일] 인문학·창의성 열풍의 허상을 말하다…건명원 최진석 교수 심층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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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공부하는 방식으로는 공부 할 필요 없어요. 왜 그러냐면 지금 우리가 공부한다고 배우고 있는 것들이요. 다 남이 한 말이에요. 남이 한 말."

"공부가 원래 그런 거 아닙니까?"

"남이 한 말.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공부하죠. 공부하는 것을 우리가 배운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배움에만 빠지면 자기는 자기 스스로 표현할 능력이 거세 됩니다. 약화돼요. 그러니까 배우지 마라. 그 소리는 무식해져라 그 소리가 아니라 당신이 배우고 있는 그 내용은 누군가가 자기를 표현해 낸 거다. 다른 사람이 표현해 낸 그 자기를 습득하는 것이 당신이 할 일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을 표현하는 그 길을 찾는 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책 속에서 길을 찾잖아요. 책 속에 어디 길이 있겠어요. 책을 쓴 사람 그 사람이 길이 있어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믿고 듣는 팟캐스트, SBS 오디오 취재파일입니다. 저는 뉴미디어부 이주형 기자입니다.

최근 서울 북촌 한옥들 사이로 건명원이란 이름의 인문·과학·예술 교육기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학위도 없는 비정규 사립 교육기관으로, 수료한다고 해서 무슨 자격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취업에 이렇다할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19세~29세 사이의 30명의 학생을 뽑는데, 900명의 지원자가 몰려서 화제가 됐습니다.

스펙을 보지 않고 뽑는다는 것, 학비가 무료라는 것, 매주 수요일 4시간씩, 1년 과정을 수료하면 가고 싶은 곳으로 한달 간 해외 연수를 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노자 도덕경과 키케로의 국가론을 암송해야 한다는 것 등도 함께 눈길을 끌었는데요, 참여한 교수진도 화려합니다.

서울대 종교학과의 배철현 교수, 서강대 철학과의 최진석 교수, 노자철학을 강의하는 인기 인문학 강사죠? 물리학자인 카이스트 정하웅 교수,  뇌과학자인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 국민대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김개천 교수, 서양사학자인 서울대 주경철 교수, 대항해시대란 책으로 유명합니다. 고려대 언어학과 김성도 교수, 서양철학자이자 시인인 서강대 서동욱 교수...  
 
북촌 한옥에서 이 정도 교수진의 수업을 받으려면 돈이 많이 들겠죠? 교수 몇몇과 친분이 있는 두양문화재단의 오정택 회장이 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판 마쓰시다 정경숙이 아니냐 이런 말까지 듣고 있는데요, 오늘은 오디오 취재파일 특집으로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도 두 번이나 강의했던 스타 인문학 강사인 건명원 원장 최진석 교수와의 인터뷰 전해드립니다.

최진석 교수는 서강대 철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북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최근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를 주목받았습니다.

인문학과 창의성에 관심있으신 청취자들, 혹은 인문학과 창의성 이야기를 좀 더 쉽고 명쾌하게 접근해보고 싶은 청취자들께 훌륭한 조언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럼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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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 정말 많은 사람들의 주목 속에 건명원을 시작해서 한 달은 안 됐지만 강의를 몇 번 하셨습니다. 강연을 하셨는데 어떠십니까. 해보시니까 실제로.

최진석 교수/ 실제로 해보니까 그 전에 우리가 건명원을 시작할 때는 어떤 면에서 상상속의 확신이잖아요. 상상속의 확신이었기 때문에 시작하면서 약간 걱정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두 번 강의를 해보고 학생들과 또 치열하게 논쟁도 해보고 하는 과정 속에서 아, 우리가 선택한 길이 맞는 길이었구나. 하는 실제적인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기간이 물론 3주 밖에 안 되지만.

이주형 기자/ 모집 학생이 30명 아닙니까? 900명이 모였다고 들었습니다. 이 숫자를 예상 하셨습니까?   

최진석 교수/ 건명원 참여 교수님 가운데는 예상하셨다는 분도 계셨는데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저는 또 원장 입장에 이렇게 판을 벌여 놨는데 학생들이 또 안 오면 어떡하나. 또 경쟁률이 아주 낮으면 어떡하나. 그것도 또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마지막 날 아주 많이 몰렸죠. 그래서 저희가 그날 밤 12시에 그냥 정확히 끊었어요. 그날 끊지 않았으면 더 많은 학생들이 아마 원서를 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들도 놀라운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주형 기자/ 제가 건명원으로 해서 검색을 해보니까요. 그 탈락자들의 모임이 있더라고요. 자기들끼리 이름도 짓고 뭘 공부해 보자. 이렇게 할 정도인데 건명원에서 한 번 공부를 해보고 싶다. 이 정도 열망의 기저에는 도대체 뭐가 있다고 선생님께서는 생각하십니까?

최진석 교수/ 저는 어떤 답답함 혹은 한계 이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존에 있는 교육 시스템이랄지 기존에 있는 제도 안에서 훌륭한 과정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뭔가 지금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데에는 좀 더 채워져야 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답답함이 있는 거 같고요. 그 다음에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많은 분야에서 지금 한국은 어떤 한계를 느끼고 있는 거 같아요. 어떤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 이런 것들이 필요한 시점인데 이 지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지들이 의식적 무의시적으로 있었던 거 같아요.

이주형 기자/ 쉽게 이야기해서 어떤 한계들을 사람들이 느끼고 부딪히고 극복해 보려고 하고 답답해하고 하는 거였을까요?

최진석 교수/ 지금 우리 사회를 지금 지배하고 있는 큰 화두들을 보면 모두 다 선진, 선도, 창의, 상상 이런 것들이지 않습니까. 왜 이런 것들이 중요 화두로 우리 사회에 제기되느냐면 이런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기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작동하는 그 레벨로 우리가 가야 된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인정이죠. 그런데 선진이랄지, 선도랄지, 어떤 창의랄지, 상상이랄지 어떤 이런 것들이 벌어지는 공간이 극단적 뭐 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아마 선진국 레벨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다 중진국 레벨의 지금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중진국 레벨에 갇혀 있는 이 사회가 선진국 레벨로 한 단계 도약해야 된다. 그 도약한 그곳이 바로 어떤 인류의 길이고 선진국의 길이고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주형 기자/ 면접 과정에서도 학생들한테도 지원자들한테도 아마 교수님께서도 물어보시기도 하시고 그쪽 친구들 이야기도 들으셨을 텐데, 스펙을 안 보고 이제 면접 선발한다. 어떤 걸 보고 이 30명의 인재들을 뽑으셨습니까?

최진석 교수/ 이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가, 인식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한계를 인식했다면 이걸 넘어서 보려는 어떤 의지가 강한가, 강하지 않은가 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봤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기존에 있는 어떤 논리나 이론이나 세계관에 의해서 안정되어 있는 사람보다도, 그런 기존에 있는 것과 어느 정도 불화를 빚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을 주는 학생 그래서 어떤 있는 이미 있는 것보다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꿈꾸려는 어떤 배짱이랄까. 어떤 그런 까탈스러운 성격 이런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중점적으로 봤습니다.

우리 눈으로 봤을 때, 우리 눈으로 봤을 때는 좀 어떤 돌파하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들 그 다음에 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는 학생들 그 다음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학생들.

이주형 기자/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학생들은 왜 뽑으셨어요?

최진석 교수/ 자기하고 맞지 않거나 이미 안정되어 있는 것이 지루하게 보여야만 되거든요. 지루해야만 되거든요. 그래야 어떤 새로운 어떤 지루하지 않은 것을 꿈꾸잖아요. 그러니까 좀 그래 보이는 학생들로 뽑았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학생들을 뽑을 때도 스펙을 안 보고 뽑았고 그 다음에 학생들을 우리가 외부에 소개할 때도 되도록 스펙 관해서 소개를 안 하고 있어요. 그리고 학생들끼리도 서로 이렇게 결국 알게 되겠지만 이름표에 스펙을 적지 않고 이름하고 관심분야만 적습니다.

저는 생기 있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지루함을 느낄 능력이 있어야 돼요. 그리고 자기한테 맞지 않는 거 그 다음에 어떤 시대와 함께 가는 새로움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지루함을 느껴야죠. 지루함을 느껴야죠. 그거는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이 경박함하고 바로 연결 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어떤 사고의 깊은 뿌리 그 다음에 어떤 그 좀 깊은 곳까지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자기가 지금 지루함 속에 있는지 아니면 지루함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는지 하는 것에 대한 각성 능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런 각성 능력이 이 사람을 지루함을 대면하게 하고 그 지루함을 넘어서거나 극복하려는 의지가 이 사람한테 어떤 창의적 동력으로 작용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지루함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 구태의연한 행동을 하면서도 자기가 구태의연함 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거든요.

이주형 기자/ 건명원 원장님이신데 선생님께서는 건명원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습니까?

최진석 교수/ 건명원은 우리 이사장님하고 그 다음에 국민대 김개천 교수님하고 그리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 배철현 교수님께서 서로 이야기를 하시다가 제가 배철현 교수님의 소개와 이사장님의 요청으로 이제 참여를 하게 됐죠. 네 명이.

그런데 참여하고 하는 과정에서 모든 준비 과정이나 어떤 계획 기획은 배철현 교수님의 뜻이 많이 반영이 되어 있고 그 분의 기획력이 크게 작용을 했죠.

이주형 기자/ 단순히 선생님께서도 무슨 인맥이나 와주라고 한다고 거기 다 가시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선생님께서 거기 내부에 뭔가 내적 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 합류하게 되셨을 텐데.

최진석 교수/ 그렇죠. 그거는 그 저는 항상 이런 어떤 교육 기관이 하나 있어야 되겠다. 나도 언젠가는 만들고 싶다. 하는 생각을 계속 했었죠.

이주형 기자/ 이런 교육기관이라면 어떤 교육기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최진석 교수/ 이런 교육기관이라는 건 있던 이 새로운 어떻게 창의적인 동력을 생산할 수 있는 내면을 기르는 것에 중점을 두는 어떤 교육기관 같은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초보적으로 건설했지만 어떤 이질적인 학문들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주입될 수 있는 방식 그 다음에 어떤 이론의 흡수보다는 그 이론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다음에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이렇게 의지가 계속 유지되는 인재를 양성하는 그런 교육기관 그런 것을 제가 꿈꿨고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니 어떻게 이렇게 인연이 됐어요.

이주형 기자/ 웹페이지 보니까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인문과학 예술 혁신 프로그램 이렇게 되어 있고요. 또 혹자들은 한국판 ‘마쓰시다 정경숙’ 이렇게 부르기도 하더라고요. 이게 정확한 비유라고 표현이나 정의라고 보십니까? 어떠십니까?

최진석 교수/ 그건 정확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 ‘마쓰시다 정경숙’ 같은 것하고는 좀 다르고 또 우리가 그런 사전에 있었던 이전에 있었던 교육기관을 되도록 참고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우리 뜻대로 우리 생각대로 밀고 나가려면 기존에 있는 것들의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죠.

그런데 우리가 디지털 시대를 선도한다. 이 말은 우리 의지하고도 관련이 있는 거 같아요. 왜 그러냐면 지금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의 시대를 길게 살다가 전혀 새로운 시대로 진입했거든요. 디지털 시대죠.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산업혁명 시작될 때도 그 이전에 귀족과 농노의 계급 관계가 산업혁명과 동시에 자본과 노동자로 계급이 바뀌잖아요. 이 계급이 바뀌었다는 것은 정치적 욕구가 바뀐다는 거고 삶의 양식이 달라진다는 거거든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간다는 거죠. 지금 산업혁명 이후로 지속되던 그 산업 구조가 전혀 다른 형태로 우리가 시대가 바뀌고 있죠. 디지털 시대로 바뀌고 있죠. 디지털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거고, 인간도 새로운 인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죠. 물론 계급이 달라진 건 우리가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거고요. 자, 그러면 우리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를 보는 방식 세계를 읽는 문법이 디지털 시대를 잘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산업혁명 시대에 진화된 어떤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반성해 본다면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려면 그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재들이 준비 되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인재를 우리가 먼저 좀 준비를 해야 되겠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이주형 기자/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시기를 건명원은 인문학 교육기관이나 서당은 아니다. 라고 말씀을.

최진석 교수/ 그렇죠. 다른 서당들이나 사숙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뭐 제가 실례가 될 거 같아서 예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있는 경전을 숙지하는 거나 이미 있는 이론을 더 단단하게 하려고 한다면 그건 우리가 가는 길하고는 다르죠. 우리는 지금 이미 있는 모든 이론들을 다시 한 번 반성하고 새로운 이론을 구축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만들거나 새로운 꿈을 건설하는 어떤 동력을 만드는 것이 저희들 꿈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이사장님께서 건명원 우리 개원식 때 하신 말씀이 있어요.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부탁하셨어요. 아, 반역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교수들한테는 이렇게 부탁하셨어요. 반역자로 키워 주십시오. 여기서 반역이라는 말은 우리가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되겠지만 우리의 의지를 반영하는 단어로는 이렇게 좀 적절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반역이 그러니까 새로운 시대는 현재와 불화를 빚지 않고는 내릴 수 없거든요. 지금 현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화를 보이는 것들 이런 것들은 현재 안에 현재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 속에서의 갈등들이지. 현재 자체와 빚는 불화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건명원은 현재 안에서 이 빚어지는 갈등의 한쪽을 선택해서 거기서 어떤 승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보여주고 있는 갈등 자체를 지루하게 보고 지루한 것으로 보고 우리는 현재 전체와 불화를 한 번 빚어보겠다는.

이주형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명원에서는 그 국가론이나 도덕경을 암송을 한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옛날 방식이죠. 그래야 졸업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최진석 교수/ 암송을 전체적으로 암송하는 것은 졸업 요건이 아니고요. 우리가 이제 그 거의 암송이죠. 우리가 시험을 볼 겁니다. 외우고 있는 사람만 이렇게 쓸 수 있게.

이주형 기자/ 그럼 그 정도 수준까지 자라도록 그 옛날 그 고전을 뭔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준비를 시키는 이유는 어떤 걸까요?

최진석 교수/ 암송이, 암송이 우리한테는 사라진 전통이 됐어요. 지금 현대는 암송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이주형 기자/ 스마트폰으로 그냥.

최진석 교수/ 그렇죠. 낭독이 사라졌어요. 눈으로 읽는 것만 진행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왜 우리가 고전을 암송을 시키느냐면 암송을 하고 또 낭독을 해야만 자기가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한 것이 자기 몸으로 바뀌거든요. 그것이 자기로 바뀌어요. 다시 말씀 드리면 건명원에서는 어떤 새로운 이론의 대한 인식, 새로운 이론의 대한 어떤 지적 구성 이것을 하려는 인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돌파력의 대한 인식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돌파력 자체를 발휘할 수 있게 만들려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지식이 자기 안에서 자기 것이 돼야 돼요. 자기가 돼야 돼요. 자기가 되는 좋은 장치 중에 하나가 낭독 그 다음에 암송 이런 것들이거든요.

이주형 기자/ 알겠습니다. 제가 사실 굉장히 궁금해 하는 부분이고 선생님께도 꼭 한 번 여쭤보고 싶은 부분인데 개인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은 우리 건명원에 보면 아까 언급해 주신 배철현 교수님도 그렇고 우리 교수님도 그렇고 김대식 교수님 있고 김성도 교수님 등등해서 정말 유수의 학자들이 건명원에 다 모여 계세요.

이주형 기자/ 그런데 이 분들이 다 대학에 계신 분인데 굳이 대학 강의가 아니라 이렇게 나와서 하는 그 이유가 뭘까? 심지어 주경철 교수님은 합류하시기 전에 왜 대학이 아닌데 이런 걸 또 밖에다 만들어야 되느냐. 이런 질문까지 하셨다고 들었는데 왜 대학이 아니라 밖을 나오셔야 되는지 그 부분 굉장히 궁금합니다.

최진석 교수/ 그 건명원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커리큘럼이 무엇이냐. 그 커리큘럼으로 어떤 완성도에 도달하려고 하느냐. 이런 것보다도 이런 뜻을 가지고 어떤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려는 어떤 그 지성적 능력이 있는 사람을 배양하려는 이런 뜻을 가지고 모였다. 하는 이 사실이 건명원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자 가치에요. 물론 대학에서도 할 수 있죠. 대학에서도 할 수 있는데 대학 안에선 그 이질적인 학문들 간에 동시에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이주형 기자/ 현실적으로.

최진석 교수/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고 그리고 이 운영 자체를 건명원 교수들이 자기 뜻을 펼칠 수 있게 자금의 사용이랄지 그 다음에 운영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랄지 이런 것이 완전히 우리한테는 자유가 주어졌거든요.

이주형 기자/ 그런데 대학은 기존 시스템이란 게.

최진석 교수/ 네. 기존 시스템이란 게 있기 때문에 그런 그런데 물론 대학에서 할 수 없다는 건 아니에요. 대학에서도 물론 할 수 있죠. 대학에서 물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대학 안에서 만드는 것이 어느 대학에서나 쉽지 않은 일이고 그 다음에 대학이 지금 가지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은 대개 지식의 습득이거든요. 지식의 습득인데 건명원은 지식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습득에 치중한다면 우리는 습득보다도 지식 자체가 발생하는 그 어떤 그 찰나 그 순간 거기를 거기에 감촉하는 어떤 일을 해보자. 하는 거죠. 물론 대학에서 할 수 없다. 그리고 대학은 잘못 됐다. 그런 뜻이 아니라 아마 우리가 자유롭게 한 번 새로운 시대를 준비 시키는 인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을 한 번 구성 해보자. 그러면 좀 더 우리 자유롭게 우리 뜻을 펼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거죠.

이주형 기자/ 대학에 계시니까 실제로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뭣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대학이 잘못 됐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은. 그리고 지금은 보면 국내레벨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 정말 유수의 대학들도 그 명교수의 강의를 그냥 온라인으로 서비스 다 하고요.

그 경계가 사실은 언어만 좀 통하면 경계가 사실 허물어지고 있어서 사실 대학 자체가 큰 위기이고, 뭐 지식의 습득이 더 이상 그 습득한 만큼 우리가 또 아웃풋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어떤 위기인 상황인 것도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진석 교수/ 대학이 위기인 것은 당연한 거 같아요. 왜 그러냐면 지금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면서 지식의 생산 방식이 전혀 달라졌죠. 지식은 누가 만든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안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접속이 됐잖아요. 그 다음에 지식의 생산 방식이 달라졌죠. 지식의 유통 방식이 전혀 달라졌어요. 그래서 당연히 지식의 지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치권력이 전혀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혀 달라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대학이 가지고 있는 담장이라는 것들이 옛날에는 그 담장이 실제적인 의미와 효과가 있었지만 이제 그 담장이라는 것이 실제적인 의미와 효과는 전혀 없어졌어요. 그건 아예 상징밖에 되지 않거든요. 이제는. 왜냐하면, 지식이 유통되고 하는 방식이 전혀 달라져 있기 때문에.

이주형 기자/ 대학 밖으로 나왔다.

최진석 교수/ 대학 밖으로 나왔죠. 그리고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될 거는 대학을 우리가 긴 시간 동안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거기에 참여를 했고 그것을 운영을 했고 또 대학 안에서 많은 인재들이 배양이 됐기 때문에 대학 자체를 형이상학화 하는 경향이 있어요. 대학이라는 것이 반드시 이런 존재다. 그런데 대학이라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 또 형성된 것이거든요.

이주형 기자/ 그렇죠.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죠.

최진석 교수/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죠. 그럼 이 지금 이 형성은 뭐냐. 지금의 이 형성이라는 것은 그 이런 형식의 대학이 인간의 삶을 진화시키거나 세계와 적응하는 방식을 만들어 내는 데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그런데 이 효율성이 계속 지속 될까요? 제가 볼 때는 지금의 대학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효율성이라는 것이 그 이전에 비해서 상당히 떨어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뭐 기업이든 그 다음에 국가든 사회에서든 필요한 거는 탁월한 인재들이거든요.어떤 형식이 됐든 탁월한 인재가 배출되는 방식이 되어야 되는데,

이주형 기자/ 대학이건 아니건.

최진석 교수/ 대학이건 아니건. 대학이건 아니건 탁월한 인재가 배출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죠. 그런데 그 배양되는 탁월한 인재들이 정말 시대를 준비하는 인재들이냐. 아니면 시대를 지키는 인재들이냐. 앞으로 나아갈 인재들이냐. 지금을 고착화 시킬 인재들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 깊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 됐죠.

이주형 기자/ 알겠습니다. 그래서 건명원이 그런 역할들을 아마 해줘야 될 거 같고 단숨에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런데 건명원이라는 이름은 선생님께서 직접 지으셨다고요.

최진석 교수/ 네.

이주형 기자/ 어떤 뜻입니까? 건명원이라는 게?

최진석 교수/ 그러니까 글자 자체가 해와 달이 함께 있는 글자잖아요.

이주형 기자/ ‘명’ 자요.

최진석 교수/ ‘명’ 자가. 그러니까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면 이것을 우리가 ‘지’(知)라고 그래요. 알 지자. 그러니까 해를 해로만 보는 것은 해로 아는 거고 달을 달로만 보는 것은 달을 아는 거죠.

그런데 명과 해와 달은 해가 없으면 달이 의미가 없고 달이 없으면 해가 의미가 없죠. 해와 달은 하나의 사건이에요. 달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하나의 사건이다. 라고 볼 수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볼 수 있는 두 대립 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을 ‘명’(明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 많은 갈등들이라는 건 다 어디 있느냐면 다 한쪽에 서 있어서 다른 쪽을 비난하는 거거든요. 뭐 대부분 것들이 전부 진영 논리에 빠져 있고 그 다음에 다 이 자기편에 서서 다른 편을 욕하는 형국이 지금 진행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이 단계를 도약하려면 반드시 대립되는 두 상황을 하나의 사건으로 장악해서 이 하나의 사건으로 장악한 다음에야 제3의 새로운 빛을 볼 수 있거든요. 이것이 이제 명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대립 면의 한쪽에 서는 것이 아니라 대립 면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대립 면을 하나의 사건을 장악하는 능력을 갖자. 그래야 이 능력이 우리를 미래로 인도한다.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명 내일을 명일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이 명이라는 글자는 대립 면을 동시에 하나의 사건으로 장악하는 능력이 있는데 이 대립 면을 동시에 장악하는 이 능력이 있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죠. 우리가 왜 미래로 전진하지 못하느냐. 나아가지 못하느냐. 그럼 우리의 지성이 모두 다 대립 면 가운데 한쪽만 선으로 채택하고 반대편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지금 우리가 미래를 꿈꾼다면 반드시 대립 면이 현실임을 인정하고 이 대립 면을 동시에 장악하는 이 지적 함양을 빨리 회복해야 돼요. 그래서 저희가 이제 건명원이라는 이름을 지었고요. 그 원(苑)자도, 큰 입구 변에 쓰는 원(園)자를 지양하고 확 뚫린 들판 원자를 썼어요. 그러니까 그것도 의도적입니다. 왜냐하면 큰 정원 원자 큰 입구변자에 들어가는 원자는 뭔가 테두리가 있어 보이잖아요.

이주형 기자/ 꽉 막혀 있죠.

최진석 교수/ 그런데 이거는 그냥 들판 테두리가 없이 확 펼쳐져 있는 야성적 틀을 그 다음에 우리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 우리가 황무지 이런 것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래서 대립 면을 동시에 장악하는 능력이 있는 아마 그 이런 인재는 아마 스스로 아직 경지 정리가 안 된 것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거예요.

이주형 기자/ 그 아까 명 가지고 말씀 해주셨는데 말씀 많이 요즘 하시는 게 세계는 어떤 본질보다는 어떤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 이 부분이 굉장히 우리 사회에 시사 하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건명원 이야기에서 좀 다른 이야기 여쭤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선생님께서는 우리 지금 요즘에 그 가장 많이 언급 되시고 그 다음에 유명하신 스타 인문학 강연자 중에 한 분이시기 때문에  이건 선생님께 여쭤보는 게 가장 적절한 질문이 될 거 같은데 지금 우리 사회 사실 한 1-2년, 2-3년 전부터 인문학 열풍입니다. 진짜 열풍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인데 책이며 강연이며 심지어 기업들이 외치고 있으니까요. 이 열풍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최진석 교수/ 우리 사회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하는 것은 지금 인문학 열풍이 분다는 것은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거 아니에요.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문적 레벨의 사유가 필요하다는 거죠.

이주형 기자/ 인문적 레벨의 사유라는 건 어떤 사유입니까?

최진석 교수/ 인문적 레벨의 사유라는 것은 인문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잖아요. 그러니까 인문적 사유라는 건 인간의 동선이에요. 사실은.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는 레벨의 시선을 가져야 된다. 그게 그 좀 이렇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제가 자주 드는 예인데 지금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가 직선 위주 디자인입니까. 곡선 위주 디자인입니까. 지금 차들이 다 곡선 위주로 디자인 되어 있죠. 그 이전에는 자동차들이 대개 직선 위주로 디자인 되어 있거든요. 이것이 왜 바뀝니까.

우리나라 모범생들 대개 유체역학, 공기저항, 에너지세이빙 이런 이야기를 하겠죠. 그런데 이거는 정확한 것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직선으로 디자인 할 때도 지금 언급한 것들은 핫이슈였고 유체역학 같은 건 아주 최고봉으로 발전 했을 때였거든요. 지금 우리가 곡선으로 자동차 디자인이 직선에서 곡선으로 디자인이 바뀐다. 하는 것은 이렇게 곡선으로 디자인해야 직선으로 디자인 한 자동차보다 더 잘 팔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욕망이 직선 선호형 인간에서 곡선 선호형 인간으로 이동하는 거예요. 그런데 직선 선호형 인간에서 곡선 선호형 인간으로 이렇게 이동하는 이 흐름은 보통 사람들한테는 안 보이거든요. 사유가 지성적 레벨에 도달한 사람만 이것이 보여요. 이것을 이것이 시대 흐름이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헤겔은 철학이란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하는 거라고 했거든요. 관념으로 포착한다는 게 뭐냐. 이 레벨을 포착하는 거예요.

이 레벨을. 자, 우리가 자동차를 곡선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우리가 시작했습니까. 더 선진국에서 했습니다. 선진국에서 했죠. 이것이 이 세계를 관념으로 포착하는 능력 콘셉트를 포착하는 능력 이것이 인문적 레벨에서 사유하는 거거든요. 이 콘셉트로 포착하는 능력을 가진 나라들이 이 콘셉트로 장악한 다음에 이것으로 장르를 만들거든요. 곡선 디자인의 장르 이 장르를 만든 다음에 이 장르가 산업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뭐예요. 제품이 되죠. 이것이 힘이 되죠. 이것이 바로 선도력이고, 이 선도력을 가져야만 선진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셨으니까 다 알겠지만 우리가 학부 때 철학을 하고 나서 좀 더 철학을 하고 싶으면 가는 나라들이 대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중국 이런 나라들이죠. 대개 센 나라들이거든요. 이런 나라들이 철학적 내용은 다 컨텐스는 다르게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뭐냐 이 사람들의 사유가 철학적 단계, 인문적 단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거거든요. 이 우리가 하고 있는 창의라는 거, 상상이라는 거, 선도라는 거, 선진이라는 거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는 레벨이 바로 뭐야. 인문적 사유의 레벨이에요. 그게 인문적 레벨이에요. 지금 우리가 인문학이 열풍이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이거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내가 볼 때는 아, 중진국 레벨까지 잘 도달한 한국이 우리가 이 선진국 레벨로 올라서지 못하면 우리는 딱 여기까지다. 하는 인식이 있는 거죠.

이주형 기자/ 아, 자각하기 시작한 거군요.

최진석 교수/ 그렇죠. 자각한 거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포인트는 인문학 열풍을 주도한 그룹이 어느 그룹이에요? 기업인들이거든요. 대학은 아직까지도 인문학의 위기라고 그럽니다. 그 다음에 이 우리나라를 관리하는 관료들 아니거든요.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겠다고 한 사람들 정치인들 아니거든요. 기업인들이에요. 왜 기업인들이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가. 그건 뭐냐면 기업인들이 그래도 제일 깨어 있기 때문에 그래요. 기업인들이 제일 깨어 있어요. 기업인들이 왜 깨어 있느냐. 깨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주형 기자/ 물건을 팔아야 되니까.

최진석 교수/ 그렇죠. 이 사람들은 기업인들은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바로 자기 생사를 좌우해요. 승패를 좌우하거든요. 그런데 기업인들, 상인들 외 어떤 직업도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바로 자기 승패를 좌우하는 그룹은 없죠. 그러니까 기업인들만 항상 생과 사의 경계에 있고 이 경계에 서 있는 거 때문에 이 사람은 항상 불안하게 하고 이 불안이 그 사람을 고도로 예민하게 유지시켜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업인들이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 겁니다. 주의 있게 보시면 아시겠지만 역사를 끌고 가는 그룹들은 정치인도 아니고 관료도 아니에요. 대개는 상인들입니다.

이주형 기자/ 실크로드를 뚫은 것도 상인이고.

최진석 교수/ 그렇죠. 상인이죠. 상인들이 항상 깨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 그룹이 기업인이다. 기업인이 주도한다. 이것을 우리가 주의 있게 볼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기업인이 유지하고 있는 그 예민함 이거를 관료도 가져야 되고, 학자도 가져야 되고 군인도 가져야 되고 정치인도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또 지적을 해야 될 점은 인문학적 내용 어떤 인문학 지식 인문학 지식을 쌓는 것을 인문학을 하는 것 인문적 사유의 레벨에 도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에요. 큰 착각이에요. 왜 인문적 지식을 그렇게 많이 관리하는 대학에서 인문학이 오히려 위기인가. 그건 대학에서 인문적 레벨의 사유를 하는 것보다 인문적 레벨의 사유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남긴 지식을 습득하는데 더 몰두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인문적 지식은 많지만, 인문적 레벨의 시선을 갖거나 그 사유를 하는 것은 오히려 더 기업인보다 늦을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인문학이 아니라 그 인문학이 인문학적 지식을 통하거나 어쩌거나 간에 자기가 인문적 레벨의 시선을 갖는 것 인문적 레벨에서 활동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될 지점이에요. 아무리 인문적 지식이 많아도 인문적 레벨에서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면 그거는 헛일이죠. 헛일이죠. 또 하나의 지식을 쌓는 거에 불과하죠. 우리가 지금.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특히 철학, 인문학 레벨에서 우리가 습득하는 지식들은 다 생각의 결과들이거든요. 생각의 결과들 그런데 이 생각의 결과들을 숙지하는 것은 생각하는 거 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에요. 우리가 철학을 하고 인문학을 하는 것은 철학적 레벨에서 인문학적 레벨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갖는 건데 생각하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먼저 생각해 놓은 결과들을 숙지하다가 정작 자기는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수가 있죠.

이주형 기자/ 맞는 말씀인 거 같습니다.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말씀인 거 같고요. 다만 대학 위기 얘기를 막 하셨는데 이 부분은 안 여쭤 볼 수 없는 거 같아요. 그런데 기업 이야기도 하셨기 때문에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사실 최근 기업이 운영하는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학과제 폐지하는 이런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뭐 이런 거를 이게 초래하는 게 기초학문을 붕괴시킬 것이다. 이런 의견들도 굉장히 많고요. 그래서 한편에서는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죽어 가는데 사회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굉장히 모순적인 현상이다. 라고 하는데 그럼 이거는 어떻게 봐야 되나요? 이렇게 대학에서 인문학은 열풍인데 여기서는 오히려 기초학문이 약간 자꾸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그것도 일부 기업들이 또 주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최진석 교수/ 저는 좀 그 혼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인문학 인문학적 지식을 쌓는 거 인문학적 지식을 쌓는 사람들을 아무리 많이 배양해봐야 인문적 사유를 할 능력이 없으면 또 하나의 고집쟁이를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 만들어 내는 결과 밖에 안 나옵니다.

이주형 기자/ 조금 종합적인 차원에서 다각도적인 차원에서 접근 해봐야 될 문제라는?

최진석 교수/ 그렇죠. 그러니까 그 여기에 인문학과를 폐지하느냐. 축소하느냐 늘리느냐 줄이느냐 이 문제보다 더 먼저 우리가 논의해야 될 것은 우리가 지금 인문학과 안에서 인문적 사유의 결과들을 주입시키는 데만 노력을 했느냐. 아니면 그 주입이 이 학생을 그 결과들이 그 우리가 주입시키려는 그 사유의 결과들이 생산되는 그 사유의 높이로 우리를 끌고 가려고 했느냐. 하는 것을 다시 반성을 해봐야 돼요. 그러니까 인문학 열풍이 아무리 많이 불어도 그 열풍이 인문적 레벨의 시선, 인문적 레벨의 활동력 이런 것을 보장하지 않는 인문학 열풍은 이렇게 그렇게 큰 효과가 안 날 수 있어요.
 
이주형 기자/ 삼성 사장단 강의를 두 번 하셨죠?

최진석 교수/ 네.

이주형 기자/ 한 번 했다가 그 다음에 또 아마 또 요청이 왔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최진석 교수/ 네. 맞습니다.    

이주형 기자/ 삼성 사장들이 도대체 어떤 부분에 그렇게 매력을 느껴서 두 번씩이나 강의 요청을 했습니까? 뭐라고 들으셨습니까? 그 분들이 원하는 게 도대체 뭐였습니까?

최진석 교수/ 그 분들이 원하는 게 저는 뭔지 모르죠. 저는 이제 가서 그 노자의 리더십, 노자의 세계관 이런 것을 좀 현대와 접목 시켜서 이야기를 했죠. 왜냐하면 아무래도 현대 추세라는 거는 현대라는 건 사실 단순화해서 이야기를 하면 관계적 세계관의 돌출이거든요. 관계적 세계관. 그래서 이 관계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리더십이랄지 어떤 그 어떤 경영까지는 이야기를 제가 못했지만 어떤 조직이랄지 하는 것들은 어때야 될 거 같다. 하는 것을 이야기 했죠. 그런데 어떤 현대 방향에 대해서 그 분들이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제 이야기를 좀 관심 있게 들으셨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야기 하면 꼭 내 이야기만 관심을 가지신 거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매달 다른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여러 교수님들 여러 전문가들 가운데 그냥 제가 한 부분을 차지했을 뿐이죠.

이주형 기자/ 아마 그 조선일보에서 그렇게 리드를 뽑았던 거 같은데 '리더는 질문이다.'
                
최진석 교수/ 네. 질문이죠.

이주형 기자/ 그 내용은 어떤 말씀이십니까?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최진석 교수/ 그 리더는 끌고 가는 사람이 리더잖아요. 끌 고가는 사람은 앞으로 세계가 어떨 것이다. 하는 것에 대한 어떤 인식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앞에,

이주형 기자/ 변화의 흐름이 어디로 가고 있나 봐야겠죠.

최진석 교수/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인식해야 되죠. 그런데 이런 앞으로의 것을 인식하려는 시도는 질문을 통해서 밖에 나올 수 없어요. 대답이라는 것은 대답이 여러 유형이 있지만 단순화해서 우리가 이야기를 하면 대답이라는 건 이미 있는 지식을 먹어가지고 누가 요구할 때 그대로 다시 뱉어내는 거거든요. 이때 승부는 누가 더 많이 뱉어내느냐. 누가 더 정확히 뱉어 내느냐. 이것이 결정하잖아요. 그런데 대답할 때는 대답한다는 거는 뭐냐 이미 있는 것을 다루는 일이에요. 이미 있는 일을.

그런데 리더는 이미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벌어지지 않은 판, 아직 오지 않은 것의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는 사람이어야 리더잖아요. 그런데 이 리더는 당연히 뭐야. 이미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해야 되는 거죠. 질문을 그런데 질문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질문이라는 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답은 쉬워요. 왜 그러냐면 대답은 그냥 기능이기 때문에. 그런데 질문은 하려고 결심해도 잘 안 되는 게 질문이에요. 왜냐하면, 이건 기능이 아니라 인격이거든요.

질문할 수 있는 인격으로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질문을 절대 못합니다.

이주형 기자/ 그 인격이라는 말은 사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최진석 교수/ 무슨 말이냐면 질문 하려면 일단 궁금해야 되잖아요. 그 다음에 호기심이 있어야 되잖아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없는 질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죠. 그런데 이 궁금증과 호기심은 우리 모두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만 있는 거죠. 이 궁금증과 호기심은 나한테만 있는 거거든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자기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 나오는 일 이것이 질문이거든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궁금증과 호기심이 자기를 자기로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하는 주체는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주체 그런데 대답하는 주체는 자기 주인 자리를 이미 있는 지식이나 이론한테 양보해 놓은 상태에요. 대답할 때 자기는 자기 주인으로 존재하지 않아요. 지식과 이론에 어떤 대행자,

이주형 기자/ 전달자.

최진석 교수/ 전달자. 지식이나 이론이 머물다가는 중간역 정도로 자기가 존재하죠. 이때 자기는 사실 지식이나 이론에 의해서 소외되어 있는 상태예요.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을 때 이때만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거든요. 그러니까 질문하지 못한다. 그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궁금증과 호기심이 없다는 뜻이고 궁금증과 호기심이 없다는 뜻은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독립적 주체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회가 질문이 많은 사회냐. 대답이 많은 사회냐. 대답이 많은 사회다. 그럼 독립적 주체들이 성장하지 못했다. 질문이 많다. 그럼 아, 이건 독립적 주체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걸 반영하는 거거든요.

이주형 기자/ 그런데 우리가 흔히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질문을 많이 하면 왜 이렇게 말이 많냐고 하고 대답을 잘해야 된다. 그런 사람을 요구해 왔잖아요. 지금까지.

최진석 교수/ 그런데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이제는 아니다. 이거죠. 왜, 우리가 지금 창의적이지 않고는 더 잘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잖아요. 상상력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 인정하잖아요. 창의력과 상상력이 만들어지려면 창의력과 상상력이라는 게 뭐예요? 창의력과 상상력은 발휘하는 게 아니거든요. 만약 발휘하는 거다. 그럼 내일부터라도 발휘해버리면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창의력과 상상력은 사실 발휘 되는 거예요. 어떤 창의적 결과들도 그 창의적 결과들을 발휘한 사람들이 나 이거 창의적으로 해야 되겠다. 내가 이거 한 것은 창의다. 하는 의식 속에 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냥 자기 내면의 욕구를 철저한 몰입 속에서 발휘할 뿐이에요. 그러니까 창의력이라는 것은 발휘되는 거거든요. 발휘된다. 하는 것은 뭐냐면 인격적인 문제라는 뜻이에요. 창의력이 발휘되는 인격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창의력이 나타날 수가 없죠. 우리가 지금 사회가 우리 사회가 창의력과 상상력이 부족하다. 그럼 창의력과 상상력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 할 인격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그런 인격들이 준비되지 않았다. 하는 말은 뭐냐면 주체들이 독립적 주체로 되어 있지 않다. 모두 다 종속적 주체들이다. 종속적 주체들이란 뭐예요? 다 이미 있는 신념, 이미 있는 이념, 이미 있는 기준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지. 이념을 생산하려는 배짱, 새로운 신념을 생산하려는 배짱, 새로운 기준을 생산하려는 배짱들은 아직 발휘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잖아요.

이주형 기자/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께서 그런 어떤 정치권이나 우리 사회가 이렇게 이데올로기로 양분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그런 어떤 생각의 틀을 가지고 분석을 하셨죠.

최진석 교수/ 그렇죠. 지금 이데올로기는 양분되어 있는 것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지성적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래요.

이주형 기자/ 우리 사회 지성적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렇다?

최진석 교수/ 그렇죠. 왜 그러냐면 지성이라는 것은 있는 왜 그러냐면 이 우리가 사회가 변화한다. 하는 것은 기존의 문법이 새로운 문법으로 대체 된다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사회 발전이라는 것은 기존에 있는 문법이 새로운 문법으로 계속 대체 되면서 나아가야 돼요. 그렇죠? 그런데 이 기존에 믿는 문법들이 이 문법들이 자기가 생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새로운 문법으로 이 재창조해 내는 능력이 동력이 없어요. 그러니까 있는 것만 가지고 계속 진영 다툼만 하고 있거든요.

지금 우리나라에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것이 역사가 몇 년이 됐어요? 1950년 해방 후부터 시작된 거 아닙니까. 해방 후부터의 이 이념 갈등이 2015년까지 계속 되고 있다. 그거는 어떤 이론을 갖다 대도 이거는 문제가 있는 거예요. 세계가 얼마나 달라졌는데. 세계를 지배하는 상층의 이데올로기는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다. 이거는 뭐야. 국가의 방향과 나아가야 될 방향과 방향이라고 주장되는 이데올로기와 그 다음에 현실적인 변화와 이것이 일치되지 않고 있죠. 이거 일치되지 않으면 여기서는 극단적인 비효율이 발생될 수밖에 없어요.

이 극단적인 비효율이 뭐로 이어지냐. 국력의 쇠퇴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념 갈등이라는 건 뭐냐면 대립 면의 한쪽에 서서 그것도 뭐예요. 그것도 이미 시체가 된 대립 면이에요. 대립 면에 한쪽에 서서 그 한쪽만을 붙들고 자기가 삶을 잘 영위해 가겠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 지성적 레벨과 대립된 두 면을 장악해서 새로운 문법을 향해서 나아가려는 이 지성적 레벨의 이 차이는 상당히 크거든요. 상당히 크거든요. 지금 우리가 우리 사회가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거 이거는 바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답답함 때문에 그럴 거예요. 이 답답함 때문에 그래서 이거 때문에 지금 저희들이 건명원을 지금 세워놨고요.

이주형 기자/ 재미있는 말씀 요즘 하시는 것 중에 뭐 같은 맥락인 거 같습니다. 선생님 우리 건명원 홈페이지 메시지에 보면 오직 자신에 집중해라. 이게 아까 조금 전에 말씀하신 거랑 맞닥뜨리는 거 같고요.

최진석 교수/ 네.

이주형 기자/ 그 다음에 배우는 목적은 자기표현이다. 뭐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요즘 사실 공부 시대 아닙니까. 뭐 창의성도 공부해서 하라는 시대니까. 창의성 공부 공부 하는데 오히려 선생님께서는 공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요즘에 선포하고 계세요. 어떤 의미인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최진석 교수/ 네. 지금 같은 공부하는 방식으로는 공부 할 필요 없어요. 왜 그러냐면 지금 우리가 공부한다고 배우고 있는 것들이요. 다 남이 한 말이에요. 남이 한 말.

이주형 기자/ 공부가 원래 그런 거 아닙니까.

최진석 교수/ 남이 한 말.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공부하죠. 공부하는 것을 우리가 배운다고 하잖아요. 배우는 거는 누가 가르쳐 놓은 거 누가 표현해 놓은 걸 배우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가 배우는 것이 배우는 그 현장에는 가르치는 거 표현해 놓은 것과 배우는 것이 중첩되어 있어요. 그렇죠. 그런데 배움에만 빠지면 자기는 자기 스스로 표현할 능력이 거세됩니다. 약화 돼요.그러니까 배우지 마라. 그 소리는 무식해져라 그 소리가 아니라 당신이 배우고 있는 그 내용은 누군가가 자기를 표현해 낸 거다. 다른 사람이 표현해 낸 그 자기를 습득하는 것이 당신이 할 일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을 표현하는 그 길을 찾는 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책 속에서 길을 찾잖아요. 책 속에 어디 길이 있겠어요. 책을 쓴 사람 그 사람이 길이 있어요. 그 사람의 길과 내 길이 일치할 수가 있죠. 그런데 책을 읽을 때 핵심은 뭐냐면 내 길을 만드는데 소소한 힌트를 얻는 거예요. 그런데 내 길을 만드는데 소소한 힌트를 얻는다는 이 자세를 잃고 그냥 그 책을 숙지하고 그 책대로 하는 것 이것이 배우는 것이라면 그런 배움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주형 기자/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면 우리보다는 서구가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은 늘 자기표현 하고 이게 기본적으로 동양적 인성이라는 게 뭔가 나서 발화하고 이런 거에 대해서 크게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자기표현이 아주 능숙하잖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 보면 우리가 굉장히 불리한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얼핏 들기도 합니다. 사실.

최진석 교수/ 제가 이것에 대해서 이 질문에 대해서 제가 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운데 그것이 동서양의 차이가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서양 사람들이 대개 자기를 잘 표현하지만 그 표현하면서 이루어진 그 성숙으로 이 사람들 사회 매너 굉장히 좋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매너 좋은 사람들 많고 또 그렇지만 우리도 우리를 표현하는 이 동력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점잖아야 되지. 자기를 표현하는 동력은 없는 상태로 점잖으면 이 서양의 점잖음을 따라가기 어렵게 돼 버려요.

그러니까 이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을 가져야 됩니다. 지금 제가 이 대목에서 드릴 말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것에 대한 반성이 제가 처음이 아니라 신채호 선생부터 있었어요. 그 조선 시대 장유라는 학자도 있었고. 신채호 선생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우리 조선은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못하고 석가의 조선이 되려하고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의 조선이 되려한다. 무슨 주의가 들어오면 조선의 주의가 되지 못하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라 그래요. 그래서 신채호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요.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한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것, 기준, 신념, 이념 이런 것들이 전부 외부에서 와가지고 우리가 평생을 그것들을 수행하고 집행하고 지키고 하는 것으로만 긴 세월을 살았고 또 그렇게 살아서 우리가 이 정도 번영을 또 이뤘어요.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계속 가가지고는 이 번영이라는 것이 순간적이다. 하는 것은 우리가 긴 논의를 거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알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틀리냐는 논쟁의 시간을 버릴 때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야 될 길이 어디인가. 하는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돼요.

지금 이 한가하게 이미 있는 이론을 가지고 맞네. 틀리네 하고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할 필요가 없어요. 그 논쟁이랄지 그 싸움이라는 것이 몇십 년간 해도 사회를 비효율적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인 것이 없어요. 지금은 우리가 이 단계까지 우리가 이렇게 잘 왔으면 이제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이 절박한 인식이 공유되는 것이 지금 우리한테는 시급한 일이다. 라고 보는 겁니다.

이주형 기자/ 알겠습니다. 이제 슬슬 좀 마무리를 해야 될 시간이 온 거 같은데요. 한두 가지만 더 여쭤 보겠습니다. 선생님 노자를 전공하시기도 했지만, 우리는 사실 어떻게 보면 공자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지 아까도 조금 전에 신채호 선생님 말씀하셨지만 그런데 선생님은 공자가 아니라 노자의 철학이 한국 사회에 더 오히려 큰 지금 이슈가 울림이 있다. 있어야 한다. 인식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에 관해서 잠깐만 말씀을 해주십시오.

최진석 교수/ 저는 그 궁극적으로는 우리한테는 공자도 필요 없고 노자도 필요 없어요. 우리한테는 우리가 우리 길을 가는데 헌신해야 될 우리의 자세만 있어요. 우리의 길만 있죠. 그런데 우리가 좀 참고를 해본다면 공자 사상보다는 노자 사상이 현대적 추세에 맞는다는 거예요. 물론 근대 모더니즘에서는 노자보다는 공자가 훨씬 적극적이었고 긍정적이었죠. 그때 노자는 할 역할이 별로 없어요. 그 시대를 비판하거나 자극을 주거나 하는 역할 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현대라는 이 시점에서는 이 추세에서는 공자보다는 노자가 더 맞는다고 말하는 거죠. 그것이 왜 그러냐면 공자는 기본적으로 본질주의적 세계관이에요. 노자는 기본적으로 관계적 세계관이에요.

그러니까 근대와 현대 차이점은 근대는 실체론이잖아요. 철학적으로 보면 현대는 관계적 세계관이고 유통물리학과 양자역학으로 우리가 대비할 수 있잖아요. 그 다음에 근대가 근대는 집단을 매개로 해서 힘을 발휘했다면 집단을 매개로 힘을 발휘한 구조 자체가 이미 디지털 시대로 들어오면서 깨졌어요.

이주형 기자/ 개인적 창의성이,

최진석 교수/ 그렇죠. 지금은 개별적인 존재들이 자발성을 발휘해서 이 자발성들이 자율적 통합을 이뤄내는 방식으로 이동을 하고 있거든요. 이 동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이동의 맥락에서 그런 것에 줄 수 있는 메시지가 공자보다는 노자에 더 많다. 하는 거죠. 물론 그 물론 결국에는 노자도 우리가 버려야겠지만 우리가 지금 우리 길을 건설하는데 조금 힌트를 얻는 어떤 이전에 있었던 지혜가 필요하다면 공자보다는 노자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어떤 철학도 모든 시대에 다 유용한 철학은 이 시대에 존재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이주형 기자/ 우리는 그런데 그거를 굉장히 바라고 그렇다고 믿고 있는 부분이 큰데.

최진석 교수/ 그렇죠. 그건 이 시대에 존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이 세계에 있어 본 적이 없어요. 공자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에요. 이 넓은 범위는 공자 범위가 아니죠. 노자도 그래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예요. 그런데 공자의 여기에서 여기까지는 근대에 매우 맞았고 노자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현대에 매우 맞았다. 그런데 이 여기까지 여기까지도 우리가 형이상학화해서 받들어야 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용하고 버려야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주형 기자/ 정리하는 의미에서 한번 말씀해 주시면 그래서 어떤 공자적인 시각이죠. 어떻게 보면 규범이 있고 예가 있고 해서 남들이 봐야 하는 대로 우리가 보는 세상 대신 노자는 보여지는 대로 그 자체로 봐야 되는 그런 측면 선생님께서 즉 보여지는 대로 이 세상 지금 현대로 봤을 때 이 시대에 자이트가이스트라고 해야 되나요. 시대정신 이걸 선생님께서는 뭐로 좀 요약을 하시는지. 물론 지금까지 다 해주신 말씀인 거 같아요. 한 번만 더 짧게 해주신다면.

최진석 교수/ 저는 이 세계 모두 따라야 될 어떤 시대정신은 나한테는 의미가 없고요.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한 단계 뛰어 넘어야 된다. 그것을 우리가 좀 더 이렇게 좀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그건 선진화다.

이주형 기자/ 선진화.

최진석 교수/ 네.

이주형 기자/ 그런데 선진화라는 말이 보면 어감 상 옛날 80년대 많이 써서 그런지 썩 좋지는 않습니다만.

최진석 교수/ 그렇죠. 어감이 썩 좋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선진이라는 것이 사실 독립적 독립과 관련돼요. 선진 하려면 선도력이 있어야 되거든요. 앞으로. 이 독립된 상태가 아니고는 선도할 수가 없죠. 선도할 수 없죠.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모든 분야의 우리의 삶의 형식이라는 것이 사실 다 이미 있는 것들을 따라서 하는 것으로 우리가 채워졌잖아요.

그러니까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우리 길을 열어야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기 때문에 열어야만 된다. 그 열어야만 되는 거 단어를 저는 지금 제 머릿속에서는 선진화라는 단어 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죠. 다른 더 멋있는 단어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 선진화라는 단어가 지금은 제일 쉽게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철학을 하는 사람이 국가 발전을 이야기 한다. 라든지 선진을 이야기 한다. 라든지 이거는 굉장히 철학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비칠 수가 있죠.

이주형 기자/ 맞습니다. 더구나 동양철학하고 —하시는 분이 이런 말씀하시니까 굉장히 의외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의외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최진석 교수/ 그런데 어떤 단계에서는 어떤 나라에서는 어떤 지역에서는 어떤 지역에서는 그 사람들이 봐야 되는 진실 그 사람들이 가장 높은 차원에서 봐야 되는 어떤 진실이 이런 아무리 철학적인 사유에서 보더라도 국가 발전일 수가 있고 선진화일 수가 있어요. 저는 그래서 어떤 보편적인 어떤 철학적 사유의 높이에서 저는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역사와 내 피가 흐르고 있는 이 대한민국 안에서 내 사유의 높이를 가장 높은 곳까지 끌어올려보면 그건 역시 선진화더라. 그렇죠.

이주형 기자/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건명원 이제 막 시작했는데 여기를 졸업한 학생들이 어떤 학생들이 됐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주실 수 있습니까.

최진석 교수/ 저는 그 학생들한테 좀 의외로 들릴 수 있겠지만 어떤 기대도 품지 않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내가 기대를 품는 그 내용에 학생들이 갇히지 않기를 기대해요. 다만 내용이 채워지지 아직 채워지지 않은 어떤 힘, 돌파력, 진취적 기상 그 다음에 안정적인 데서 안주하는 것보다 불안전한 속으로 자기를 끌고 들어가는 어떤 힘 이런 것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런 것만 있으면 그 학생이 졸업 후에 자기 앞에 다가오는 그 세계를 그 시선으로 읽어서 그 힘을 발휘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어떤 힘을 갖게 되기를 동력을 갖게 되기만을 기대할 뿐 나가서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은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주형 기자/ 알겠습니다. 오랜 시간 고맙습니다.

최진석 교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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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최진석 교수의 언어는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물론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 대목도 없지 않았는데요, 아마도 좀 더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최 교수의 수사학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건명원 교수이기도한 카이스트의 뇌과학자 김대식의 교수의 말대로 언어의 해상도는 인식의 해상도 보다 높지 않기 때문에 언어적 소통이란 쉽지 않지요?

청취자 여러분이 최 교수가 말하는 인문적 사유의 레벨로 발돋움하는 새 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디오 취재파일 마칩니다. 지금까지 기획 심석태, 기술 이병주, 진행 이주형이었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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