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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진작가가 된 발레리노, BAKI 박귀섭

[취재파일] 사진작가가 된 발레리노, BAKI 박귀섭
처음 이 사진을 보고 놀란 건, 사진 자체보다 등장 인물들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마추진 이 사진의 모델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영철, 김기완, 한나래…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들 아닌가. 국립 발레단 무용수들이 여럿 등장하다니.. 그리고 찍은 사람을 봤더니 '박귀섭', 많이 들어봤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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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스트 박귀섭, 포토그래퍼 BAKI (▶ 사진작가가 된 발레리노…몸으로 표현한 예술)

박귀섭, 포털 뉴스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치면, 국립발레단 시절 기사가 주루룩 뜬다. 그는 발레리노였다. 2006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고, 2007년 뉴욕 국제 발레대회에서 동상을 받기도 했다. (그해엔 유독 한국인 수상자가 많아서 따로 8뉴스에 기사를 내기도 했다.)  발레단에서는 '솔리스트'였는데, '솔리스트'는 수석무용수들이 주로 맡는 작품의 남녀 주인공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잘 뛰고, 잘 돌고 하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제 키에 제가 할 수는 있는 역할을 많이 했었죠."

그러나 귀섭 씨는 2010년, 최태지 단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발레단을 그만두고 사진으로 방향을 바꿨다.  왜 '유망주'로 잘 나가던 시점에 새로운 길을 가게 됐을까.

"처음엔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런데 찍어보니, 발레와는 다르게 상상을 담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머리 속에 있는 걸 그대로 펼칠 수 있더라고요. 발레는 안무를 받고, 똑 같은 반복 훈련을 해서 무대에 올라가잖아요. 물론 등장인물에 제 성격이 드러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만들어져야 하죠. 그런데 사진은 제가 담고 싶은 걸 마음대로 담을 수 있어서, 발레보다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사진을 정식으로 전공한 건 아니다. 논현동의 사진 스튜디오에서 무작정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발레를 13년 정도 했어요. 처음은 다 어려운 것 같아요. 미술을 하다가 고등학교 때 발레를 시작했을 때도 물론 어려웠었고요. 처음엔 흥미롭지만, 어느 정도 가면 무언가를 계속 뛰어넘어야 하는 순간들이 오니까요.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전공도 아니고 인맥도 없어서 더 많이 힘들었어요. 무시도 당했고요. 어디 가서 포트폴리오를 냈을 때, 한예종 나왔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 기대를 하는데, 무용과라고 하면 상대가 당황해 하더라고요."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았을까.

"부모님은 무용을 계속해서 선생님이 되길 원하셨죠. 특히 국립단체를 그만두는 게 마음에 걸리셨나봐요. 그리고 왜 이제 와서 또 처음부터 다시 하려고 하느냐고 하셨어요.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무용도 처음 시작했을 땐 부모님이 반대하셨거든요."      

그렇게 걱정과 반대를 뒤로 하고, 박귀섭 씨는 사진을 업으로 삼고 살고 있다. 광고와 잡지 화보 같은 상업사진과 자신만의 작품 사진을 차곡차곡 찍고 있다. (귀섭 씨의 사진을 보시려면 여기 http://www.a-apollon.com/ 로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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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없던 발레 사진

귀섭 씨는 특히 무용 사진에 강하다. '백조의 호수'와 '교향곡 7번' 등 지난 해 국립발레단의 모든 공연 포스터도 귀섭 씨의 작품이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영철 씨는 이렇게 말한다.
 
"발레는 움직임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지휘자들도 발레 음악 지휘를 어려워하세요. 아무리 지휘자로서 출중하시더라도 발레를 모르고 발레 지휘를 하시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사진작가들도 아무리 훌륭한 분들이 오셔서 사진을 찍어도 무용수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거든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는 동작인데, 저희가 보기엔 마음에 들지 않는 동작이 찍히는 경우도 있고요. 저희는 프로 무용수인데, 그런 모습이 외부에 나가는 건 부끄럽잖아요.

그런데 귀섭 씨가 찍을 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죠. 저희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없는 연습을 통해 만들어낸 동작을 한 방에 잡아내거든요.

또 저희는 젊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서라도 귀섭 씨 작업에 참여를 하고 싶어요. 또 예술적인 면에서도요.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200% 아니, 그 이상으로 마음에 들거든요. 지금까지 이런 느낌의 사진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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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섭 씨의 최근 연작 '쉐도우'다. 무용수들의 몸과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쉐도우' 시리즈는 모두 15작품을 계획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5작품이 완성됐다. 그 중 나무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러시아 출판사와 미국 음반사에 책과 음반 표지용으로 최근 계약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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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도우는 보는 사람들이 그 날의 감정과 본인이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는 사진, 한 번 더 보고 싶은 사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찍었어요. 그리고 무용수에 대해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접근해 보고 싶었어요. 무용수에 대한 고정관념,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죠." 

귀섭 씨는 "머릿속에서 너무 많이 흘러나와서 그 때 그 때마다 생각나는 걸 적어 놓고 실험해보는 편"이라고 한다. 변하지 않는 건 하나, '사람'으로 표현하는 걸 하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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