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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민 건강'을 지킨다?

[취재파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민 건강'을 지킨다?
최근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억대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습니다. 의사협회는 원격의료 도입 등 이른바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면서 집단 휴업을 했고, 한의사협회는 천연물신약의 처방권을 제한하는 정책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열기 위해 역시 집단 휴업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더해, 당시 의사협회장은 공정위의 고발에 따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뒤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안에 공정거래법이 적용되는 것일까요.

공정거래법 26조 1항 3호를 보면 '사업자 단체는 구성원의 사업내용이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라고 정해져 있고, 이를 위반하면 징역 2년까지 선고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업한 의사나 한의사들은 저마다 하나의 사업자이기 때문에 진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알아서 결정해야 하는데, 협회가 여기에 개입해서 집단 휴업을 주도하면 안 된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의사나 한의사들은 파업하면 안 되나요?" 공정위 담당 부서에서는 그게 아니라 회원들에게 집회에 불참하면 투쟁지원금 명목으로 돈을 걷겠다고 알리고, 지역이나 병원마다 몇 명씩 나오라는 식으로 강요한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현재 의사협회의 행정소송에서는 그와 같은 강요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가 다툼이 되고 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과연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공정거래법 1조의 일부입니다) 하는 공정거래법으로 이 일을 다루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협회원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집단 휴업이 아닌데도 오히려 협회가 의사나 한의사들의 자유로운 영업행위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1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의약분업을 앞두고 의료수가를 현실화해달라며 의사협회가 집단 휴업을 했었는데, 역시 제재를 받았고, 대법원까지 갔던 행정소송은 결국 공정위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다만 이 판결에 남아있는 대법관 5명의 반대의견이 눈길을 끕니다.

일반적으로 여기에 해당되는 행위 유형으로는 경쟁관계에 있는 사업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사업자단체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가격, 고객, 설비, 개업, 영업방법 등에 대한 제한 등을 들 수 있는데, 대한의사협회가 의사대회에 다수의 의사들이 참가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구성사업자인 의사들에게 휴업을 하도록 통보한 이 사건에서, 대한의사협회의 행위의 목적은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항의에 있는 것이지 구성사업자인 의사들 사이의 경쟁을 제한하여 이윤을 더 얻겠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므로, 위 '부당성'의 판단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항의의사를 표시하는 과정에서 구성사업자 상당수로 하여금 영업의 기회를 포기하게 하였다는 점을 들어 바로 대한의사협회의 행위를 구성사업자 사이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로서 허용될 수 없는 행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고 (대법원 2003. 2. 20. 선고 2001두5347 전원합의체 판결)

미국법에는 노어-페닝턴 면책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60년대 화물을 운송할 때 트럭보다 열차를 더 많이 이용해달라며 홍보활동을 벌인 것이 시장을 독점하려는 시도라며 우리로 치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소송이 벌어졌는데, 이 때 미국 연방대법원은 "(독점방지법)의 금지규정은 사업세계(business world)를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에 정치 영역(political arena)에서 적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라면서 철도회사 손을 들어줬습니다.

앞서 인용한 우리 대법원의 반대의견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단적인 행동을 두고 집단행동 자체를 문제 삼아 담합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단체를 만들고, 그 단체가 집단행동을 통해 의견을 내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강압이나 불합리한 행위는 그에 맞는 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들의 집단 휴업으로 응급환자가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휴업한 의사 개개인을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지 않고 의사협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만으로 처벌하려 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은 물론 의료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유죄를 받고 의사 면허가 박탈된 2000년의 의사협회장과 달리, 2014년 의사협회장은 의사 면허만 있을 뿐 실제 의료행위는 하지 않아서 의료법으로는 '효과적인' 제재를 할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은 그저 저 혼자만의 상상이길 바랍니다.

한의사협회에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보도자료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2014년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휴업에 이어 이번에도 국민의 건강 및 보건에 영향을 미치는 유사한 형태의 집단휴업 행위에 대해 시정조치 함. 앞으로도 공정위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각종 사업자 단체의 법 위반 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하여, 엄정하게 대처할 것임.

그리고 다시, 공정거래법 1조에 나와 있는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라는 조항을 되새겨 봅니다. 흔히 '경제 검찰'이라고 부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민 건강과 보건을 보호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혹시 검찰 보도자료를 잘못 받았던 것은 아닌지 제목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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