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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945년 첫 핵실험과 함께 '인류세(Anthropocene)'가 시작됐다"

[취재파일] "1945년 첫 핵실험과 함께 '인류세(Anthropocene)'가 시작됐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 신생대 제3기, 제4기.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 홀로세. 이 같은 지질시대 즉, 지구역사는 지질학적으로 큰 변동이 있거나 생물학적으로 큰 변화나 특정 생물의 멸종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공룡이 멸종한 것을 기준으로 멸종 이전을 중생대 백악기, 멸종 이후를 신생대 제3기 팔레오세로 나눈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인류는 현재 지질시대 가운데 마지막인 신생대 제4기 홀로세(Holocene Epoch, ‘충적세(沖積世)’ 또는 ‘현세(現世)’라고도 한다)에 살고 있다. 홀로세는 지금부터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부터 현재까지 인류 문명이 시작되고 급격하게 발달한 시기를 말한다.
 
성층권 오존층이 파괴되는 메커니즘을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네덜란드의 대기 화학자 폴 크루첸(Paul J. Crutzen)과 미국 미시간대학교 유진 스토머(Eugene F. Stoermer) 교수는 지난 2000년 국제지권생물권연구(IGBP, Internation Geosphere-Biosphere Programme) 뉴스레터를 통해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예전과 다른 새로운 지질시대가 시작됐다는 주장을 했다. 이들은 새로운 지질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이름 붙였다(Crutzen and Stoermer, 2000; IGBP, 2010).
 
지금까지의 지질시대와 다르게 인류가 지구 전체 시스템과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아직은 비공식적인 지질시대지만 최근 들어 인류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류가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을 주목한 것은 크루첸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외교관이었던 조지 퍼킨스 마쉬(Gerge Perkins Marsh, 1801~1882)는 1864년 출판한 ‘인간과 자연(Man and Nature)’이라는 책과 1874년에 출판한 ‘인간 활동으로 변형된 지구(The Earth as Modified by Human Action)'에서 인간 활동이 자연을 변형시키고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IGBP, 2010).
 
1873년 이탈리아의 가톨릭 성직자이자 지질학자인 안토니오 스토파니(Antonio Stoppani, 1824~1891)는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인류의 힘과 영향력이 막대함을 인식하고 '인류시대(Anthropozoic era)'에 들어섰다는 주장을 했지만 당시에는 그의 주장이 비과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Wikipedia).
 
그 이후에도 여러 사람들이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지구환경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을 했지만 결정적으로 이런 생각이 널리 퍼진 것은 지난 2000년 크루첸의 인류세 주장 이후다.
 
그렇다면 인류세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으로 봐야할까?
 
당초 크루첸은 18세기 후반부터 인류세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극지방의 빙하에 갇혀 있던 공기를 분석한 결과 18세기 후반부터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농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인류세의 출발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업혁명부터를 인류세 출발로 본 것으로 영국의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가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시기(1784년)와 대략 일치한다(Crutzen, 2002).
 
최근 크루첸을 포함한 12개국 과학자 26명은 본격적으로 인류세가 시작된 것은 20세기 중반으로 보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층서학적으로 타당하다는 논문을 학회에 제출했다(Zalasiewicz et al, 2015). 학자들은 특히 1945년 7월 16일을 지구 역사의 새로운 시작인 인류세의 출발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1945년 7월 16일은 미국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Alamorgordo) 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이 실시된 날이다. 공룡 멸종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핵실험을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첫 핵실험 이후 1988년까지 인류는 평균적으로 9.6일에 한번 꼴로 핵실험을 실시했다. 과거 지질시대에는 없던 세슘(137Cs)과 플루토늄(239+240Pu) 같은 인공 방사성 물질이 급증한 시기다.
 
연구팀은 이 시기를 홀로세와는 구분되는 새로운 지질시대의 시작으로 본 것이다. 핵실험 이전의 인류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고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았지만 시기적으로 핵실험 이후부터는 인류의 힘이 막강해졌을 뿐 아니라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막강해진 것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중반은 핵실험만 시작한 시기가 아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인간의 힘이 급격하게 커졌을 뿐 아니라 지구환경측면에서도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 등 인간 활동의 영향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다.
 
스웨덴과 호주 공동연구팀이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기인 1750년부터 2000년까지의 사회·경제적인 지표 12개(세계 인구수, 전 세계 국내총생산, 해외 직접투자액, 도시 인구수, 에너지 사용량, 비료 소비량, 거대 댐 건설 개수, 물 사용량, 종이 생산량, 차량 생산 대수, 전화 보급량, 해외여행자수)와 지구환경 지표 12개(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아산화질소 농도, 메탄 농도, 성층권 오존층 파괴, 지표 온도, 해양 산성화 정도, 어획량, 새우 양식량, 해안 질소 유입량, 열대우림 파괴, 개간 토지 비율, 생물다양성 훼손)의 연도별 변화를 분석한 결과 거의 모든 지표가 1950년대부터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Steffen et al, 2015).
 
세계적으로 인구가 급증하고 경제성장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지구환경 또한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1950년대인 것이다. 1950년대가 인류의 힘과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진 이른바 ‘거대 가속(Great Acceleration)' 시기인 것이다. 연구팀은 특히 1950년대 이후 지구환경 지표의 증가 폭이 과거 1만 2000년 홀로세 기간 동안에 나타났던 자연 변동 범위를 넘어선 것은 1950년대부터 이미 홀로세와는 다른 새로운 지질시대가 시작된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경제적인 지표와 지구환경 지표 하나씩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출처; Steffen et al, 2015).
 
취파_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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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역사상 단순히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 싸우고 파괴하고 심지어 자연 변동까지 통제하려고 시도한 생명체는 현재의 인간이 유일하다. 그만큼 인류가 지구 역사에 미치는 영향,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시기가 된 것이다.
 
훗날 지질시대 이름을 정하는 '국제층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가 현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이름을 붙일지 아니면 다른 이름을 붙일지, 아니면 계속해서 홀로세라고 부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질학적인 변동이나 생물학적인 사건으로 지질시대를 구분했다면 지금은 인류가 새로운 지질시대를 만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인류의 활동과 생각이 지구의 역사와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참고문헌>
 
* Paul J. Crutzen and Eugene F. Stoermer, 2000: The 'Anthropocene'. IGBP Newsletter 41:12.
* IGBP, 2010; The Anthropocene : Have we entered the "Anthropocene"? Global Change.
http://www.igbp.net/news/opinion/opinion/haveweenteredtheanthropocene.5.d8b4c3c12bf3be638a8000578.html
* Paul J. Crutzen, 2002: Geology of mankind-The Anthropocene, Nature 415:23.
* Jan Zalasiewicz, Colin N. Waters, Mark Williams, Anthony D. Barnosky, Alejandro Cearreta, Paul Crutzen, Erle Ellis, Michael A. Ellis, Ian J. Fairchild, Jacques Grinevald, Peter K. Haff, Irka Hajdas, Reinhold Leinfelder, John McNeill, Eric O. Odada, Clement Poirier, Daniel Richter, Will Steffen, Colin Summerhayes, James P.M. Syvitski, Davor Vidas, Michael Wagreich, Scott L. Wing, Alexander P. Wolfe, An Zhisheng, Naomi Oreskes, 2015: When did the Anthropocene begin? A mid-twentieth century boundary level is stratigraphically optimal. Quaternary International.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1040618214009136
* Will Steffen, Wendy Broadgate, Lisa Deutsch, Owen Gaffney, and Cornelia Ludwig, 2015 : The trajectory of the Anthropocene: The Great Acceleration. The Anthropocene Review, DOI:10.1177/2053019614564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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