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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은미 씨를 꼭 강제추방 시켜야 했을까?

[취재파일] 신은미 씨를 꼭 강제추방 시켜야 했을까?
검찰이 재미교포 신은미 씨를 강제추방 해달라고 법무부에 요청했습니다. 검찰은 신 씨가 지난해 11월 참석했던 토크 콘서트를 “북한의 세습 정권과 독재 체제를 미화하거나 이롭게 했다고 판단된다”면서 ‘종북 콘서트’라고 공식 규정했습니다. 신 씨에게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콘서트에서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정권 하에 있는 것을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겁니다. 다만, 콘서트를 주최한 세력에게 이용당한 면이 있고, 검찰에 와서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진술을 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기는 하지만, 기소유예 즉, 재판에 넘기지 않고 용서해 주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이 나라에서 나가라’는 것이 검찰의 처분 내용입니다.

애초 이 ‘종북 콘서트’ 논란은 한 일간지가 조계사에서 열린 신은미 씨와 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라고 대서특필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얼마 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이를 ‘종북 콘서트’라고 규정했습니다. 보수단체가 곧바로 고발했고, 검찰은 경찰을 통해 신속히 수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신은미 씨 추방’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콘서트를 주최한 황선 씨 등 검찰의 표현에 따르면 이른바 ‘종북 색채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엄연한 대한민국의 법률이고, 이에 따라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하는 것은 범죄가 됩니다. 그래서 간첩 활동을 한 자나 북한을 이롭게 한 사람들은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됩니다. 신은미 씨에게 적용된 법률도 북한을 고무, 찬양했다는 국가보안법 조항입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법규를 이해한다고 해도, 이번 사건 결과를 설명하는 검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줄곧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 우리 사회가 북한 기행담 조차 수용할 수 없는 사회인가?

먼저, ‘우리 사회가 북한을 다녀온 재미교포의 기행담조차 수용할 수 없는 사회인가?’라는 의문입니다. 검찰은 신은미 씨가 문제의 콘서트에서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정권 하에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발언을 하고,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까지 불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신 씨의 주장은, 콘서트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은 대부분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북한 체험담이었다는 겁니다. 콘서트의 바탕이 되었던 신 씨의 북한 여행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는 문체부가 ‘우수 문학 도서’로 선정할 정도로(결국 ‘종북 콘서트’ 논란 이후 선정이 취소됐지만) 자유로운 북한 여행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검찰이 문제 삼은 발언들은 “북한 주민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는 전언 형식에 불과했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발언은 전혀 없었다고 신 씨 측은 주장했습니다. 도리어 “직접 살펴 본 북한 주민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떻게 북한 세습 정권을 찬양하는 것으로 보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제헌의원을 지낸 외할아버지를 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음악교수로도 자리 잡았던 신 씨를 북한식 혁명론을 추종하는 이른바 ‘NL 전사’로 보기는 검찰도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검찰 스스로 “신 씨가 ‘종북 색채의 세력들’에게 이용당했다”고 밝혔습니다. 누군가의 요청으로 콘서트에 참여한 것이고, 언론 매체에 글을 실은 것도 다른 누군가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검찰은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토크 콘서트에서의 발언 몇 가지를 근거로, ‘신 씨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 그런 신 씨를 강제추방하겠다, 즉 우리 사회에서 신 씨는 수용될 수 없다’고 결론냈습니다.

이런 조치가 과연 민주주의의 대의와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인지, 북한에 대한 인식이 최초 ‘종북 콘서트’라고 명명한 신문이나 대통령의 인식과 같이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을 국내적으로 또 국제적으로 선언한 셈은 아닌지, ‘통일 대박 시대’를 준비하자면서 북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 건 아닌지,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김정윤 취파1

● “북한 찬양해? 안 해?” 사상 검증 부활 조짐?

이보다 더 ‘섬뜩’했던 것은 신은미 씨를 국내에서 처벌하지 않기로 검찰이 결론 내린 ‘과정’이었습니다. 검찰은 신 씨가 조사를 받으러 와서, “북한을 찬양하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혐의를 부인하고, 무엇보다 “북한의 3대 세습에 찬성하지 않고,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비판적인 진술 태도를 보였다”며, 이런 ‘고백’이 신 씨를 기소유예 처분한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즉, 검찰이 신 씨에게, “당신, 북한 찬양해? 안 해? 김정은 좋아? 싫어?”라고 대놓고 물은 셈입니다. 한 때 일베 회원들이 “‘김정은 개XX’라고 해봐. 이 말 못하면 넌 종북이야”라면서 무차별적인 ‘종북 감별법’을 인터넷을 통해 전파했던 적이 있습니다. 국가기관인 검찰이 미국 국적의 피의자에게 비유컨대 “북한 체제 좋아? 싫어?” “김정은 개XX라고 해봐”라는 식으로 물은 건 아닌지, 검찰이 혹 일베 수준으로 전락한 건 아닌지, 역시 혼란스러웠습니다.

국가기관이 일종의 사상 검증을 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사상 검증을 통과하면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은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 시대를 통과한 우리 역사에서 많이 겪어왔던 일입니다. 일제 때는 “당신, 조선의 독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군사 독재 때는 “당신,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등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간첩이나 용공 혐의자를 가려내기 위해 “김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도 있었지요. 그런 사상 검증의 프레임들이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거치면서, “김정은의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21세기판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른바 ‘종북 논란’이 조국 독립이나 반독재 운동과 같은 가치를 갖는 것은 결코 아니겠습니다만, 문제는 ‘종북 논란’이 아니라, 국가기관에 의한 사상검증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조짐 혹은 징후일 것입니다.

그 유명한 독일의 시, “나치가 사회주의자를 잡으러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다음에 그들은 노동조합원들을 잡아갔고, 다음엔 유태인을, 그 다음에는 불치병 환자들을 잡아갔다. 마침내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처럼, ‘종북 세력’에 대한 사상 검증이, 다음에는 다른 어떤 대상으로 확대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혹여 노동조합에 참여하거나 특정 정당, 정치인을 지지했다고 국가기관이 사상 검증을 벌이는 일이 다시 벌어지지는 않을지...... “신은미 씨가 김정은 세습 체제를 비판해서 기소유예 해줬다”는 검찰의 설명을 들으며, ‘어떤 섬뜩함’을 느꼈던 이유입니다.

신은미 씨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강제로 쫓겨나거나 아니면 출국정지 기간이 끝나는 내일부터 제 발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살던 나라 ‘고국’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 ‘발언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의 권리’를 헌법 1조로 보장하고 있는 나라 미국의 시민권자인 신 씨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떠날지 궁금합니다. 강제 출국이 되면 신 씨는 앞으로 5년 동안 자신을 쫓아낸 ‘고국’땅을 다시 밟을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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