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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얼음 군함' 된 구축함…최영함에 무슨 일이

[취재파일] '얼음 군함' 된 구축함…최영함에 무슨 일이
도대체 이 배는 어디서 무슨 일을 당했을까요? 영화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의 냉동 마법에 당한 듯 꽁꽁 얼었습니다. 선수(船首)에 설치된 함포를 보면 군함인데, 을씨년스럽게 얼어붙은 모습이 겨울 바다의 유령선 같습니다. 이 ‘얼음 군함’, 러시아도 아이슬란드도 아닌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 구축함인 4400톤급 최영함입니다. 2011년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해적에 납치된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의 주역, 바로 최영함입니다.

아무리 우리나라 요즘 추위가 매섭다지만 해군 주력 구축함이 저 지경이 될 정도는 아니지요. 최영함이 떠 있는 저 바다는 동해도 서해도 아닙니다. 러시아의 부동(不凍)항 블라디보스토크입니다. 그런데 사진 속 블라디보스토크의 풍경은 그렇게 추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최영함의 입항을 인도하는 터그 보트(tugboatㆍ예인선)도 멀쩡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추워서가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바닷길이 험난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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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 역사상 이렇게 얼어본 함정은 없었다"

최영함은 해군사관학교 69기 생도들을 태우고 96일간의 세계 순항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군수지원함인 4200톤급 천지함과 함께 지난 9월 18일 진해를 떠나 미국 괌을 시작으로 호주, 인도 등을 거쳐 3만 7500km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인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사령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다가 매서운 폭풍을 만났습니다. 5m가 넘는 파도가 들이치고 영하의 강풍이 불어 최영함은 냉동 참치가 됐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 18일 최영함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입항할 때의 모습인데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 매체들도 신기한지 많이들 보도했습니다. 사진을 본 우리 해군 장교들도 “해외 토픽 같다”며 “이런 배 본 적 없다” “최영함 맞느냐”는 반응입니다.

얼음 파도와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최영함 선수의 127mm 함포는 흡사 비누 거품을 뒤집어쓴 듯한 모양의 ‘얼음포’가 됐습니다. 포신이 움직일지 걱정됩니다. 포구도 꽉 막혀 있겠지요. 주전자에 물 끓여 부은들 기별이라도 가겠습니까. 127mm 함포와 함교 사이, 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는 수직 발사관도 ‘극지방’이 됐습니다. 함포와 미사일, 제대로 발사할 수 있을까요?

넓적한 함교는 더 심합니다. 앞쪽 유리창 대부분이 얼어버렸습니다. 결빙을 막기 위해 설치된 열선도 무용지물이었나 봅니다. 앞이 안 보이는데 운항에 지장은 없었을까요? 갑판에 나온 장병들은 몇 겹 마스크에 귀마개를 하고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춥습니다. 입항식 준비를 하는 것 같은데 한시바삐 하선하거나 선내로 들어가고 싶은 절절한 마음이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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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작전 태세, 이상무!

걱정돼서 해군에 물어봤습니다. ‘얼음 군함’ 최영함, 저러고도 싸울 수 있는지… 괜찮다고는 합니다. 함교 유리창이 얼어붙었지만, 어차피 레이더로 운항하기 때문에 운항에 지장은 없다더군요. 함포나 수직발사관도 탄과 미사일이 나갈 자리엔 별도의 덮개가 있다고 합니다. 겉은 저렇게 냉동 상태이지만 안은 멀쩡하다는 겁니다. 물론 수십cm는 족히 돼 보이는 얼음은 깨든 녹이든 처치를 해야 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저런 정도의 전장 환경이라면 적의 배도 성할 리가 없습니다. 같이 얼어 붙을 테니 서로 펀치를 주고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사진을 보도한 중국의 모 매체는 “러시아의 터그 보트는 멀쩡한데 최영함만 얼음이 됐다”며 우리 해군을 조롱했습니다만 잘못된 지적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블라디보스토크 먼바다에 폭풍이 불었을 뿐 블라디보스토크 항은 잔잔했습니다. 항구에 있던 터그 보트가 언다면 그게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도 최근 지구 기후가 하 수상하니 저런 혹한의 전장 환경도 감안은 하고 있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최영함 장병들과 해사 69기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혹독한 전장 환경을 미리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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