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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개집에 쇠사슬까지" 관리 사각지대 놓인 장애인 시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 27년…장애인 인권은 얼마나 보호되고 있나?

[취재파일] "개집에 쇠사슬까지" 관리 사각지대 놓인 장애인 시설
지난주 국가인권위원회가 한 장애인 시설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전남 신안군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상습적인 가혹행위가 벌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혹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우선 장애인들을 개집에 가두거나 쇠사슬로 발목을 묶은 채 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다며 발바닥을 대나무 막대기로 수백 대 때렸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심지어 체벌을 받는 장애인이 저항할 경우 다른 장애인을 시켜 다리를 붙들거나 몸에 올라타게 한 뒤 체벌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을 대가없이 마늘 농사에 동원하거나 이들이 맡긴 통장에서 5억 원이 넘는 돈을 동의 없이 인출하기도 했다고 인권위는 발표했습니다. 충격적인 조사 결과였습니다.
취파
▲ 인권위는 문제의 시설에서 장애인들을 개집에 여러 차례 감금했다고 발표했다.
(자료 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발췌)
 
인권위는 의사소통 전문가와 여성 전문 상담원을 파견해 문제의 시설을 조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건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 지적장애인이었고 여성 피해자도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10명은 모두 지적장애 1급에서 3급에 해당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언어장애와 행동장애를 겪고 있는 피해자도 두 명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인권위는 여러 차례 반복 조사하는 과정에서 구체성과 일관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피해사실로 인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적장애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기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인권위가 가혹행위의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은 시설원장 고 모 씨였습니다. 고 씨는 장애인거주시설과 사회복귀시설의 원장, 교회 담임목사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고 씨가 운영하고 있는 시설에서는 지적장애인 28명과 정신장애인 8명, 19명의 아동 합해 모두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직원들까지 합치면 상주하는 인원이 60명이 넘는 시설이었습니다.
전남 신안 가혹행위
▲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에 있는 임자도는 인구 3천6백 명이 살고 있는 섬으로 주민 대부분이 농사에 짓고 산다.
신안군 지도읍에 있는 점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임자도에 발을 디딜 수 있다.


● 취재진이 찾아가보니…'사람들의 방문이 뜸한 외딴 곳'

취재진은 직접 문제의 장애인 시설을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시설 관계자들의 말을 직접 듣기 위해서 했습니다. 복지시설의 모습과 환경도 주요 취재 대상이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인권이 많이 신장됐다지만 감시나 관리가 어려운 외딴 지역의 시설일 경우 지리적 특수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문제의 장애인시설은 전남 신안군에서 배로 15분 정도를 가야 나오는 섬인 임자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임자도는 인구 3천6백 명의 작은 섬으로 섬사람 대부분이 농사를 하는 섬입니다. 논밭을 한참 지나자 건물 몇 채로 구성된 복지시설이 나타났습니다. 시설 관계자들을 상대로 가혹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인권위가 가해자로 지목한 고 모 목사는 인권위의 조사 결과를 모두 부인했습니다. 특히 개집에 장애인들을 감금했다는 부분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체벌을 하긴 했는데 일부 장애인이 기초적인 훈육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교육차원에서 매를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발바닥을 때린 적은 있지만 이 역시 훈육 차원이었고, 특히 300대를 때렸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다른 시설 직원들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개집에 감금하거나 쇠사슬로 묶는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고 일부 체벌은 정상적인 훈육 차원이었다는 해명이었습니다.
전남 신안 가혹행위
▲ 가해자로 지목된 고 목사는 취재진 대화에서 “훈육을 위한 체벌이었을 뿐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허가를 받고 건물 안팎을 살펴봤습니다. 인권위가 감금 의혹을 제기한 개집을 비롯해 쇠사슬로 장애인들의 발목을 묶어놨다던 방을 가봤습니다. 쇠사슬이 매달려있다던 고리는 인권위의 첫 조사가 끝난 뒤 제거된 상태여서 강박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텃밭을 지나 설치된 개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애인 4명을 수차례 들여보내 감금했다는 개집은 열린 공간에 세워져있어 사람이 갇혀있었다면 이웃 주민 누구나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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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위가 촬영한 쇠사슬 고리 사진. 인권위는 시설 관계자들이 이 고리에 쇠사슬을 연결해 장애인들을 묶어뒀다고 발표했다. (사진 제공 : 국가인권위원회)
 
 

이웃 주민들을 찾아 장애인들을 감금한 적이 있는지 물었지만 직접 목격한 주민은 없었습니다. 다만 주민들은 “밤에 시끄러운 소리가 자주 났다”고 말했습니다. 시설 관리가 제대로 안됐는지 “늘 악취가 진동했다”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문제의 장애인 시설에 대해 반감이 큰 상태였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폐교된 분교에 고 목사가 들어와 갑자기 장애인 시설을 세웠다며 제대로 된 절차 없이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공무원이 민원 취하 권고까지…유착 의혹도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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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시설에 있는 화장실의 모습. 변기 사이에 칸막이조차 설치되지 않아 심각한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다고 인권위는 지적했다. (사진 제공 :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는 고 목사가 시설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보조금을 유용한 점도 포착됐다고 밝혔습니다. 고 목사가 신안군에서 받은 보조금 2억 원 가운데 일부를 예산 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입주한 장애인들이 맡겨둔 통장에서 5억 원을 인출했음에도 입출금 내역을 당사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관리 감독을 맡은 신안군 공무원들이 이미 해당 시설의 문제점을 알았는도 지도점검을 소홀히 했다는 점입니다.

신안군은 4년 전인 지난 2011년 한 장애인 인권센터에 의뢰해 해당 시설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시정 조치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감독하지 않았다고 인권위는 밝혔습니다. 2년 뒤 진행된 조사에서 장애인 인권센터가 “2011년 지적사항과 관련 개선이나 점검이 없었다. 폭행 여부가 심하게 축소되었다고 보인다”고 지적했지만 후속 조치도 없었다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특히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입소 장애인의 친척이 제기한 민원을 접수받고도 오히려 시설 직원들의 고충을 설명하면서 민원을 취하할 것으로 권유하기도 했다고 인권위는 밝혔습니다. 담당 공무원과 시설 측의 유착관계가 제기되고 있는 대목입니다.

신안군은 뒤늦게 해결에 나섰습니다. 인권위 권고를 받은 직후 고길호 신안군수 주재로 대책회의를 갖고 부군수를 총괄팀장으로 하는 ‘장애인문제해결 전담팀’을 구성했습니다. 문제의 시설에 머물고 있는 장애인들을 조만간 다른 시설로 옮긴 뒤 일정기간 심리 상담 과정을 거쳐 다른 기관으로 옮기겠다고 밝혔습니다. 고 목사는 인권위의 고발에 따라 검찰 조사를 받게 될 예정입니다. 시설의 인권 침해를 묵인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신안군 담당 공무원들도 징계 여부가 곧 결정됩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가혹행위를 당한 장애인들이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전국의 장애인거주시설 602곳을 대상으로 이미 인권침해 사례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7%가 넘는 44곳에서 문제가 발견돼 이 가운데 8곳에 대해 사법당국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장애인들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장애인 시설의 상당수가 인권침해의 위험에 놓여있는 셈입니다.

●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 27년…장애인 인권의 현 주소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
▲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지난 3월 다룬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희생자 보상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사건 뒤 27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87년 3월 부산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입소자 1명이 시설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동료의 죽음을 본 다른 입소자 35명이 집단 탈출하면서 세상에 실체가 드러난 이른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입니다. 어린이와 노숙인, 일반인까지 많게는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강제로 수용해 중노동과 가혹 행위를 일삼았고 입소자가 달아나다 발각되면 곡괭이로 때리거나 살해해 암매장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에 대한 성적 학대도 횡행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 수만 무려 531명에 달하는 엽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시설 대표가 구속되고 27년이 지난 올해 5월 부산의 한 시민단체가 부산시 공무원들과 시설 관계자들의 유착 관계를 고발하면서 최근 재조명받기도 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상당수 피해자들이 장애인인데다 가혹행위의 증거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아직도 피해자 유족들의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권 전문가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두고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가학적 범죄’라고 말합니다. 피해를 본 장애인들이 자신만의 힘으로 사회 전면에 나서서 주장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세상의 관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시설 대부분이 섬이나 산 등 외딴 곳에 있는 것도 한 몫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뒤따라야 할까요? 다음 취재파일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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