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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中 미인대회 휩쓰는 서양미녀들…그들의 정체는?

[월드리포트] 中 미인대회 휩쓰는 서양미녀들…그들의 정체는?
세계 최초의 미인대회는 1888년 벨기에의 스파라는 곳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미인대회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자본주의 진영에서 비롯됐다고들 합니다. 각 나라별로 선발된 국가대표급 미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세계 최고의 미인을 가리는 미스 유니버스,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어스, 미스 월드 등 올림픽급 대회도 한 두 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이 마무리되던 1953년 전란 중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처음 열린 뒤로 한때 미스코리아 경연대회를 TV에서 생중계하고 수상자들의 소감이 일간지에 주요 기사로 실리던 적이 있었습니다.(물론 최근 미인대회는 성상품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여론에 그 규모나 대중들의 관심도가 예전만 같지 못합니다.)

이런 많이 알려진 미인대회 말고도 각 지방별로 지역 특산품들을 선전하는 일환으로 다양한 형태의 미인대회가 만들어졌습니다.하지만 이보다 훨씬 앞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경연하는 자리를 만들었던 건 다름아닌 중국이었습니다. 명나라 시절 이미 전족 미인 선발대회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의 척도는 보통 얼굴과 몸매를 일컫지만 당시 중국 남성들은 여성의 발 크기에 유독 집착을 했던 모양입니다.

심사위원들 앞에 발만 내밀어 남보다 더 작고 앙증 맞은 발을 가진 여인이 우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청나라때 와서는 기녀들을 대상으로 한 미인대회도 열렸습니다. 그러던 중국이 사회주의 혁명 이후 한동안 자본주의 퇴폐문화의 상징이라며 미인대회를 금지했었습니다.

하지만 개혁개방과 함께 경제 우선 정책으로 전환한 지 30년을 넘긴 지금 중국에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미인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2004년 미스월드 대회를 직접 개최한 이래 올림픽급 대회 개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각 지방별로 만들어낸 별별 이벤트행사마다 미인선발 대회는 단골 메뉴가 됐습니다.

특히, 중국 여성들 뿐 아니라 외국 미인들까지 불러들여 국제 대회급으로 여는 게 대세가 됐습니다. 내몽고의 오르도스나 깐수성의 둔황 등 베이징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오지에서 열리는 미인대회에도 늘씬한 서구 여성들이 수 십 명씩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르곤 합니다.

구색 맞추기식으로 수상자들 가운데는 늘 서구 미인들이 몇 명씩 섞여있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주객이 전도돼 중국에서 열리는 미인대회에 수상자는 서구미인 일색인 경우도 태반입니다. 등수에만 들면 상금도 적지 않고 수상 타이틀로 중국에서 이런 저런 패션쇼나 광고에 출연해 추가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따라 옵니다. 빼어난 외모를 내세워 자신도 뽐내면서 손쉽게 돈도 벌수 있으니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미인대회야 많을 수록 좋겠죠. 한마디로 중국이 외국인, 특히 서구 미인들에게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무대인 셈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게 있었습니다. 어느 미인대회에선가 본 듯한,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서구 미인들이 또 다른 대회에도 눈에 띄기 시작한 겁니다. 워낙 넓은 땅덩어리에 대회도 수백, 수천 가지다 보니 모든 대회를 다 가보지 않는 한 같은 사람이 이 대회 저 대회 '몇 탕'씩 뛰는 지를 추적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대회가 거듭되다 보니 꼬리가 잡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양인들에게는 죄다 엇비슷한 금발에 오똑한 코, 푸른 눈, 170센티미터 전후의 늘씬한 몸매만 눈에 들어올 뿐 구별이 쉽지 않지만 눈썰미 좋은 한 중국 언론인이 미인대회를 휩쓰는 서구 미인들의 정체를 밝혀냈습니다.
미인대회
다들 자국의 미인대회 우승자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들은 알고 보니 몇몇 모델 에이젼시에 소속된 동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미국, 동유럽, 중남미 등 각지에서 온 20대 초 중반의 아가씨들로 개중에는 대학생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주로 고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나머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누군가의 소개로 중국에 쉽게 돈 버는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솔깃해 중국행 비행기에 오른 경우들이었습니다.

중국에 입국하면 이들은 중국 에이젼시 측과 간단한 계약을 합니다. 중국 전역에서 열리는 미인대회와 모터쇼 등 행사, 각종 광고와 홈쇼핑 방송 등에 출연하고 그 수익금을 대략 2:8, 3:7 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그녀들의 나이와 이름, 미인대회 수상경력 같은 개인 프로필은 편의에 따라 조작됐습니다. 물론 국적 세탁도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브라질 상파울루 토박이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생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동유럽 근처에도 안 가 본 미국 중부 촌뜨기 여성이 우크라이나 키에프에 사는 무용학도가 될 수 도 있습니다. 어디서도 신분 확인을 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개인기용으로 간단한 춤과 노래도 배우고 몇 마디씩 외국어도 익혔습니다. 처음엔 긴장도 됐지만 금세 익숙해졌고 무대 위에서 잠시 워킹하고 몇 마다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중국인들이 워낙 서양 여성들에게 호의적이라 어딜 가나 대접도 좋았습니다.
미인대회
어느새 자신이 마치 진짜 미스 캘리포니아, 미스 상파울루, 미스 키에프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되면 그때부터 그녀들은 좀 더 과감한 일에도 투입됩니다. 서양 미녀라면 사족을 못쓰는 지역의 부호들이 행사 이후 따로 부르는 식사 자리나 술자리에 동석하는 겁니다.

이때부터 그녀들의 수입은 달라집니다. 에이젼시 측의 요구는 점점 수위가 높아집니다. 이제 거침없이 잠자리 요구까지 하지만 이미 돈 맛을 알아버린 서양 미녀들은 쉽게 거부하기가 어렵습니다. 계약서에 에이젼시의 활동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존에 벌어 둔 수입까지 모두 포기한다는 조항이 구석에 숨어 있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됩니다. 노예 계약이었던 셈입니다.

어느새 벽안의 미녀들은 낮에는 원치 않는 무대에 서고 밤에는 은밀한 자리에 묶여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관광비자도 이미 기한을 넘겨 불법체류자가 돼 법의 보호도 못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미인대회
얼마 전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는 모델 에이젼시 몇 군데에 대한 단속이 벌어져 60여명의 외국인 여성 모델과 그들을 고용해 온 에이젼시 관계자들이 체포됐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기사화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미인대회를 휩쓸어 온 가짜 서양 미인단의 일부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에이젼시들은 태국과 싱가포르 등 인근 지역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떳떳치 못한 사업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쉽게 돈 벌어보겠다며 사기에 빠져든 서양 여성들도 문제지만 서구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성 상품화에 물들어 버린 중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비롯된 부조리인 셈입니다. 겉으로는 서구가 만든 기존 질서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와 서양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국인들의 이중적인 관념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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