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26일 국회…한편의 '블랙 코미디'

여당 단독으로 열린 본회의…법안 처리없이 10분 만에 산회

정형택 기자 goodi@sbs.co.kr

작성 2014.09.26 18:1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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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진짜 코미디다"

오늘(26일) 국회 상황을 겪은 한 여당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본회의가 열리기까지의 험난했던 과정과 또, 그렇게 여당 단독으로 열고는 단 한 건의 법안 처리 없이 10분 만에 본회의 문을 닫은 것을 지켜본 누구라도 '코미디'라는 말을 외쳤을 겁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정한 본회의 날인 오늘, 여야 지도부는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소속 의원들에게 소집령을 내린 새누리당은 본회의 표결처리를 위해 다시 한번 철저하게 인원점검에 들어갔고, 야당은 어떻게든 본회의를 무산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정의화 연합
정의화 의장 역시 바빴습니다. 오늘까지는 여야가 일정에 합의할 것으로 보고 본회의를 잡았는데, 여야는 당일까지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결국 의장이 움직였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여야 원내대표를 불렀지만, 연쇄 회동은 성사되지 못했고, 의장은 다시 당 대표들을 찾았습니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잇따라 회동을 갖고 해법 찾기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여야의 입장은 완고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예정대로 본회의를 열어서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새정치연합은 여야 합의없이 의장 직권으로 정한 일정인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어느 쪽도 양보도 대안 제시도 없었습니다.
취파

비슷한 시간, 새누리당 이완구 대표 집무실로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협상의 주체인 양당 원내대표 간의 회담은 말싸움 끝에 단 9분 만에 끝났습니다.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간 연쇄 회동이 무산된 게 새누리당 이완구 대표 탓이라는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이 싸움의 단초가 됐습니다.

하지만, 말싸움이 감정싸움으로 번졌던 두 여야 원내대표는 채 30분 도 안 돼 다시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도시락까지 시켜가며 1시간 반 넘게 논의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 역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그 때부터 여야의 시간표는 따로 움직였습니다. 여당은 단독 본회의 강행을 위한 의원총회를 곧바로 소집한뒤 20분 만에 표결처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간 야당 지도부는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다시 한번 의장을 압박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의 방문(일부 여당 의원들은 감금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이나 지나서야 의장은 본회의장에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길었던(시간보다는 과정이 더 길게 느겨졌던) 드라마가 드디어 끝나는가 싶던 순간, 정의화 의장의 연설이 시작됐습니다. 법안을 상정하겠다는 건지, 하지 않겠다는 건지 연설이 끝날 때까지 좀처럼 알 수 없던 의장의 연설이 끝나자 여당 의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국회 정상화를 위해 주말까지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야당의 진실성을 읽었다며 정 의장이 법안 상정을 거부하고 오는 30일에 다시 본회의를 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0분만에 본회의는 산회했습니다.

이어진 여당의 의총장은 그야말로 정 의장 성토장이었습니다. 한 의원은 자당 소속이었던 국회의장의 사퇴 촉구안을 제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다른 의원은 정 의장의 장난(?)에 속았다며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협상을 이끌었던 이완구 원내대표가 오늘 사태의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깜짝 선언을 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의원들의 만류가 이어졌고, 급기야 김무성 대표가 직접 나서 의원들의 박수로 사퇴 의사 반려를 유도했습니다.취파
그렇게 의총은 끝났지만 소동은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 몇몇 의원들이 김무성 대표의 행동을 문제 삼았습니다. 원내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자 마자 대표가 나서 말 한마디로 사의가 반려된 것처럼 만들어 버려, 원내대표의 진의가 훼손됐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원내대표가 쇼를 한 것처럼 됐다는 겁니다. 김무성 대표는 의총 이후 이완구 원내대표 방을 찾아가 다시 한번 사의를 만류했지만, 이 원내대표는 별다른 언급없이 퇴청했습니다.

국회의장-여야 원내대표 연쇄 회동 무산, 국회의장-여야 대표 연쇄 회동, 2차례의 여야 원내지도부 협상, 여당 단독 본회의 개의, 표결 처리 없이 10분 만에 본회의 산회, 여당의 정의화 의장 사퇴 촉구안 작성, 이완구 원내대표 사의 표명, 즉각 반려. 이 모든 게 한나절 동안 벌어진 일입니다.

여당의 의지대로 본회의는 열었지만, 야당의 바람대로 법안 상정없이 10분 만에 산회한 정의화 의장의 선택이 누구에게는 희극, 누구에게는 비극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야 어느 쪽 모두 잘 한 것 없는 오늘의 국회는 국민들에게 블랙 코미디였을 것입니다. 부디 30일로 예정된 본회의는 코미디가 아닌 정극이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