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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잘못은 있지만 누구 탓도 아니다?…복지부의 이상한 논리

'제 식구 감싸기 의혹' 불러 일으키는 복지부 내부감사

[취재파일] 잘못은 있지만 누구 탓도 아니다?…복지부의 이상한 논리
국립보건연구원은 질병관리 정책 수립에 필요한 각종 연구를 수행하는 정부 기관입니다. 직제상으로 따져보면 질병관리본부 소속이고 질병관리본부는 보건복지부 소속이니까, 크게 보면 보건복지부의 소속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3년에 한 번쯤 보건복지부의 내부감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공개된 최근 감사 결과 지난 5년 동안 이 기관에서 92억 원 넘는 연구개발비가 부적절하게 집행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연구개발비는 내부심의와 외부검토 등 정해진 절차를 거쳐 엄격하게 집행되어야 하는데도 전체 연구개발비의 20% 가까이가 이런 절차도 없이 쌈짓돈처럼 사용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질병 정책 연구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가장 근무하기 좋은 직장환경 만들기’ 같은 용역에도 연구개발비가 사용됐습니다. 승진자 교육비, 기념품 구매비, 테니스 대회 참석비, 원장실 탁자 유리시공 같은 데 전용되기도 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연구원들에게도 10억 원 가까운 인건비가 부정 집행됐습니다.

그런데 감사 결과를 확인하면서 매우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견됐는데도 문책이나 징계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기관 경고’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기관 경고’가 내려지면 조직원 누구도 징계를 받지는 않지만, 기관장에게는 다음 인사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관장인 질병관리본부장(국립보건연구원은 질병관리본부 소속이기 때문에 기관장은 질병관리본부장이 됩니다)은 지난해 하반기 새로 부임해 이번 감사 결과와는 상관이 없고 당연히 책임질 필요도 없습니다. 예외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감사는 보통 3년에 한 번 꼴인데 지난 10년 동안 질병관리본부장은 2년에 한 번 꼴로 교체되었던 점을 보면 감사 결과가 기관장 차기 인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개연성은 일반적으로 매우 낮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이런 이상한 감사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건복지부에 문의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논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첫째, 연구개발비 부정집행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제, 즉 조직의 관행이었기 때문에 관련된 개인들을 징계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 감사 담당자는 ‘조직원 모두가 잘못했다’는 표현을 썼는데, 모두가 잘못했으니 다 같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민간연구소가 정부 연구개발비를 받아 이런 식으로 집행했다면 돈을 환수하는 건 물론이고, 담당자는 소속기관 내 징계를 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고발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겁니다.

보건복지부가 아무도 징계하지 않은 또 다른 명분은 문제가 특히 심각했던 시기가 2009년~2011년인데 3년의 징계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국립보건연구원을 포함한 질병관리본부는 2012년에도 보건복지부의 내부감사를 받았지만 그 때는 이와 관련된 아무런 지적도 받지 않았습니다. 수박 겉 핥기 식 감사가 이뤄졌다는 방증입니다.

보건복지부는 국회가 국립보건연구원의 연구개발비 사용 관련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이 부분에 대한 감사를 콕 찍어서 요구하자 올해 뒤늦게 감사에 들어간 건데, 결과적으로는 부실감사에 이은 늑장감사로 면죄부만 준 셈입니다.

보건복지부 내부감사와 직원들에 대한 처벌 기준을 보면 ‘연구비와 관련된 비리는 더욱 엄격히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규정과는 달랐습니다. 이런 식의 감사라면 소속기관에 대한 내부감사가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탄을 받는다고 해도 복지부는 할 말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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