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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도 복지 선진국에서 살고 싶다"

더 내고 더 받기? 덜 내고 덜 받기?

[취재파일] "우리도 복지 선진국에서 살고 싶다"
지난 2월 말,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자는 움직임이 지자체마다 일었었지요. 정치인들은 이른바 ‘세 모녀 법’을 발의하며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자고 강조했지만, 그 이후 뚜렷하게 달라진 건 없어 보입니다. 건강한 사회라면 일시적으로 실직이나 부상 위기를 겪더라도,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특히나 가진 것 없는 극빈층에게 이러한 안전망은 절실한 문제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장치는 아직도 많이 빈약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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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에 만났던 폐지 줍는 할머니, 그리고 이번 봄에 ‘희망의 사다리를 놓자’ 연중기획을 준비하면서 만났던 아파트 청소일 하는 할머니, 두 분 모두 매일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릴 방법이 없는 사정에 놓여 있습니다.  아직도 그분들의 서러운 눈물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 왔는데, 늙어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죽을 때까지 365일 이렇게 가난하게 살면서 노동해야만 살 수 있다며,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말씀.

  이처럼 딱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조건'들에 걸려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2013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이 410만 명인데,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보호받는 사람은 3분의 1이 채 안 되는, 135만 명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기초생활수급자는 최근 5년 새 21만 명이나 감소했습니다. 빈곤층이 그만큼 줄어들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슬프게도 4년 전부터 사회복지 통합전산망이 가동되면서 가족관계나 소득 파악이 쉬워졌고, 그 때문에 기계적으로 탈락한 사람이 많아진 탓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할머니들 같은 경우에도 소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움을 받고 있지는 않는데도, 부양의무가 있는 가족(주로 자식)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현 제도가 신청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서 본인이 신청하지 않으면 일부러 찾아내서 수급 자격을 주지는 않습니다. 또 과정 또한 굉장히 까다롭다고 합니다. 취재하다 만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법은 더 많이 도와주려는 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를 한 명이라도 더 줄이려는 방향으로 간다’ 라고요.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지원 방식도 바뀝니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지원을 생계와 의료, 주거 등의 파트로 나눠 각각의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산정해 지원한다고 합니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라지만, 지원자 전체 수는 늘어날 지 몰라도 보장수준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긴급한 사정에 의해 수입이 끊긴 절박한 사람들을 위한 긴급 생계지원 제도 역시 유야무야입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다, 대상자 선정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발굴하기보다는 주변의 추천이나 본인의 신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한 이유가 되겠고요.) 이러다보니 배정된 예산조차 제대로 못 쓰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고작 55%만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소복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기에 와 있습니다. 기본적인 안전망이 허술하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게 되고, 사회 계층화가 고착되어 결국 사회 문제가 늘어나는 결과를 낳습니다.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고민해야 할 것은 재정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속 가능한 복지 정책을 펼 수는 없습니다. 반값등록금이나 기초연금 등 이번 정부의 주된 복지공약들도 결국 재정 문제에 부딪혀 원래 계획보다 축소됐지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출마한 후보자들마다 복지 확충을 내세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재정 문제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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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여기자협회의 지원을 받아 영국의 복지 개혁을 살펴보기 위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여기서 만난 옥스퍼드 대학의 마틴 카이저 교수는 OECD국가들에 대한 10년 간의 조사결과를 통해, 복지비 지출이 많은 나라일수록 빈곤율이 낮고, 사회 생산성이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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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흔히 복지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스웨덴이나 독일 등은 GDP의 30%에 달하는 돈을 복지비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마틴 교수가 보여준 도표에서 우리나라의 복지비 지출은 약 5%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좀더 공격적으로 복지비 지출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마틴 교수는 더불어 ‘증세 없는 복지국가 실현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증세에 대한 저항이 무서워서, 나라 살림을 고려하지 않고 인기영합주의 식으로 복지 정책을 펴다가는 곧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의 남유럽 국가들이 겪는 위기를 그대로 겪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19.3%으로 영국의 조세부담률 28.3%에 비해 크게 낮습니다. 스웨덴과 덴마크 등 복지선진국들은 무려 45%를 넘는다고 합니다. 저성장과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복지 수요는 계속 늘어날 텐데, 우리는 아직도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고 합니다. 무조건적인 세금 증가에는 당연히 많은 국민들이 반발하지만,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게 되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만난 베넷 선임연구원은 영국 국민들 역시 조세 저항이 있지만, NHS(영국의 의료서비스) 같은 곳에 드는 구체적인 복지비용에는 반발이 적다고 말했습니다. <<** 참고로 NHS는 영국 국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도 공짜로 치료를 해 줍니다. (물론 여기에 영국 국가재정의 19%나 투입되면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긴 합니다만) 중병에 걸리면 가족 전체가 가난해지는 우리의 현실에선 꿈같은 이야기죠? 물론 가벼운 병은 대기시간이 길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해야 하긴 하지만 어쨌든 많은 세금을 냄에도 불구하고 NHS에 대한 영국인들의 신뢰와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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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나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고 내 노후를 지켜줄 것이라는 든든한 믿음이 있다면, 세금을 조금 더 내는 것에 반대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젊을 때 열심히 일하고, 나이들어 나라에서 보호받으며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겁니다. 복지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복지를 위한 증세의 필요성과 세금의 쓰임새를 투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관성 있게 복지정책이 추진되게 하고, 재정이 부족해 중간에 축소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복지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솔직하고 용감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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