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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의 사소하게] 불통 천지…소통의 부재로 일어난 비극들

'테메노스'와 '투명 사회'

[이주형의 사소하게] 불통 천지…소통의 부재로 일어난 비극들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생들이 침몰 직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보냈던 간절한 SNS 메시지가 가족은 물론 금세 외신에까지 전달돼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이 전면적인 무한 소통의 시대에, 해경 관제센터와 세월호 사이의 불통, 열거하기도 벅찬 각종 '본부'들 사이의 불통, 관(官)과 백성(民) 사이의 불통, 현장과 책상 사이의 불통, 현실과 매뉴얼의 불통은 우리를 절망케 한다.

'소셜네트워크의 시대'에 어리둥절할만큼 낯선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오히려 과잉 소통으로 터져나오는지 절제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거친 내면이 '소셜미디어'들을 통해 분출되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심케하는 언사들마저 '소통'이라는 허명 아래 떠돌아다닌다.

주체하기 힘든 무력감과 분노, 불안... 어딘가 쏟아내지 않고는 배기기 힘든 것이 지금의 상황이지만 갓 탄생한 SNS에 아슬아슬하게 실려다니는 '이 시대의 소통'은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들을 찌르고 베면서 공동체 정신을 기저에서 붕괴시키고 사회적 고통을 배가하기도 한다.

소설가이자 심리에세이스트인 김형경씨는 "개인마다 하나씩 공간을 확보한" 소셜미디어에서 "개인들이 혼자서 소화시키지 못하는 감정들을 토로"하면서 "인정과 지지, 사랑과 배려 등이 교환되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내면에 심리적 공간, 의식의 공간이 있어야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두고 소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카를로스 융이 '테메노스'(고대 희생 제의를 치르던 신성한 공간)라고 명명한 바로 그 내면의 심리적 공간에서만이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소화시키고 고통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한국에서 출간한 '투명사회'에서 (SNS상의) "친밀성이란 심리학적으로 표현된 투명성의 공식"이라고 본다. 그는 '투명사회'란 보여지기 위한 '전시 가치'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포르노 사회'로서 이런 사회에서 신뢰와 진정한 소통은 어렵다고 지적한다. '소셜미디어'가 제공하는 친밀성의 독재는 모든 것을 심리화·개인화하고, 사적 개인의 공개로써 공론의 장을 대신하면서 공론의 장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

"경험은 타자와의 만남이다. 반면 체험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볼 뿐이다.
나르시시즘적 주체는 자기 자신의 경계를 한정하지 못한다. 그에게 현존재의 경계는 흐릿하다.
그런 까닭에 안정적인 자아의 이미지도 생겨나지 못한다" (투명사회, 한병철)

테메노스의 핵심은 '밀봉'에 있다고 한다. 중세 연금술의 핵심이 납,아연,구리를 넣은 그릇의 밀봉에 있고, 밥을 지을 때 뚜껑을 열어보면 뜸이 잘 들지 않는 것처럼 마음도 경험과 감정, 정서를 얼마나 내면에 간직해둘 수 있느냐에 따라 그 풍요로움이 달라진다고 김형경은 설명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눈 앞에서 맞닥뜨리는 광경은 '테메노스'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살풍경한 것이어서 어느 인터넷 방송에서는 진도 체육관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가족들이 모습이 마치 CCTV처럼 24시간 생중계-한병철의 용어로 '전시'-되기도 한다. 이 광경을 보고있노라면 취지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불행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만 왕성한 사회에서"('말의 정의' 中)라는 오에 겐자부로의 관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소통의 부재와(대화만이 소통일까. 소통이란 인간과 인간이 인간 대 인간으로 나누는 유무언의 대화 총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로 인한 비극은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법적으로도 바로잡아야겠지만, 이 소통 과잉과 소통 부재의 혼재, 납득하기 힘든 이 둘의 동거 시대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런 일이 일어나기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삶과-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부조리- 이번 사건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인지, 우리의 내면과도 대화를, 소통을 해야할 때는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지금부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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