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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병원, 제약사에 약품 무조건 5원에 달라…'갑의 횡포'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 뭣 때문에?

[취재파일] 병원, 제약사에 약품 무조건 5원에 달라…'갑의 횡포'
1월부터 종합병원들은 발빠르게 제약사에 공문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계약기간이 남은 제약회사에 대해서도 기존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합니다. '재계약 견적 협조 요청',  '인하 검토 부탁' 등 점잖은 문구가 적혀 있지만 실상은 '갑이 을에 가하는 압박' 입니다. 문서로 증거가 남는 공문에는 구체적인 수치나 요구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영업사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전화나 1:1 면담에서 이뤄집니다. 가령 납품하는 약 가격을 30% 이상 깎아달라던가, 일괄 5원에 납품하라던가, 하는 일방적인 주문 말입니다. 제약협회가 9곳 정도를 자체 조사해보니, 최고 50%까지 할인을 요구하는 병원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할인요구율 사진 넣어주세요)

제약사들은 거절할 수도, 다 받아들여줄 수도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거절하면 병원에서 약품 코드가 삭제되니 다시는 그 병원에서 영업을 못 하게 될 테고, 요구를 다 받아주자니 손해가 막심할 게 뻔하기 때문이죠. 병원 몇 곳의 구매담당자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2월 1일 제도시행일에 맞추어 급하게 할인율을 정한 것이라 추후 추가 인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럼 병원들은 왜 갑자기 이런 <갑질>을 하게 된 걸까요? 
병원들은 제약사나 도매상을 통해, 보험에 등재된 약가보다 싸게 약을 살 수록 그 차액의 70%를 '인센티브'로 건보에서 지급받습니다. 지난 2010년에 처음 도입된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 때문입니다. 이 제도는 약품 유통을 투명하게 하고, 약가를 낮춰 환자 부담을 줄이고 건보 재정도 튼튼히 하기 위해 시행됐다가 16개월 후 잠시 중단됐고, 이번달부터 재시행됐습니다.

그런데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건보 재정만 낭비하고 큰 병원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제도가 시행된 지난 16개월 동안 지급된 인센티브가 총 2천억 원에 육박하는데, 92%가 대형 병원에 쏠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센티브 주더라도 약가 인하로 건보재정 절감이 잘 됐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실제로는 재정절감보다 인센티브 지급액이 더 많아서 최대 1천6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제도가 시행되면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원내조제 약을 먹는 환자들)의 약값 부담은 줄어듭니다. 종합병원의 90% 정도가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네 약국과 병원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외래 환자들은 아무 혜택이 없습니다. 작은 규모의 병,의원이나 동네 약국은 이 제도에 거의 참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실질적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약가인하 효과는 미미한데, 엄청난 건보 재정을 낭비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겁니다. 구매에 따른 이윤을 내놓고 인정해 주는 이 제도가 결국 '리베이트의 합법화'를 조장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습니다. 또 의약품 시장에서 갑을 관계인 병원과 제약사의 위치를 더욱 악화시켜 불공정행위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오늘(14일) 이 제도의 시행을 둘러싸고 최종 의견수렴을 위한 보험약가제도개선협의체가 열립니다. 업계의 피해 없는 공정한 경쟁질서를 만들기 위해, 또 실질적으로 약가 인하에 도움을 주려면 현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할 지를 고민해 봐야 합니다. 정책을 도입할 때 당초 목표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선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범시행 기간의 성과 만으로는 앞으로를 예단할 수 없다면서 인센티브 지급율을 조정해서라도 계속 시행하는 방안을 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나 통계를 제시해 제도시행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면 좋을 텐데요. 지금까지로 봐선 큰 약가 인하 효과도 없는 이 제도 시행을 위해서 국민이 왜 비용을 부담해야 되는지, 납득할 만한 정부의 대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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