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또 스토킹 살인…처벌법은 언제?

한승구 기자 likehan9@sbs.co.kr

작성 2014.01.31 13: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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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또 스토킹 살인…처벌법은 언제?
 유족을 취재하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호상이 아닌 경우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사람 죽은 데 와서 뭐하는 거냐" 라는 말을 들으면 절로 어깨가 움츠러듭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취재의 필요성을 말씀드리려 노력하지만, 기자도 송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수습 기자들 가운데는 장례식장 취재하다 회의가 든다며 가끔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뵌 유족분들께는 참 감사합니다. 서른 넘은 딸을 황망하게 잃고도-어떤 심정일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지만-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며 많은 부분을 공개해 주셨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들을 때마다 제가 써야 할 기사의 엄중함에 대해 곱씹게 됐습니다. 그녀는 5년 동안 스토킹당하다 살해됐습니다.

 애초 이 사건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에는 피해 여성이 상담 교사였다는 사실만으로 '여선생과 제자 간의 빗나간 애정 행각이 불러온 비극'으로 둔갑했습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애초에 둘 사이는 남녀 관계가 아니었고, 그녀가 수년간 극심한 스토킹을 당했다는 사실은 시간이 더 지나서야 조금씩 알려지게 됐습니다.

 사건 내용은 이미 많이 공개돼 있지만, 몇 가지 안타까운 지점들이 있습니다. 이미 남성은 2011년 몹쓸 짓과 함께 여성을 살해하려고 했었지만, 당시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뒤따르지 않았습니다. 두 당사자의 부모들이 나서 남성을 용서하고 치료와 유학이라는 방법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제자로 만난 앞길 창창한 젊은이라고 배려해 줬던 것을 유족들은 지금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전후로 그녀는 이 남성에 대한 확고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만난 그녀의 친구는 "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아이같다"라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합니다.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피해자는 '내가 이렇게 괴롭힘들 당하다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큰 일을 당하겠구나'라는 사실을 반드시 안다"고 말했습니다.

 남성은 부모에 의해 강제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고 한국에 돌아와 결국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알려진 것과 달리 사실 그녀는 결혼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의 집착이 계속되자 지인이 "그 선생님 결혼한대. 이제 그만해."라고 말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결혼한다는 걸 알면 그만둘까 싶었던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겠지만, 남성의 집착과 분노를 더 키운 셈이 됐습니다.

 '스토킹'이라는 새로울 법도 없는 소재를 다시 취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접수되는 스토킹 상담 사례의 97%는 아는 사람에 의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호감과 구애'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범죄와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속담이 구애 활동을 하는 남성을 '적극적이고, 남자답게 여성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바람직한 남성상'으로 규정하는 데 쓰이다 보니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기가 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킹 살인은 해마다 일어나고, 이게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변화를 법이 못 따라 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나마 지난해 3월 22일부터 경범죄 종류에 '지속적 괴롭힘' 조항이 새로 생겼습니다.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는 범칙금 8만원을 부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예 처벌 규정 자체가 없었던 것에 비하면 나아졌다"라며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SNS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스토킹이 가능해진 상황에 견줘 봤을 때 이 조항으로는 스토킹을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렇다 보니 법 시행 이후 연말까지 9달 남짓 동안 실제 처벌 사례는 3백 건 남짓에 불과합니다. 연간 스토킹 피해자 수가 18만명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입니다.

 미국과 독일, 영국, 일본 등에서는 스토킹에 대한 별도의 처벌 법안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징역형은 물론 유죄 선고를 받은 범인의 DNA까지 보관하도록 하는 곳도 있고, 독일과 일본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법제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토킹의 범위가 뭐냐, 진술만 있을 때 어떻게 처벌할 거냐 등의 문제로 논쟁만 몇 번 하다 3번이나 폐기됐습니다. 그런데 CCTV, SNS, 스마트폰, 문자메시지 등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스토킹을 규정하고 입증하기는 이제는 더 이상 어렵지 않습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선진국들이 다양한 유형의 스토킹을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도 2002년 발의된 이낙연 의원의 법안, 지난해 발의된 김제남 의원의 법안이 계류 중인 상태입니다.

 사건 속의 남성은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스토킹법이 아닌 형법의 적용을 받게 됐습니다. 스토킹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아무 처벌과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살인이라는 범죄가 이뤄지고 나서야 비극이 마무리된 셈입니다. 스토킹이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고하고, 그에 대한 처벌과 치료가 명확히 규정됐다면, 그래서 살인까지 가기 전 단계에서라도 제대로 대처가 됐다면 피해 여성과 남성 양쪽의 가정이 모두 망가지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녀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