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4일차. 사마르는 흐리고 때때로 비.
타클로반은 흐리고 때때로 돌풍 동반한 폭우.
“한국 공군기 회항. 팩트와 오보 사이”
휴대전화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새벽 6시 반이다. 깨보니 비좁은 호텔 방이다. 어제 숙소로 이동했던 과정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어제 우리 취재팀은 타클로반이 있는 레이테 섬에서 사마르 섬으로 이동해 숙소에 짐을 풀었다. 한국 외교부에서 파견된 직원 2명과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직원 2명으로 구성된 외교부 신속대응팀이 숙소로 쓰고 있는 조그만 호텔이다. 신속대응팀과 함께 미국 공군 수송기를 타고 타클로반에 도착한 다른 한국 언론사 취재팀은 이미 이 숙소에서 머물고 있었다. 필리핀에 들어온 첫 날 세부를 떠난 뒤 처음으로 침대가 있는 숙소에서 잠을 잤더니 불과 서너 시간의 잠이었지만 피로가 많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어젯밤 컵라면과 즉석 쌀밥을 든든히 먹은 덕분이기도 했다.
아침 7시. 외교부 신속대응팀과 짧은 회의를 가졌다. 차가 없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신속대응팀 직원들의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신속대응팀이 출발 전 하루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신속대응팀은 타클로반에 들어온 며칠 동안 이렇게 기자들과 아침 회의를 계속해왔다고 했다. 연락이 두절된 교민들을 찾는데도 바쁜데 기자들까지 일일이 데리고 다니다니, 신속대응팀도 고생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신속대응팀은 오늘 팀을 두 개로 나눠 움직일 예정이다. 한 팀은 지금까지처럼 한인 교민들을 찾아다니고 다른 한 팀은 오후에 착륙할 것으로 예정된 우리 공군 수송기에 한인 교민들을 태워 보내는 역할을 맡았다. 한인 36명의 안전을 추가로 확인해 미확인 인원은 19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타클로반은 시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여전히 통신이 두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신속대응팀은 연락이 끊긴 한인에 대한 소식을 현지 소식통이나 한국의 가족들로부터 전해 듣고 있었다. 우리 취재팀이 어제 한인 목사 가족 8명의 소재와 연락처를 파악해 전달한 것처럼 정보를 들으면 그 장소로 이동해 안전을 확인하거나 차에 태워 데려오는 방식이었다. 통신이 두절된 재난지역에서는 이 방법 외에는 사람들을 찾아낼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 취재팀의 취재 환경만큼이나 신속대응팀의 활동 환경도 열악한 상황이었다.
신속대응팀이 여러 언론사 취재팀과 회의를 계속하는 동안 우리는 타클로반을 향해 먼저 출발했다. 현지인 운전기사는 집이 있는 올목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잔 뒤 연료를 가득 채운 차를 끌고 이른 아침부터 우리 숙소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의 오늘 일정은 두 가지다. 오전에는 어제에 이어 타클로반 피해 지역 곳곳을 취재하는 것이다. 어제 처음 타클로반을 돌아다녀 봤지만 참사 현장을 하루 만에 다 돌아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후 일정은 한국 공군 수송기가 착륙하는 것과 우리 교민들이 수송기 편으로 타클로반을 벗어나는 모습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 팀은 타클로반 도착 이틀째 취재에 나섰다.
▲ 숙소가 있는 사마르섬 캣블로간에서 2시간 정도 달리면 레이테섬으로 들어서는 큰 다리가 나온다. 다리의 이름은 산 후아니코(San Juanico Bridge). 1973년 완공된 길이 2.16km의 다리로 바다를 가로질러 지어진 철교로는 필리핀에서 가장 긴 다리다. 이 다리도 태풍 하이옌으로 큰 충격을 입었지만 통행은 허용되고 있었다. 아침에 타클로반으로 향할 때 이 다리는 우리에게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는 점을 알려주는 하나의 이정표였다. 저녁 8시에는 군인들이 다리를 통과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8시 뉴스 송출을 마치는 대로 운전기사를 재촉해 부랴부랴 이 다리까지 내달리곤 했다. 그래서 해가 진 뒤 이 다리는 우리에게 늘 넘어야 될 난관으로 느껴졌다. '이 다리를 못 건너면 차에서 밤을 지새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다리는 우리에게 필리핀의 자연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보이는 좌우의 풍경은 이 나라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실감하게 해줬다.
타클로반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어제 사마르에서 타클로반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정부군과 폭도들 사이에 총격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제 교전의 영향인지 사마르 곳곳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지나가는 차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검문이 강화된 덕분인지 다행히 타클로반에 들어서기까지 걱정했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3시간을 달려 타클로반에 도착했다. 타클로반 이틀째 취재가 그렇게 시작됐다.
사마르에서 타클로반으로 들어서면 허름한 집들이 길게 늘어서있는 인구 밀집지역이 나온다. 시내 중심가에는 시청과 병원 등 기관과 시설이 집중돼있고 외곽에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몰려있는 일반적인 도시의 지역 구성이 타클로반에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진 단층 가옥이었기 때문에 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완전히 부서진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남은 집들도 거의 머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된 상태였다. 무엇보다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하천이 문제였다. 하천은 온갖 건물 잔해와 쓰레기, 그리고 죽은 가축들로 가득 찬 ‘쓰레기 하천’이 돼 있었다. 악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거주 지역에 도착하니 주민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하천 옆으로 가서 스탠딩을 잡았다. “주민들의 집 바로 옆에 있는 하천에 동물 사체들과 무너진 집 잔해들이 널려있는데요, 악취가 너무 심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냄새가 너무 고약해 빨리 촬영을 마친 뒤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 이곳에 더 있다가는 우리부터 전염병에 걸릴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3번이나 멘트를 틀린 뒤 겨우 스탠딩을 마쳤다. 중심가에 있는 세인트 폴 병원에 임시 치료소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장비를 싣고 있는데 주민들이 물을 달라며 다가왔다. 어제 이미 몇 병을 물을 주민들에게 나눠준 뒤였고 오늘은 일정이 빠듯했다. 미안하다며 주민들의 손을 뿌리치고 병원으로 향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세인트폴 병원에 마련된 치료 센터는 아직 제대로 모습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병원 로비에는 간이침대만 몇 개 놓인 상태였고 병동은 아직 청소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구급약과 주사 등 간단한 조치만 가능한 상태였다. 어제 만났던 우리 119 국제구조대의 김용상 대원과 짧은 문자 대화가 이뤄졌다. 한국 구호팀이 들어와 사용할 응급실과 병실을 청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병원을 뒤로 하고 타클로반 시청의 송출 캠프로 이동했다.
SBS 타클로반 취재팀은 이때부터 팀을 두 개로 나눠 움직였다. 취재해온 영상을 위성장비로 먼저 한국에 보내야 시간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출 캠프에는 휴대전화를 충전하려는 타클로반 주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지만 우리가 도착하자 모두 자리를 비켜줬다. 함께 장비를 설치한 뒤 김승태 기자가 송출 캠프에 남아 오전에 취재한 내용들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나와 황인석 선배는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 공군 수송기가 착륙하는 것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한인 교민들과 몇몇 언론사 취재팀도 공군 수송기 편으로 타클로반을 빠져나갈 예정이었다. 마침 시청에 신속대응팀 차량도 도착했다. 우리는 함께 타클로반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에는 우리 공군 수송기를 타고 떠나려는 한국인 교민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항까지 오는 길에 여러 차례 국지성 폭우가 세차게 내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청에 설치한 송출 캠프에도 돌풍이 불어 김승태 기자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다행히 매일 우리 옆자리를 지키던 스웨덴 라디오 기자와 몇몇 외국 기자들이 위성장비가 바람에 쓰러질 뻔 한 것을 붙잡아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줘 김승태 기자가 겨우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에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직접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타클로반 시청의 외신 기자들과 깊은 동지애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한국 공군 수송기는 새벽 6시에 성남 공항을 출발해 필리핀 세부 공항에 도착한 상태였다. 세부 공항에서 타클로반 공항까지는 항공기로 40분 거리였다. 공군 수송기가 착륙하기로 한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외교부 신속대응팀과 현지 취재팀, 한인 교민들은 모두 설레기 시작했다. 낯설고 황량한 타클로반에서 한국 국적기를 본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30분, 1시간 시간이 지나도 공군기는 보이지 않았다. 공항에서 한인 교민을 인터뷰한 영상을 포함해 한국으로 보내야 할 영상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수송기 착륙이 늦어지면서 기사는 평소보다 빨리 완료해 데스킹을 받은 뒤 녹음해놓은 상태였다. 비행기가 착륙 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5시가 되자 우리는 송출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황인석 선배는 카메라를 든 채 비행기 착륙 여부를 확인해 촬영을 하기로 하고 남았다. 타클로반 공항에서는 다행히 휴대전화 전파가 잡히기 시작해 황인석 선배와 통화는 가능한 상황이었다. 나는 황인석 선배를 공항에 남긴 채 촬영한 영상과 기사를 읽은 내 목소리가 담긴 디스크를 들고 차에 올랐다. 운전기사가 시청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시청에 도착하자마자 디스크를 들고 김승태 기자에게로 뛰어갔다. 캠프를 지키느라 5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못간 김승태 기자가 영상 파일을 추출한 뒤 위성장비로 한국에 송출하기 시작했다. 현지인 운전기사에게는 상황을 설명한 뒤 공항으로 보냈다. 수송기가 착륙하는 대로 황인석 선배와 영상 디스크를 싣고 바로 송출 캠프로 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운전기사 혼자 공항으로 보내는 게 걱정이 됐지만 방법이 없었다. 혼자 공항으로 가서 황인석 선배가 촬영을 마치는 대로 여기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비상사태(emergency)라고 연거푸 말하자 운전기사는 상황을 알았다며 잘 데리고 오겠다고 대답했다.
송출 캠프에서 황인석 선배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우리 공군 수송기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는 한국인은 약 40여명. 외교부 신속대응팀과 취재진, 한인 교민들이 목 빠지게 수송기가 착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수송기가 도착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이제 시간은 산 후아니코 다리가 통제되는 시간대까지 흘러가고 있었다. 레이테 섬에서 사마르 섬으로 넘어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저녁 8시가 되면 다리를 건너는 것을 막기 때문에 송출 캠프에서 적어도 7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저녁 7시까지 수송기가 내리지 않자 황인석 선배도 공항에서 철수했다. 황인석 선배가 철수한 뒤에는 신속대응팀 직원들과 전화 통화로 수송기 착륙 여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전화 연결마저 잘 이뤄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수송기가 착륙하지 않아 신속대응팀도 비상이 걸려 있었다. 결국 우리는 세부에 있는 다른 외교부 직원을 통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공군 수송기가 공항 사정으로 세부로 회항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송기가 타클로반에 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우리 취재팀은 순간 영혼이 뒷골을 통해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오후 3시부터 무려 5시간을 기다렸는데 회항이라니. 게다가 8시 뉴스 리포트도 한인 교민들이 공군 수송기 편으로 타클로반을 빠져나갔다고 만들어둔 상태였다. 데스크와 급히 통화를 한 뒤 기사를 바꾸기로 했다. 착륙도 안한 수송기를 타고 교민들이 빠져나갔다고 방송을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송기가 현지 공항 사정으로 착륙하지 못하고 회항했다는 내용으로 수정해 기사 일부분을 다시 녹음했다. 황인석 선배와 급히 차 안에서 오디오를 수정한 뒤 녹음한 디스크 파일을 들고 송출 캠프로 뛰었다. 그런데 순간 낯설고 이상한 기운이 엄습했다. 어딘가 어둡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때였다. 김승태 기자가 한 손에는 노트북을, 다른 손에는 디스크에서 파일을 뽑아내는 추출 장비를 위태롭게 들고 어디론가 뛰고 있었다. 김승태 기자는 입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정전!!! 정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디스크를 꼭 쥔 채로 나도 따라 뛰었다. 시청 근처에 타클로반 주민들이 소형 발전기를 돌려 밥을 짓고 있는 텐트였다. 급하게 뛰어온 우리를 보고 전원 플러그를 내줬다. 파일로 추출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위성 장비였다. 갑작스런 전원 꺼짐에 쇼크가 왔는지 통 위성 신호를 잡지 못했다. 잠깐만 연결되면 몇 분 내에 보낼 수 있는데 연결이 안 되니 미칠 노릇이었다. 결국 예정된 시간에 리포트는 나가지 못하고 뒤로 밀렸다. 앞이 캄캄했다. 하루 종일 노력한 것이 허사가 되는 기분이었다. 방송 뉴스에서 리포트 순서가 뒤로 밀린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리포트가 다른 뉴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특히 속보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 재난 재해 현장에서 만든 리포트가 뒤로 밀린다면 뉴스 가치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우리 셋은 모두 소리를 지르며 위성 장비의 방향을 돌리고 연결선을 뺐다 꼽으며 방방 뛰었다. 주변에 외신기자들이 놀라 우리를 쳐다봤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몇 차례의 시도에도 야속한 위성 장비는 한국에 그 몇 메가바이트 짜리 음성 파일 하나를 송출하지 못했다. 결국 데스크의 결단이 내려졌다. “전화로 한국에 전화해서 바로 녹음하자”. 그렇게 우리의 이 날 8시 뉴스는 8시 27분에 방송됐다. 출장 첫 날과 둘째 날 4번째 순서로 8시 6분에 방송된 것보다 무려 20분 넘게 늦춰진 셈이다. 게다가 기사 앞뒤는 카메라로 녹음한 목소리가, 중간에는 전화로 녹음한 목소리가 들어간 리포트가 돼버렸다. 우리는 출장 사흘째 밤 그렇게 방송을 내보냈다. 뭔가 안에서 툭 하고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SBS 타클로반 취재팀은 이날 공군 수송기의 회항 사실을 한국 언론 가운데 가장 먼저 보도했다.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타 방송사는 같은 시각 한국 수송기가 오늘 오후 타클로반 공항에 도착해 교민들에 대한 철수작업을 시작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교민들 11명이 비행기에 탑승해 타클로반을 빠져나갔다고도 전했다. 뉴스 앞 단락에서 이 리포트를 보도한 것은 물론이다. 물론 타클로반에 공군 수송기가 내리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타클로반 공항에서 공군기를 타고 나갈 순간만을 기다리던 교민들의 가족이 한국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세부에서 토마스김 목사님으로부터 잠시 빌린 뒤 유심 칩을 사서 끼워 가지고 다니던 내 현지폰에는 아직도 필리핀 각지의 선교사들과 한국에 있는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전화가 계속해서 걸려오고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타클로반에 있는 교민들이나 선교사들이 안전히 빠져나갔는지가 매 순간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을까.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실을 보도하려고 애썼다. 글재주가 없어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지만 우리는 그 날 적어도 언론의 본분에 충실하려 끝까지 노력했다. 뉴스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말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인데, 또 어떻게 보면 중요한 대목. 어제 필리핀 타클로반 공항엔 한국 공군 수송기가 내리지 못했다. 미군이 복구해 간이 관제탑까지 설치하고 운영하는 공항이니 당연히 미군 위주로 돌아갈 터. 우리 공군 수송기는 잠시 착륙해 구호품을 내려줄 틈을 얻지 못했고, 결국 8뉴스를 하기 얼마 전 세부로 회항.
착륙하는 걸 보고 기사를 쓰려다 8시 임박해서 착륙한다는 말을 듣고 기사를 준비했던 현장팀과 서울의 국제부 모두 비상이 걸렸는데, 부랴부랴 기사를 고쳤는데 그나마 임시 프레스센터 역할을 하는 시청 건물이 정전되면서 위성 송출도 못해 결국 해당 부분을 전화로 녹음하는 비상 수단 동원.
기사 순서까지 늦춰가며 팩트를 반영해서 기사를 내보냈는데, 다른 방송에서는 공군 수송기가 타클로반에 도착했다는 기사가 줄줄 나간다. 표절 의혹을 받던 문 모 의원이 전에 기자들에게 했던 말, "기자들은 항상 그렇게 정확하세요?"가 생각나는데, 물론 항상 정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대한 정확하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고 보는데...
유난히 이번에 그렇지 못한 단면들이 자꾸 보인다. 세부를 타클로반이라고 하고, 자기가 못 들어갔다고 타클로반이 무법천지라서 취재진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라고 과장하고... 이건 정치적 편향 문제도 아니고,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 사실관계의 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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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도시' 필리핀 타클로반을 가다(4)로 마지막 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