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데스크칼럼] '냉혹한 승부사' 퍼거슨 감독의 리더십

[데스크칼럼] '냉혹한 승부사' 퍼거슨 감독의 리더십
지난 2005년 5월29일,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서 뛰던 박지성은 세계 최고 명문구단가운데 하나인 맨유로부터 러브콜을 받죠. 그것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감격적인 날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성? 나 퍼거슨인데 맨유와 나는 너를 정말 원하고 있다.네가 우리 팀에 와서 잘할수 있으리라고 믿는다......좋은 기회니까 놓치지 말기 바란다......”(박지성 자서전 ‘멈추지않는 도전’ 50쪽)

철저한 선수관리와 진심어린 설득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맹활약하고 네덜란드리그로 이적해 한창 주가를 올릴 때였지만 맨유로의 이적은 당시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죠. 박지성이 세계적인 스타라고 보기엔 아직 이른 시절이었고 이적은 유럽언론들도 눈치채지 못한채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엔 마음에 드는 선수를 손에 넣는 퍼거슨만의 방식이 숨어있습니다.니다. 바로 이점입니다. 자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구단의 스카웃담당 직원들을 동원하는 수준이 아니고 자신이 직접 나선다는 것이죠. 바로 진정성이 담긴 소통방식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을 퍼거슨 감독은 잘 알고 있고 또 직접 활용한다는 거죠. 5공당시 “사나이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해 유명해졌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 장세동씨의 말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박지성은 tv에서나 보던 세계적인 명장이 전화를 직접 걸어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당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기 선수를 아끼고 감싸는 퍼거슨 감독의 일화는 수도없이 많습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도는 맨유시절이던 지난 07-08시즌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석권한 뒤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에 휩싸입니다. 이룰거 다 이룬뒤에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며 호나우도는 이적을 원했죠. 하지만 호나우도가 계속 필요했던 퍼거슨 감독은 팀연습에도 참석치 않고 머리를 식힌다며 훌쩍 떠나버린 호나우도를 휴양처인 스위스 현지로 직접 찾아가서 설득한 적도 있습니다. 한 시즌만 더 함께 하자는 할아버지뻘인 노(老)감독의 설득작업에 건방지기로 소문난(?) 천하의 호나우도도 손을 들고 말았죠.

92-93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프랑스 출신 스트라이커 에릭 칸토나의 경우도 퍼거슨 감독의 철저한 자기 선수관리의 모범사례로 꼽힙니다. 자신을 비방하는 상대팀 관중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리는 일명 ‘쿵푸킥 사건’ 등 불같은 성격으로 인한 여러차례 구설수와 축구협회의 중징계로 선수생활이 위기에 놓였지만 퍼거슨 감독이 여론과 지인들을 총동원한 구명활동으로 끝까지 변호하고 나선 덕에 필드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선수들의 흡연과 음주,여자문제는 늘 터져나오기 마련입니다. 루니,나니,에브라 등 소속 선수가 여자문제로 신문에 사진이 나오고 심지어 ‘퍼기의 아이들’(Fergie's Fledglings)중 하나인 대선수 라이언 긱스의 섹스 스캔들이 터져나올 때도 그는 단 한번도 선수들에 대한 신뢰를 거둔 적이 없습니다. 
맨유 퍼거슨
불같은 성격으로 내칠 때는 냉혹하게

그러면 퍼거슨 감독의 리더십이 항상 이렇게 따스하기만 할까요? 전혀 그렇치않습니다.

그는 불같은 성격과 차가운 승부사로 유명합니다. 경기내용이 시원치않은 선수들에게 다가가 뜨거운 입김을 코앞에 내뿜으며 스코틀랜드 특유의 강한 억양으로 선수들을 다그치는 이른바 ‘헤어드라이어’ 효과는 호되게 몰아치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의 선수관리와 사랑은 오로지 선수의 경기력이 뛰어나고 팀전력에 보탬이 될 때만 유효합니다. 자기관리가 제대로 안되거나 전성기를 지났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냉혹하게 돌변합니다. 90년대 잉글랜드 축구의 아이콘이던 데이비드 베컴은 특히 퍼거슨 감독의 사랑을 한몸에 독차지했죠.

그러나 베컴이 영국의 유명 걸그룹 ‘스파이스걸’의 일원인 빅토리아와 염문을 뿌리면서 축구를 등한히 하자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되죠.지난 2003년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그가 부진하자 하프타임때 질책하다 축구화를 집어던져 눈위에 상처를 입히면서 베컴은 결국 퍼거슨 감독을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죠. 그렇지만 베컴은 그후에도 “퍼거슨 감독은 축구를 존중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친 아버지같은 분”이라며 존경심을 나타냈습니다.

베컴뿐만이 아니죠.네덜란드 출신 골잡이 루드 반 니스텔루이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후안 베론, 야프 스탐같은 유명스타들도 기대했던 만큼 활약을 펼치지 못하자 올드트래포드를 쓸쓸하게 떠나야 했습니다. 박지성도 퍼거슨과 좋은 인연만 있었던건 아니죠.2008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까지 맹활약했던 박지성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결승전 출전 명단에서조차 아예 제외된 일은 박지성에게 가장 아픈 기억이었을 겁니다.
긱스 퍼거슨_500
선수를 알아보고 키우는 안목

맨유에는 유독 한팀에서 오래 활약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라이언 긱스와 폴 스콜스는 각각 지난 90년과 93년부터 20년이 넘게 퍼거슨과 한솥밥을 먹고있는 사이입니다. 스콜스는 특히 재작년에 은퇴했다가 중앙 미드필더가 약해졌다고 판단한 퍼거슨 감독의 말한마디에 다시 복귀한 경우입니다. 호나우도도 가다듬어지지않은 원석같은 열일곱살의 나이에 올드트래포드에 와서 퍼거슨의 조련아래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고 올해 29살인 웨인 루니도 십년째 버티고 있지않습니까? 파트리스 에브라나 리오 퍼디낸드,네마냐 비디치,대런 플레처등도 십년씩 활약한 선수들이고  이렇게 오랜 시간 발을 맞춘 조직력이 맨유를 강팀으로 만들었음은 더말할 필요가 없겠죠. EPL의 다른 강호인 첼시나 아스널,맨체스터 시티같이 기량이 만개한 스타들을 큰 돈 주고 사오는 경우와는 달리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데려와 최고의 선수로 만드는 것이 퍼거슨 감독의 능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어 보입니다.

 맨유가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으로 성장한데는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퍼거슨 감독의 여러 능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으로 분석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수관리 잘하고 축구에 대한 나름대로의 안목을 갖춘 훌륭한 감독들은 유럽축구계에 하나둘이 아닐 겁니다.그런데도 유독 그를 위대한 감독으로 칭송하는데는 그만 갖춘 장점이 있지않을까요? 그 장점은 무얼까요? 어제 BBC방송에 출연한 한 전문가의 말대로 “퍼거슨 감독은 항상 팀과 경기력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한가지 잣대만을 가지고 판단한다”고 밝힌 언급은 큰 시사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의 자존심이나 그때그때의 기분,감정등에 휩쓸리거나 구애받지 않고 항상 중요한 판단을 하는데 냉정하게 팀 전체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거죠”

사실 퍼거슨감독은 나름대로 스코틀랜드인 특유의 고집붙통이고 완고하며 한 성질하는 노인입니다. 축구에 관해서는 모든 영광을 그 정점에서 누릴대로 누린 사람입니다. 아쉬울 것 하나없어보이는 그가 스타도 아닌 박지성에게 직접 구애(?)하고 도망간 손자뻘인 호나우도를 휴양지까지 찾아가 읍소(?)할 정도로 유연성을 갖춘 것도 그의 이런 ‘축구사랑’과 ‘클럽사랑’에서만 가능하다는 거죠. 그에 대한 유럽언론의 다양한 평가가운데 저는 ‘냉혹한 승부사’라는 표현이 그를가장 잘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한 축구클럽의 감독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의 금자탑을 쌓아올린데는 이런 그만의 노력과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에 상응하는 존경을 받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퍼거슨_500
영원할 것만 같았던 퍼거슨 감독도 73살이라는 나이앞에는 어쩔수 없나 봅니다. 영웅은 이제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축구사랑은 영국인과 세계 축구팬들에게 영원히 남아있을 겁니다 . “굿바이, 퍼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