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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 상자 배달하면 740원"…12년차 택배기사의 한숨

[취재파일] "한 상자 배달하면 740원"…12년차 택배기사의 한숨
선한 인상이지만 지쳐 보이는 얼굴.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 1층에서 택배기사 박희성 씨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짐수레엔 옷가지나 책처럼 젊은 부부들이 시켰음직한 상자가 다섯 개나 실려 있었습니다. 12년 째 택배기사 일을 하는 박 씨는 한 때 택배 영업소 사무실을 열고, 스무 명 가까운 직원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택배업 사정이 점차 나빠져, 친지의 집 창고를 영업소 삼아 일하고 있습니다. 단가는 곤두박질하고, 택배를 새로 하겠다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닥까지 떨어진 수익을 일거리를 늘려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금처럼 할 수 있을지 그게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택배 한 상자에 74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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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단가 이야기부터 꺼냈습니다. 10년째 그대로 아니냐는 말에 미간의 주름이 도드라졌습니다. 10년 전 보다 더 떨어진 셈이죠. 전에는 한 상자 배달하고 900원 정도는 받았는데, 지금은 한 건에 740원에 배송합니다. 그걸 하나 먹어서는… 개수로 따져보면, 답답해집니다. 한 달에 4천개를 배달한다고 칩시다. 그럼 280만 원에서 3만 원을 벌겠죠. 거기서 빼야할 게 좀 많습니까. 기름 값, 휴대전화비, 밥도 먹어야 하고 그럼 한 달에 집엔 200만 원 가져가기가 빠듯합니다. 타산이 안 맞죠.

그는 언제 집을 나와 언제 들어가는 걸까요? 박 씨는 하루를 ‘까대기’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택배 물류창고에서 새벽 5시쯤부터 4시간 정도 자기 배송물량이 분류되길 기다리고 싣는 일을 그렇게 부른답니다. 엄동설한에 차에서 잠시 몸을 녹였다가 상자를 쌓길 반복합니다. 길어질 때는 6시간도 걸린답니다. 평일이던 1월 11일 금요일도, 밤 8시는 돼야 배달을 마칠 거라고 했습니다. 너무 고달프면 토요일에도 나오는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고객이 동의를 했을 때만 말이죠.

그나마 지금은 비수기라고 했습니다. 명절 같은 날은 명절 전후 2주일은 ‘죽음’이랍니다. 새벽 한시 두시 까지 일하고, 정작 명절날은 집에서 그냥 아무것도 못하고 쉰다고 합니다. 남들은 일거리 많아 대목이라는데, 박 씨는 '일주일간 죽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 라고 말합니다. 단가가 너무 낮아서 대목도 일만 힘든 시간일 뿐 벌이에 차이가 없는 까닭입니다. 

결국, 턱없이 떨어지는 단가를 버티려면 배달 물량을 늘려야만 합니다. 그래도 예전 수준의 벌이를 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움직이고, 전화하고, 기다려서 740원 짜리 상자 숫자를 쌓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발품 팔지 않으면 곧 벌이도 없습니다. 박 씨는 딱한 처지의 동료 생각에 잠시 울컥했습니다. 당연히 휴가도 없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였습니다. "왼팔 마비가 왔는데도 버티고 택배 나르는 사람이 있어요. 일 끊으면 그 날 일당은 없는거니까. 한 손으로 전화했다가 놓고, 또 그 손으로 짐을 옮기고 갖다 줍니다."   

택배 시스템 붕괴 조짐

더 큰 걱정은 신참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겁니다. “유입이 없어요. 뚝 끊긴 거야.” 서서히 단가가 떨어지는 동안, 박 씨 같은 베테랑 기사들은 그나마 버틸 재간이 있습니다. 힘들지만 자투리 시간 없애고 동선을 줄여서, 배달 량을 늘리면 됩니다. 이 고단한 일이 신입기사에겐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기름 값 등 물가는 오르는데, 단가는 떨어지는 상황. 택배기사는 웬만큼 경력이 쌓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직종이 됐습니다. “오래된 사람들은 ‘짬밥’이 있으니까 유지해서 어떻게 지역을 좀 더 받아서라도 수입을 맞춰서 가는데 오래되지 않은 사람은 그게 안 돼요.” 택배기사의 삼중고가 알려지면서, 구직자 사이에선 기피직종 1순위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택배산업은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매출액은 지난 2005년 1조 5천 600억 원에서 재작년 3조 2천 9백억 원으로 2배 이상 늘었습니다. 배송된 물량도 같은 기간 5억 2천 500만여 상자에서 12억 9천 900만여 상자로 2.5배나 급증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택배 평균단가는 2천 961원에서 2천 534원으로 400원 이상 떨어졌습니다.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단가의 절반 이상은 택배기사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습니다.

“클릭 피용 딩동 예스!” 언젠가부터 라디오에선 인터넷 서점 업계가 주도하던 당일배송 광고가 사라졌습니다. 오전에 클릭하면 오후에 배송된다는 놀라운 배송서비스 이면엔 떨어지는 단가를 그야말로 발품으로 버티는 택배기사들이 있습니다. 그마저도 과당 경쟁과 불리한 수익구조로 인력 충원이 안 되는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택배 대란이 오기 전에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만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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