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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기업 MRO 철수…중소기업에 '득'일까?

[취재파일] 대기업 MRO 철수…중소기업에 '득'일까?

삼성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MRO, 즉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9개 계열사가 가진 MRO 자회사, 아이마켓코리아(IMK) 지분 58.7%를 모두 처분하기로 한 겁니다.

MRO는 유지(Maintenance), 보수(Repair), 운영(Operation)의 영문 약자로, 대기업들이 핵심 원자재와 관계없는 이런 소모성 자재(복사용지, 필기구, 기계-설비 수리용 공구 등)까지 계열사를 통해 직접 조달하면서 중소기업들의 거센 반발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대기업들은 매년 수 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MRO 계열사를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 창고로 활용한다는 비판에도 직면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LG의 MRO 계열사 서브원의 매출은 3조 8천 478억 원에 달하고, 삼성의 IMK도 1조 5천 492억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런 사회적 비난에 더해 공정위가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를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정치권까지 “MRO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자, 삼성이 손을 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삼성은 MRO 사업 철수 이유를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사업 영역을 침해받았던 중소기업들은 삼성의 MRO 사업 철수 소식을 일제히 반기며 이런 움직임이 대기업 전체로 확대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삼성의 결정 이후, LG도 사회적 합의를 따르겠다고 밝히는 등 대기업들의 MRO 철수 움직임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의 MRO 사업 철수가 실제 중소기업에게 '득'으로 돌아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MRO의 문제점을 '한 단계 더 늘어난 유통구조'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존에 없던, 교섭 능력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거대 유통 공룡(MRO)이 생겨나면서 최종 납품까지 '불필요한' 한 단계가 더 생겨났다는 겁니다.

유통 단계가 많아진 만큼, 전체 유통마진도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제품 가격(최종  납품가)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대기업 MRO들이 중소기업들의 납품 단가를 후려쳤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납품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적정 이윤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겁니다. MRO의 폐해는 지방 상권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대기업 MRO로 인해 소모성 자재 시장이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소 상공인들은 몰락의 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삼성이 IMK의 지분을 매각한다고 하더라도, '삼성'이라는 이름만 빠졌을 뿐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을 하는 아이마켓코리아(IMK)의 실체와 지금의 유통 구조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실제 삼성은 지분 매각 이후에도 아이마켓코리아를 통한 소모성 자재 조달 방식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기업 MRO를 누가 인수할지입니다. 지금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MRO 인수 대상에서 대기업은 자연히 배제됩니다. 중소기업은 사실상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르는 MRO를 인수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외국계 회사나 국내외 투자자본이 사들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 이 경우 역시 중소기업에는 득이 될 게 없습니다. 투자 수익을 뽑아내기 위해 납품단가를 더 압박할 수 있고, 외국 자본인 경우에는 납품 업체를 국내에서 해외로 돌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기업의 MRO 사업 철수가 중소기업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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