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여자가 지진을 일으킨다"

현대판 마녀사냥?

이민주 기자

작성 2010.04.21 17:54 수정 2010.04.21 17: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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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문화, 정서, 사고 방식과는 사뭇 다른 이슬람권이지만 연수 기간 합해 3년 가까이 살다 보니 나름 적응이 됐나 싶었는데 최근 이란에서 들려온 소식은 저를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여성들의 복장 불량이 신의 노여움을 사 지진을 일으킨다! 이란의 저명한 고위 성직자가 전국 금요기도회에서 행한 설교의 한 대목입니다.

호야톨레슬람 카젬 세디기 라는 이름의 성직자는 "이란의 많은 여성들이 옷을 꾸란의 가르침대로 입지 않아 남성들을 방탕하게 만들어 사회 전반에 불륜을 확산시켜 결국 지진이 잦아졌다"고 개탄했습니다.

세디기는 "이란이 대지진으로부터 위협 받고 있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계시를 알라로부터 받았다"며 "건물 잔해에 깔리는 신세를 면하려면 이슬람의 도덕 기준에 맞추는 길 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 전통의상 차도르를 입은 이란 여성들.
      (대도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차도르를 벗고 스카프 형태의 히잡만을 쓰는 여성들이 늘고 있음)

앞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지진이 곧 수도 테헤란을 강타할 것이 확실하다며 1천2백만 시민들이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마흐술리 이란 복지부 장관 역시 "지진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회개하고 알라에게 기도하는 길이다"라고 거들었습니다.

이란은 지난 2천3년 남부 밤 시에 대지진이 발생해 3만1천명이 숨지는 등 지진 다발국가 가운데 한 곳이긴 합니다. 수도 테헤란도 2~30년 전부터 지진학자들이 대지진 가능성을 경고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1830년 이후 180년 동안 지진 피해가 없었고 대통령과 장관, 고위 성직자가 앞다퉈 나서 경고할 만큼 지진 위험이 최근 부쩍 높아진 것도 아닙니다.

백번 양보해 지진 가능성이 커졌다 해도 이를 여성의 복장과 연관지어 고위 성직자가 공개 경고를 내리는 광경은 신정국가인 이란의 특성을 감안한다 해도 좀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6월 대선 부정 의혹으로 촉발된 대규모 거리 시위에 이란 여성들이 대거 참여한 까닭도 이란 리더들의 이런 고루함과 강퍅함에 대한 저항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