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방문한 박 대통령, '진박 마케팅’ 역풍 두렵지 않나‘
진보 진영, 야당에서 나온 평가가 아니다. 보수 언론의 사설 제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개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보수 진영까지 나서 비판을 했을까.
박 대통령은 총선 34일을 앞 둔 지난 10일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지역 소위 진박(眞朴/박 대통령을 진실 되게 따르는 세력) 후보들의 여론조사 경선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박 대통령은 대구 동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시작으로 북구에서 열린 국제섬유박람회, 수성구에서 열린 스포츠 문화 산업 비전 보고대회, 경북 안동에서 열린 도청 개청식까지 한 시간 단위로 4개 일정을 소화했다. 무리할 정도로 꽉 짜인 행보였다. 특히, 국제섬유박람회는 10여 년 이상 진행되어 왔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경제 행보’라며 선을 그었지만, 야당은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찾은 곳은 모두 진박 후보가 고전하거나 야당 후보가 강세를 보이는 지역구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방문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공정선거를 엄정 관리해야할 대통령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지원하듯 직접 지역을 찾고 있으니 경악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선거 개입이라는 의혹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16일에는 부산을 방문했다. 청와대는 “창조경제 현장점검의 일환으로 부산센터 개소 1년에 맞춰 부산 방문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왔다. 박 대통령이 찾은 부산 해운대구, 서구, 사하구는 ‘공교롭게도’ 진박 후보가 경선 중이거나 그 인접지역, 그리고 야당세가 강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 “배신의 정치를 심판…진실한 사람 선택”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개입
대통령의 선거개입에 대해 야당은 비판하고, 여당은 대통령을 옹호하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된 문제였다. 차이가 있다면 공격과 수비의 주체가 바뀐 정도. 대통령을 비판하던 세력도 대권을 쥐면, 자신이 비판한 대상의 행동을 답습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 ‘공수(攻守) 교대’된 대통령 선거개입
2003년 12월 19일, 故 노무현 대통령은 ‘리멤버 1219’라는 행사에 참석했다. 대통령 당선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 등에서 주최한 행사였다. 이 행사에서 노 대통령은 “여러분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노사모가 다시 한번 뛰어달라”고 당부했다. 이듬해인 2004년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탈당자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 “압도적 지지”…탄핵까지 당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개입
며칠 뒤인 2004년 2월 24일, 노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선거개입 발언을 쏟아냈다. 노 대통령은 총선 전망을 묻는 패널의 질문에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에게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을 노무현 뽑았으면 나머지 4년 일 잘하게 해 줄거냐, 아니면 흔들어서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할거냐는 선택을 우리 국민들이 해 주 실거다”고 덧붙였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탄핵 사건이 남긴 건 뭘까? 선거개입을 통해 과반을 확보했다는 것일까. 아니면 선거개입을 하더라도 탄핵 사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바로 ‘노 전 대통령의 행위는 선거개입이었고, 앞으로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 된다’는 것이 헌재가 내린 결론이었다.
● '말'에서 '행동'으로 바뀐 선거개입
하지만,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 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하지 않았다. 헌재의 판결 이후에도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은 계속 불거졌다. 바뀐 게 있다면 노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칭해 탄핵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의식해서인지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서 ‘주어’와 ‘목적어’가 사라졌다. 논란이 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배신의 정치’의 당사자는 누구인지, ‘진실한 사람’이 누구인지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정종섭 행정자치부의 장관의 “총선 승리” 발언이 논란이 되자 새누리당은 “주어가 없다”며 정 장관을 엄호하기도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바뀐 점이다. 지지층에게 명확한 메시지는 전하면서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의도적 노림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의 대구와 부산 방문 이후 쏟아진 비판에 청와대가 경제행보라고 반박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대통령이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적 논란을 비껴나기 위해 해석의 여지를 둔 것인데, ‘말 보다 행동’ 방식의 선거개입 시작은 전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대 총선을 불과 4일 앞둔 2008년 4월 5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서울 은평 뉴타운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은평 뉴타운 건설 지역은 ‘MB정권 실세’로 불렸던 이재오 의원이 야당 의원과 접전을 벌이고 있던 지역이다. 당초 4월 5일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열리는 도라산 평화공원 식목행사만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는데, 은평 뉴타운 방문은 하루 전인 4월 4일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은 반발했다. 특히, 서울 은평을에서 접전을 펼치던 문국현 후보가 소속된 창조한국당은 이 대통령의 은평 뉴타운 건설 현장 방문에 대해 “자신의 최측근 이재오 후보를 구하기 위한 명백한 불법 선거 개입”이라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밀어붙이며 선거중립 의무 준수를 촉구한 한나라당이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행태는 어떻게 생각하냐”며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추진했던 은평 뉴타운 사업과 노숙인 자활 프로그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챙겨보자는 차원에서 방문했다”며 대통령을 엄호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4년 전 자신들이 비판했던 열린우리당에 내어놓았던 입장을 그대로 가져왔다.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이 개탄스럽다”면서 “야당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은 선거 기간 ‘올 스톱’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란 말이냐”며 대통령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 전국 광폭 행보…'행동'으로 보여준 이명박 대통령 선거개입
이명박 대통령의 특정 지역 방문 방식의 선거개입 논란은 취임 이전부터 준비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두 달 뒤에 총선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부처별 업무 보고 목적으로 전국을 순회했다. 역대 정부와는 다른 행태의 업무 보고였고, 방문지마다 문제적 발언을 작심한 듯 쏟아냈다.
역대 대통령이 그러했듯 이번에 또 다시 불거진 대통령의 선거개입. 박근혜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이번 총선에 순풍이 될까, 역풍이 될까.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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