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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소작업차’를 아시나요?

[취재파일] ‘고소작업차’를 아시나요?
크레인이 넘어졌다고 했습니다. 소방서에 전화해 출동한 사건이나 사고가 있는지를 물었는데 돌아온 답변이었습니다. 골프연습장에서 그물망을 교체하기 위해 크레인 끝에 달린 작업대에 근로자들이 올랐는데, 크레인이 쓰러졌다는 겁니다. 작업대 위에 있던 근로자 2명이 바닥으로 추락했고 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기사를 썼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작업 중이던 크레인 넘어져 2명 사상’이라는 이름의 리포트가 나갔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넘어진 게 크레인이 아니라는, 한 크레인 기사의 전화였습니다. 전날 저녁 취재할 때 소방서에서도 경찰서에서도 모두 크레인이 넘어진 사고라고 설명을 듣기도 했고 또 그걸 크레인이 아니면 뭐라고 부르는지 머리에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잠시 고개가 갸웃거렸습니다. 고소작업차라고 했습니다. 난생 처음 들어본 단어에 알고 지내던 자동차학과 교수에게까지 전화를 걸었습니다. 고소작업차라는 게 있고, 크레인과 고소작업차는 엄연히 다르다는 걸, 지난 10월 중순 이 사고를 보도하며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알고 보니 크레인이 아닌 고소작업차 안전사고는 생각보다 꽤 자주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지난 1월 경기도 안양의 한 교회 신축 공사장에서도 고소작업차 지지대가 부러져 유리창을 새로 달던 근로자 2명이 20m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해 3월 경남에서도, 지난 2011년 동두천에서도 고소작업차가 넘어지거나 지지대가 부러지는 등 안전사고가 잇따랐습니다. 왜 이렇게 사고가 잦은 걸까, 그렇게 취재는 시작됐습니다.

길을 다니다 유심히 주위를 살펴보면, 간판을 달거나 유리창을 교체하거나 건물 외벽 공사를 하는 데 쓰이고 있는 고소작업차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건설 현장’에서 많이 쓰이는데도 고소작업차는 현재 ‘일반 화물차’로 분류돼 있습니다. 고소작업차는 특장자 업체에서 일반 화물차 적재공간에 작업대 부분을 붙여 만드는데, 만든 뒤 고용노동부에서 안전인증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는 것도 있지만 화물차주가 임의로 작업대를 붙인 뒤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도 있습니다. 개인이 화물차를 마련하면 거기에 작업대를 달아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작업 중인 고소작업


인증을 받고 현장에 투입된 차라 하더라도 그 뒤 정기적인 안전 검사는 없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에 따르면 ‘유해하거나 위험한 기계, 기구, 설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을 사용하는 사업주는 유해, 위험기계 등의 안전에 관한 성능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검사 기준에 맞는지에 대하여 고용노동부 장관이 실시하는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안전검사 대상에 고소작업차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프레스, 전단기, 크레인, 리프트, 곤돌라 등이 안전검사 대상에 포함되는데, 같은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기계지만 포함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고소작업차의 차량부만 일반 자동차처럼 도로교통공단에서 자동차 검사를 받고 있고 작업부분은 사실상 자동차 출고 이후엔 아무런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비가 노후해도 불법으로 개조해도 파악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자격증 제도나 운전기사 면허가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고소작업차 운전기사들은 차량 관리에 문제가 많다고 스스로 털어놨습니다. 운전기사는 작업자가 올라타는 바구니 안에 가해지는 하중에 따라 지지대를 얼마나 길게, 어떤 각도로 펴야 하는지 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운전기사가 되는 데에는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면허도,자격증도,학원도 없습니다. 알음알음 주변에서 배워 현장에 투입되는데, 보름 정도 배워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일반 화물차를 몰 수 있는 대형 면허만 있으면 작동법을 배워 고소작업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겁니다.
작업 중인 고소작업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을까. 센서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중에 따라 어떤 각도까지, 어느 정도 길이까지 지지대를 펼 수 있는지 제한이 걸려 있다는 겁니다. 그 제한 정도를 위반하면 경고음이 울리거나 작동이 중지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사고가 일어나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 센서를 끈다는 겁니다. 고소작업차를 불러 작업하게 하는 건설 현장 책임자들이, 더 많은 작업자가 한 번에 올라 더 길게 지지대를 뻗어 작업할 수 있게, 제한을 풀고 현장으로 들어오라고 한다는 거였습니다. 애초에 더 많은 하중과 더 긴 길이로 지지대를 뻗을 수 있는, 더 큰 중량의 고소작업차를 부르면 되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단 작은 차를 부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센서를 끄는 거죠. 실제로 고소작업차에 붙어 있는 센서는, 버튼만 누르면 쉽게 끌 수 있게 돼 있는 구조였습니다. 연식이 오래된 차량에는 그 센서마저 없다고 합니다. 

고소작업차를 비롯해 크레인 등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지난 3월 열린 국무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건설현장 안전관리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들 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서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고소작업차는 일반 화물차이기 때문에 차량부는 국토교통부에서 관리합니다. 그리고 작업부는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부분이라 국토교통부가 관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관리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검사 대상에 고소작업차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에서도 작업부에 대해 안전검사에 나설 법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또 작업대 부분만을 관할하기 때문에 고소작업차 차량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주체가 없습니다. 국가정책조정회의가 끝난 뒤 아홉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소작업차를 안전 검사 대상에 포함할 것인지 혹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관리할 것인지 결정된 바는 없습니다. 두 부처는 여전히 관계 부처인 상대방과 협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쓰이는 곳은 많은데, 현장에서의 안전불감증과 제도의 미비로 사고는 끊이지 않습니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고소작업차 수는 전국적으로 9천 7백 대.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 현장에서 안전 의식을 높이는 것은 물론 더 늦기 전에 규정을 보강하고 철저한 관리, 감독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8뉴스] '고소 작업차' 안전 허점…규정 마련은 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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