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FRB 의장을 그만두면 다시 교수로 돌아갈 수 있는지 여기 온 김에 학교 측에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버냉키는 2006년부터 미국 통화당국의 수장을 맡았고 내년 1월에 임기를 마친다. 연임도 가능하지만 이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버냉기의 의장 재직기간은 8년이 된다. 전임인 앨런 그린스펀처럼 장기 집권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FRB 의장을 맡았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우리가 흔히 듣는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이다. 연준은 미국 각 지역에 모두 12개가 있고 워싱턴의 이사회 즉 FRB가 총괄한다. 7명 이사의 수장이 바로 FRB 의장이다. 형식은 중앙은행이지만 각 지역의 연준의 대주주가 실제로는 미국의 민간은행들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출자는 민간금융사들이 하지만 총괄은 정부가 하는 이런 묘한 시스템은 중국학자 쑹홍빈의 베스트셀러 '화폐전쟁'의 내용처럼 숱한 음모론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FRB 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하지만 상원의 인준을 받는다. 사실상 대통령에게 임명 권한이 있지만 정치적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다. 월가의 정계로비는 집요하기로 유명하고 지금까지 월가가 원하지 않은 인물이 임명된 적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역사를 보면 독자적이고 개혁적인 금융정책을 시도한 역대 대통령들 상당수가 불행한 경험, 심지어 암살되거나 병사한 경우가 많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호사가들은 가끔 유대계 은행가들이 배후에 있다는 소설같은 음모 시나리오를 제기하곤 한다.
쟁쟁한 후보들…2파전 격돌 중?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8월 혹은 9월에 버냉키의 후임자를 지명할 전망이다.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소문의 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월가의 분위기는 옐런과 서머스의 2파전으로 압축되는 듯 하다. 무엇보다 옐런은 현재의 양적완화 정책을 떠받쳐온 중심인물이다. 버냉키도 그녀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증시의 안정을 원하는 월가가 그녀의 임명을 기대할 것이라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오바마의 마음이 서머스에게 기울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서머스는 정치권 인맥이 두텁지 않은 옐런에 비해 여당 고위참모들과 친분이 깊다는 평가도 나온다.
월가의 복잡한 속내는?
여기서 두가지 변수가 크게 힘을 얻는데, 첫째는 두 후보 가운데 누가 임명되든 어차피 현행 양적완화 규모는 크게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돈 풀기를 줄이면 미국의 국채금리가 당장 오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미국 정부가 부담하는 국채 이자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에 FRB가 이런 선택을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둘째는, 미 연준이 양적완화 정책으로 뿌린 돈이 실제 통화로 유통되기 보다는 상당한 액수가 중앙은행에 예탁금으로 묶여있다는 숨겨진 사실이다. 결국 그동안의 통화확장 정책이 기대했던 것처럼 실물경기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양적완화 정책의 실효성에 관한 문제여서 이런 사실이 부각되며 논란이 될 경우 정책의 주도자인 옐런에게 불리하다.
그렇다면 버냉키의 기조를 이어가기위한 차기 FRB 의장 인선은 큰 의미가 없다. '어차피 통화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버냉키는 서서히 레임덕 현상에 빠지는 모습이다. 미국은 출구전략의 시점을 찾고 있다. 이번 인선은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닌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 전환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가가 양적완화의 축소시점보다도 FRB 후임 의장의 인사에 눈과 귀를 더 집중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