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2월 서울서부지검에 소환되면서 김 회장은 여러 차례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데 대해 "내가 팔자가 좀 센 것 같다"고 했고, 거듭 소환되는 데 대해 "이거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호기로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재판에서 충분히 무죄를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고 판단했던 모양인데, 결과는 그의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 '3.5 공식' 깨졌다
김 회장의 징역4년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 소식은 전 언론에서 주요 뉴스로 보도됐습니다. 경제범죄로 기소된 재벌 회장에게 실형과 법정구속이 선고된 것은 '사람이 개를 무는 것' 만큼 희소 가치가 있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 1100억원대 조세포탈, 현대차 정몽구 회장 700억원 횡령, SK 최태원 회장 1조5천억원대 분식회계, 두산 박용성 회장 289억 횡령에 2천억대 분식회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천억대 횡령....
위에 언급한 사건들에서 재벌회장들은 한결같이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천문학적인 경제범죄들인데다 형량도 길게는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는 사안인데, 예외 없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법원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거나 "경영 공백이 우려된다"는 등 납
득할 수 없는 이유를 양형이유로 들었습니다. 여기서 <3-5 공식>이라는 비아냥섞인 말이 나왔습니다.
지난 2월 재벌닷컴이 조사했더니 우리나라 10대 그룹 총수 7명이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고도 모두 집
행유예로 풀려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일반 국민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엄연한 사실이라고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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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 받는 '양형기준'
1심 선고를 맡은 재판장 서경환 부장판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실형 선고는 2009년 도입한 양형 기준에 따른 것"이라며 "경영공백이나 경제발전 기여 공로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재 양형 기준에는 과거 기업 총수들이 집행유예를 받을 때 적용된 정상 참작 사유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언급되지 않은 이유를 들어 판결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양형기준이란 범죄의 종류에 따라 죄질에 따라 양형기준을 세밀하게 구분해놓은 자료입니다. 사법부와 각계 민간 전문가들이 '양형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서 세부 기준을 정했는데, 이번 김승연 회장에게 적용된 횡령.배임죄의 양형기준은 200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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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의 법정구속과 4년 실형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이 양형기준입니다. 일례로 김승연 회장의 배임액수는 3천억원인데, 300억원 이상 배임의 경우 최소 징역 4년에서 최장 징역 11년을 선고하게 돼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징역 4년 실형 선고라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 2.3심에도 눈 부릅떠야..사면 제한도 논의 필요
김승연 회장의 법정구속으로 재계는 초긴장 상태에 빠졌습니다. 김 회장 말고도 SK 최태원 회장과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등이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들도 김 회장처럼 엄격한 양형기준을 적용받게 되면 실형 선고를 피할 가능성이 적어보입니다.
김승연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으로 법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의 불신을 깨기 위한 첫단추를 끼운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1심 선고가 끝났을 뿐입니다.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이 과연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지에도 국민이 매서운 눈으로 지켜봐야합니다.
또 법의 정의가 완성되려면 사법부 판결이 제자리를 찾는 것 말고도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재벌 회장들이 누려온 사면, 복권의 기회입니다. 재벌총수들은 죄를 지어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대통령으로부터 사면 복권 조치를 받고, 전과 조차 털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벌 회장들이 천문학적인 경제범죄를 저지르고도,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고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면, 복권까지 받는 세태가 끝날 수 있을지 김 회장의 재판과 잇따를 다른 재벌 총수들에 대한 사법부 판단에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